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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피할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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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피할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1.2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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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아직 가을로 접어들지 않았다. 산이라고 해봤지 야트막한 언덕 정도에 불과했으나 나무들이 제법 많이 있어 울창했다. 

높지 않아 조금 멀리 떨어진 평지에서도 산정이 훤하게 보였다. 나는 일이 일찍 끝나면 산을 한 바퀴 돌아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멧돼지의 출현을 알고 나서는 조금 망설여 졌다. 굶주린 녀석이 나를 먹잇감으로 알고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녀석은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새끼까지 거느린 가족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그래서 나는 산행을 포기할까 생각하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쳐다본 산기슭에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숲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았다. 청소는 수월하지 않았다. 굴껍질 사이에 낀 플라스틱이나 바위 아래에 있는 녀석들을 꺼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쓰레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대봉투를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나는 해안가의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치워 나갔다. 그 전에 일차로 치웠기 때문에 두 번째는 채워지는 양이 처음보다는 적었다. 오전에 나는 섬을 한 바퀴 돌겠다는 계산을 세웠으나 어림없었다. 

절반도 돌지 않아서 열 한시가 훌쩍 넘었다. 배가 고팠다. 오늘이 섬에서 생활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내일 아침이면 귀환선이 돌아올 예정이다. 우리는 무인도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태우러 오는 배를 귀환선이라고 불렀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은 이름에서 느끼는 외국 어디에선가에서  돌아온다는 기분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귀환을 생각하자 나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여간 마음이 놓이는 것이 아니었다.

식사는 오늘 점심과 저녁 한 끼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라면도 있고 빵 부스러기나 과자 등 간식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른 법이었다. 

햇반을 데워 먹기 위해 일회용 버너에 불을 붙이고 잠시 나는 아까 보았던 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랬더니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녀석 한 마리와 잘 보이지 않지만 꼼지락거리는 대여섯 마리의 멧돼지 식구들이었다. 녀석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어미가 움직이면 새끼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마치 어미 닭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병아리 같은 존재들이 멧돼지 식구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나는 물이 끊는 동안 죽 지켜봤다. 그들은 멀리 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코를 땅에 박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어미였으며 쫄랑거리며 장난을 치는 것은 새끼들이었다. 내게 만약 엽총이 있다면 녀석을 향해 총구의 가늠자를 열십자로 맞출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놈을 쓰러트리면 새끼들은 어찌 될까 이런 가여운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미가 죽으면 새끼들은 살지, 죽을지 나는 멧돼지의 생태를 잘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운명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남은 새끼들이 어미처럼 장성할 수 있을가 하는 의문을 가져봤다. 물론 나에게는 총은커녕 그들을 위협할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점심을 먹고 나니 조금 나른한 기운이 돌았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해안가에서 자기는 조금 추웠다. 그래서 나는 한 십여 분 정도 졸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므로 멧돼지들이 있는 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쪽이라면 몸을 눕히고 바람을 피할 적당한 장소가 있을 거라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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