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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낮의 형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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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7.14  18: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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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는 보지 못하고 일부만 봤다. 시계를 보면 시간을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초침이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눈길이 갔다.

몇시 인지 알기 위해 시계를 보았으나 정작 시간은 보지 않고 초침의 움직임에만 눈길이 따라갔다. 시간을 잊고 그렇게 몇 바퀴 초침이 돌아갔고 그 만큼 더 시간이 지났을 무렵 문득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3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애초 1시를 예상했다가 3시 경으로 바꾼 나의 추측이 맞아 떨어지자 내기를 걸어서 이긴것처럼 잠시 기분이 우쭐했다.

자다 깨서 지금이 몇시 인지 분침까지 정확히 맞추었을 때 느끼는 오싹하는 소름도 돋았다. 세시 오분쯤 됐나 하고 보니 세시 오분일때 사람은 흥분하기 마련이다.

마치 골든 벨을 울린 고등학생이라도 된 듯 했다. 교장 선생님은 물론 담임선생님과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혼자 있으면 이런 상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둠의 정점을 지났으나 아직 새벽은 오지 않은 그런 사각지대의 시간을 통과 하는 지점이 아닌가.

나는 일어서려다 말고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이 조용히 몸을 구부리고 밖의 상황을 보지 않고 알아 맞추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세상에 나와 첫 사냥을 할 때 보여주는 새끼 고양이의 시늉을 내면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깨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몸을 받친 손목에 힘이 잔뜩들어 갔다.

그렇게 얼마동안 텐트 안에서 텐트 밖의 상황을 추측했다. 그 사이 바람은 죽었고 비도 멎었다.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무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고막 속에서는 벌이 날개 짓을 할 때 내는 욍욍 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양말도 신지 않고 등산화를 걸쳤다. 옷을 걸치듯이 그렇게 한 것은 신발 끈을 묶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겨우 발이 들어가자 나는 텐트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젖혔다. 그리고 머리부터 앞으로 내밀고 몸을 빠져 나왔다. 마치 굴속에서 뱀이 나오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몸을 비틀었다.

밖은 어두웠다. 그러나 가까운 것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반사됐다. 굳이 색깔을 말한다면 아마도 푸른빛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이 별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능선을 벗어나 대청봉에 닿으면 손에 잡힐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별은 낮달처럼 아래로 내려와 있었는데 크기가 제법 컸다. 아직까지는 지구의 푸른 별이 지켜지고 있었다.

새벽 기운의 어스름한 불빛은 별이 내는 반사광이었다. 그것은 꺼져가는 모닥불이 바람이 불어오자 다시 살아나면서 내는 그런 푸르스름한 빛깔이었다.

나온 김에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더 둘러보았다. 뭐하나 잘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낮에 보아 두었던 흐릿한 형상들은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때 뒤쪽에서 어떤 인기척 같은 기운이 들었다. 등골이 뒤로 접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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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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