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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미망인(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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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미망인(1955)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8.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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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그 가운데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 생기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편이 죽고 아내와 아이만 남았다면 살림살이는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마음의 상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의 주인공 미망인( 이민자)도 여기에 속한다.

남편은 어디서, 왜 죽었는지 설명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한국전쟁이 단란한 그를 잡아갔을 것으로 짐작한다.

여기서 단란을 강조한 것은 주인공 미망인이 남자를 밀어내는 조신한 스타일이 아니라 잡아끄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편에게도 살갑게 대했을 것이고 그러니 그 가정은 단란 그 자체였을 것이다. ( 여기서 단란이 무엇이냐고 묻지 마시라.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단란주점의 그 단란한 것을 연상하지도 마시라.)

미망인에게는 어린 딸이 있는데 학교 공과금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니 앞서 말한대로 형편이 좋지 않다. 혼자도 벅찬데 딸까지 있으니 미망인의 삶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감독은 미망인을 슬프지 않게 그렸다. 여성 감독의 섬세함은 미망인의 힘든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육체에 주목했다.

이후의 화면은 지리리 궁상과는 거리가 멀다. 미망인의 화려함이 화면을 압도한다.

혼자 사는 여성의 고통이 아니라 혼자여서 기쁜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못하고 살았음에도 그녀는 이제 남편의 여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여자여야 한다는 것이 감독의 판단이다.

그래서 감독은 미망인에게 젊은 남자(이택균) 를 붙여 주었다. 그러기 전에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남편 친구인 사장과 그렇고 그런 관계로 엮었다. (여자가 먼저 전화해서 만나자고 한다. 대단히 노골적이다.)

사장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젊은 남자에게도 그렇게 한 것에 대한 이유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남녀 관계는 꼭 어떤 이유가 있어야 만이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

이른바 양다리를 걸치는 작전이다. 그녀의 작전이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관객의 가슴은 등장인물처럼 마구 두근거린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 봐서 여자의 이런 행동은 매우 충격적이다.

더구나 미망인의 남자에 대한 관심은 관심 정도가 아니라 농락의 대상이다. 한 마디로 손아귀에 쥐고 흔든다고나 할까.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것이 흐르는 냇물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니 그녀에게 죄책감 같은 것은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녀는 처음과는 달리 임자가 있는 나이든 사장보다는 젊은이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사장에게서 돈을 뜯어내 그 돈으로 둘이 함께 살 가게를 차린다.

행복한 그녀. 전쟁과 남편의 죽음은 그녀를 수렁에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수렁에서 건져 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행복은 그녀가 짓는 표정에서 드러난다.

방에서는 남자의 가슴에 기댄 채 수작을 벌이는데 과감한 것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그녀의 행동은 영악하며 세련됐다.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딸을 옆 방에 사는 홀아비에게 맡겼다.

기존 전통관의 여성성과는 아주 동떨어진 행동이다. 이런 모습을 본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사뭇 궁금하다.

나는 그런 여자(정숙치 못한)가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사장만으로는 부족해 젊은이와 놀아나는 그녀. 미망인에게 이런 표현은 점잖치 못한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은 그 말 이외의 다른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남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사장에게서는 돈을 얻어 내고 젊은 남자에게서는 육체를 구하는 미망인의 처신은 나쁘기보다는 응당 그리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망인 역의 이신자가 워낙 예쁘기도 하고 연기력도 좋아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서구적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당시 한국 여성의 체형보다 크고 몸 역시 글래머 스타일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체형에 어울리는 흰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우아한 한복을 입고 거울 앞에 앉아 오른손으로 볼을 만지면서 초점없는 눈으로 먼데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거리로 나서고 혹은 차를 타고 저 멀리 산속의 절로 데이트를 나갈 때면 그녀의 신발 소리는 나지 않고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사장 부인(박영숙)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미망인이 울고 갈 정도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시켜야 마땅하다. 정조 같은 게 있다면 개나 주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한다.

남편에게 발각돼 가정 질서를 지키라는 점잖은 꾸중 같은 것은 들어도 못 들은 척 안중에 없다. 자신의 바람에는 너그러우면서 미망인이 남편에게 접근하는 것에는 질투가 대단하다.

더러운 년이라는 쌍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젊은 남자( 앞서 나온 바로 그 남자)를 만나자마자 홀딱 반해 모든 것을 던진다.

수영복 차림의 그를 탐하는 그녀의 모습은 남편이 고용한 인부의 사진에 고스란히 찍혔다.

남편이 그 사진을 보여주는데도 그래서 뭐 어쩌겠느냐는 표정이다. (사진을 미망인에게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여자의 대답은 이렇다. 가정을 위해서 역시 참으셔야죠. 웃기는 짬뽕이다.)

사장 역시 그렇다고 해서 주먹질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시간을 뺏기기보다는 극히 순수한 마음? 으로 미망인과 어울리는 일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만나 다리가 성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남자,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남녀의 관대함, 무관심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등장인물의 행태는 지금 봐도 많이 앞서갔다.

사장은 미망인을, 사장 부인은 젊은 남자를 탐한다. 미망인은 둘 사이를 오간다. 미망인과 사장 부인은 따라서 친하기보다는 앙숙 관계다.

젊은 남자의 행태도 볼 만하다. 영화 간판을 그리는 그의 감수성은 한 여자, 즉 미망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의 시대정신은 미망인처럼 자유분방하다.

미망인이 두 남자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미망인과 사장 부인, 두 여자 사이를 거침없이 횡단하고 있다.

거기다 전쟁 전에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으니 그 남자의 힘은 젊음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마음에서도 나온다고 봐야 한다.

옛 여인과 만나 숲속에서 이중창을 부를 때면 사장 아내와 미망인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상흔의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오직 현실에만 충실한 젊은이의 행태는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마땅한가, 아닌가.

네 명의 남녀가 벌이는 애정행각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예상이 가능하나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후반부로 가면 대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독화술 전문가를 동원해 주인공들의 입술 모양으로 대화를 알아내 자막처리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사가 없고 화면만 있는 것도 고맙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는 화면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라진 대사와 필름의 복원이 기적처럼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국가: 한국

감독: 박남옥

출연: 이신자, 이택균

평점:

 

: 우리나라 최초 여성 감독의 첫 작품이며 마지막 작품인 <미망인>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작품이 갖는 영화적의미는 작지 않고 크다.

시대를 앞서간 남녀의 자유분방함이 대단하다. 주인공들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영화에서 여성은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다. 가르침이나 계몽과도 거리가 멀다. 주체적이며 자발적으로 남자를 찾고 갈구한다.

미망인은 물론 사장 부인도 그렇고 뒤에 나오는 젊은 여성도 그렇다.(손에 강아지 풀을 들고 나비처럼 나는 모습은 선정적이다.)

이들은 피해자이면서 약자이고 도덕적 희생양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눈은 한 세대를 먼저갔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는 자막을 음미해 보라.

극작가 남편이 시나리오를 쓰고 언니가 제작비를 댔다. ( 그래서 크레디트가 자매영화사다.) 감독이 아이를 업고 출연진들의 밥을 직접 해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모래사장이 인상적인 당시 뚝섬 모습, 한강대교 , 전신주, 전철, 수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차와 사람, 먼지 날리는 도로 풍경, 아주 작은 올드카도 구경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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