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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워낭소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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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워낭소리(200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0.04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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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써레질과 밭을 가는 소를 부러워 했던 것은 자유보다는 속박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유에 대한 저항 때문이었을까.

은둔으로, 치열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시기였다. 하필 소를 선택한 것은 종일 일하고 밤새 쓰러져 자는 소의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반항심에서 나왔다. (소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내 손을 거쳐 간 많은 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꼴을 배고 여물을 썰고 장작불을 지피고 멍에를 걸었던 그 시절이 이충환 감독의 <워낭소리>를 보면서 여러 번 겹쳐졌다. 이 영화는 허구라기보다는 사실의 기록이다. 그래서 늙은 농부(최원균)와 아내(이상순)의 사는 모습이 포장되지 않고 날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봉화는 산수가 수려하다. 첩첩산중 시골이라는 말이다. 그곳 청량사에 올라 아래를 내려보면 속세의 일은 부질없다. 비록 잠시지만 세상의 시름을 잊기에 적당한 곳이다.

그 언저리에 농부가 살고 있다. 그는 그보다 더 늙은 소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사람도 늙고 소도 늙었으니 늘 아프고 힘이 없고 빠르기보다는 느리다.

봄이 오면 농부는 들로 나간다. 경운기와 트랙터 대신 여전히 소를 고집하는 것은 기계를 다루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소가 일하는데 더 편하기 때문이다.

무려 30년을 함께 해 왔다. 그러니 서로 눈빛만 봐도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시쳇말로 ‘베프’가 따로 없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농부와 소는 한 몸이다.

오늘 하루가 어제와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수의사가 찾아온다. 그리고 소의 운명이 멀지 않았음을 알린다.

‘다 됐다’는 말에 늙은 농부는 낭패라고 힘없이 말한다. (소의 죽음도 그렇지만 내년 지을 농사 걱정 때문이다.) 입을 벌려 이빨을 확인하지 않고도 눈을 포함해 온몸에 노쇠의 흔적으로 가득한 소의 상태를 노인이라고 해서 모를 리 없다.

그러함에도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듣자 가슴이 아리다. 소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이 따로 놀지 않고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인이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간다. 죽기 직전의 소를 팔러 가는 것은 차마 눈으로 죽는 꼴을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군색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운명을 직감한 소의 커다란 두 눈에 눈물방울이 가득하다. 상인들은 고기가 질겨서 거저 주어도 안 가져간다는 험한 말을 하고 노인은 성을 내면서 500만 원을 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소를 끌고 다시 집으로 온다.

잠시 살았으나 소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노인이 코를 뚫었던 코뚜레를 낫으로 잘라낸다. 그 직후 소는 고개를 떨궜다. 노인은 죽은 소를 평생 녀석이 갈았던 밭의 한쪽에 묻어 준다.

늙은 소는 죽고 얼마전 사온 암소에서 낳은 송아지는 팔팔하게 살아 대를 잇는다.

송아지에게 다가갈 때 어미소가 화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여자를 낳고( 수놈이 비싸다.) 유세 떤다고 눈을 흘기는 늙은 아내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다. (부인이 늦게 등장한 것은 존재가 희미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 때문이다.)

'아파, 아파' 신음하며 곧 죽을 것처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있어도 워낭소리만 들리면 고개를 드는 남편이 아내는 원망스럽다. 소에게 질투를 느끼는 걸까. 전문 배우가 아니어도 이런 연기를 소화해 낼 수 있다니 놀랍다. 늙은 부부의 자연스러움이 영화의 가치를 더 높여 준다.

국가: 한국

감독: 이충환

출연: 최원균, 이상순

평점:

 

: 늙은 농부의 부인은 불만이 많다. 자신이 만 16살에 시집와 남의 집 살이를 8년이나 하고 평생 고생만 하는 인생이 모질기만 하다. 

소도 안됐다. 소도 자신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일만 하다가 죽는 것이 안쓰럽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불쌍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참 불쌍타’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편에게 사람보다 낫다고 말할 때는 친자식을 대하는 듯하다 .( 남편은 어릴 적 침을 잘못 맞아 다리 한쪽을 전다. 기어 다니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 그래서 소가 죽을지 모른다고 농약도 안 치는 남편을 나무라면서도 이해한다.

아픈 다리를 절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꼴을 베는 남편이 못마땅해도 그러려니 한다. 저 소가 9남매를 키웠다. 그러니 보통 15년을 사는 소가 40년을 살도록 애지중지 한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소 덕분에 여태 살았고 없었으면 벌써 죽었다. (이 긴 세월이 소의 축복인지 고통인지 소가 아니어서 알지 못한다.)

제목의 ‘워낭소리’는 소의 목에 매단 방울이 울리는 소리를 말한다. ( 소리는 워낭뿐 만이 아니라 소쩍새를 비롯한 각종 새의 울음, 개구리, 풀벌레, 비바람, 라디오 등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태평가’ 소리가 흥을 돋구는데 상황은 태평하지 않으니,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농부와 부인과 소가 벌이는 이 기록물은 울림이 크다. 많은 사람이 보고 공감했다. 흥행에 성공했고 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사람과 개나 고양이가 아닌 소의 교감이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소가 죽을 때 울기도 했다.

소는 미물이다. 그러나 황희정승의 고사에도 나오듯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두 마리 소를 키우는 농부는 어느 소가 좋으냐고 묻는 황희의 질문에 귓속말로 말한다. 왜 그러냐고 하자 다른 소가 알아 듣기 때문이라는 것.

소를 키워 학교를 보내고 소를 키워 아들, 딸 시집 장가를 보냈다는 말은 흔하다. 그만큼 농촌에서 소는 돈벌이의 일등공신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한편 소 때문에 지구 환경이 급속히 나빠진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대략 15억 마리의 소가 지구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 소 사육 두수는 2050년에는 50억 마리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릿수를 제한하지 않는 한 인간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일로, 고기로 혹은 유희의 대상으로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다 죽는 소의 운명이 앞으로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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