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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땡볕(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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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5.08  10: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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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다. 얼굴을 가릴 양산도 없다. 솥단지로는 어림없다. 해는 바로 온몸으로 내리쬔다. 땡볕이다.

춘호(하명중)가 거칠게 입을 놀린다. 젊은 아내 순이(조용원)가 하녀처럼 따른다. 두 사람은 먼 길을 걸어왔다. 해는 아직 중천이다. 어느 계곡에서 두 사람은 잠시 쉰다.

그제서야 여자도 솥단지를 내려놓는다. 두 사람은 막 결혼한 신랑 신부로 보인다. 그러나 애정 같은 것은 없다. 춘호는 이유 없이 아내를 박대하고 아내는 무조건 순종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금광을 깨는 노다지가 아니다. 광산은 폐광된 지 오래다. 춘호는 하릴없이 노름이고 술판으로 쥐꼬리 재산마저 탕진한다.

마을에는 이주사가 고리대금업으로 주민들의 삶을 쥐락펴락한다. 이자를 값 지 않으면 부인을 끌고 간다. 하는 짓이 왜놈보다 더하다.

술집 작부 향심(이혜영)이는 춘호에게 끌린다. 훤칠한 외모와 남성의 힘 때문이다. 쇠라도 뚫을 것 같은 오줌 줄기를 막아서며 향심이는 색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젊고 예쁜 아내는 아랑곳않고 춘호도 한 눈을 판다. 가진 것 없는 놈이 푼돈이나마 향심의 속곳으로 흘러가니 순이네 형편은 더 쪼그라든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은 들로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는 순이의 억척스러움 때문이다. 어느 날은 구절초가 활짝 핀 산골짜기에서 더덕 무더기를 발견하고 바구니를 채운다.

이주사의 노리개로 전락한 강릉댁이 보리 말이나 주며 그것과 맞바꾼다. 순이도 이주사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다.

말로만 듣던 세도가 확인되자 순이는 더욱 열심히 산으로 들로 먹이를 찾아 나선다.(그러다가 뱀과 마주치자 그것을 잡으려고 호미를 들고 마구 찍어 댄다. 그러나 뱀은 도망치고 그녀는 허탕을 친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뱀은 호미로 잡을 수 없다. 그러다가 물리기 십상이다. 뱀을 잡기 위해서는 긴 막대기가 제격이다. 호미대신 손으로 잡는 시늉을 했더라면 리얼리티가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구절초 꽃을 보고 반갑게 다가들며 더덕을 깨내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다.)

춘호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허우대 멀쩡한 자신이 한밑천 못 잡을리 없다며 바람만 잔뜩 들어있다. 향심이는 돈 오원을 요구한다.

그러면 서울사는 삼촌에게 이야기해 한 자리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 큰 돈이 춘호에게 있을 리 없다. 춘호는 순이를 매질한다. 도망가면 쫓아가서 그 짓을 하고 멈추면 들입다 내갈긴다.

몽둥이로 손으로 발로 짓이기니 갸날픈 그녀의 몸은 성한 데가 없다. 쓰러져 허우적 거리는 그녀에게 “계집 좋다는 것이 무어냐” 고 되레 호통친다.

“남편 걱정도 덜어야지, 끼고 잠만 자는 계집이냐”고 불벼락이다. 장가들어 손해 본 것은 나고 다른 년들은 알아서 남편 뒤치다꺼리하는데 너 같은 ‘빙신’ 하고는 살고 싶지 않다고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비가 온다. 땡볕이 걷히고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다. 순이는 강릉댁을 찾아 나섰지만 그녀는 없고 대신 코가 큰 이주사가 그것을 벌름거리며 댓바람에 반갑게 다가선다.

새댁의 외모에 군침을 흘러던 이주사는 제 발로 걸어들어온 순이를 마다할 리 없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순이도 마지 못해 한다는 듯이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앙탈을 부리다가 그의 품에 안겨 버린다.

그러기 전에 그녀는 할 말은 한다. 그리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다. 그녀의 입에는 돈 오 원이 물려 있다. 마침내 그녀가 개처럼 돈을 물고 집에 오자 춘호는 향심이와 삼촌을 만나 피 묻은 돈을 그들에게 건넨다.

소달구지 타고 삼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들은 탱볕 보다 더한 뜨거움으로 한바탕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 이 장면은 그럴듯하다. 이혜영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가 일품이다. 핑크빛 우산이 돌아갈 때면 눈도 따라 돌아 조금 어지럽다.) 그 무렵 마을 사람들은 이주사를 아주 아작낸다.

횃불을 들고 쳐들어가 그를 쳐 죽이고 집을 불태운다. 심상치 않은 사태를 깨달은 춘호는 죽음의 소굴에서 겨우 빠져나와 줄행랑을 친다.

순이는 안중에도 없다. 그는 해변가를 돌며 향심이의 행적을 수소문한다. 얼굴이 말상이며 젖통이 유난히 큰 그녀의 행색을 이야기 하지만 좀처럼 향심이를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그는 놈팽이들 틈에 끼여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폐병쟁이 삼촌은 자신은 삼촌이 아닌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춘호가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한 놈을 해치운 그녀는 문을 열어 제치며 손을 뻗은 다음 다음 놈, 다음 놈, 다음 놈을 길게 외친다.( 이 장면은 소달구지 정사신과 견줄만한 영화의 최고 순간이다.)

울분을 삭이며 춘호는 발길을 돌린다. 철길을 따라 걷다가 마을 사람을 만나 북간도로 간다는 말을 듣는다.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이다.

왜놈 치하에서는 호구지책도 어렵다. 춘호는 자신은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악문다. 이번에는 향심이 대신 순이를 찾아 나서고 마침내 순이와 재회하는 춘호.

그러나 순이는 죽기 직전이다. 배는 부어오르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다. 그래도 일편단심 기다린 남편이기에 반가움이 사무친다. (빙신이라고 욕만 하는 남편이 뭐가 좋다고 허구한 날 그를 기다리고 그의 아기를 낳지 못해 안달하는 순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왜놈이 하는 읍내 병원에 겨우 가지만 의사는 수술비를 요구하고 부부는 발길을 돌린다. 죽기 전 그녀는 구리반지를 빼서 준다. 그러면서 이 안에는 금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이년아, 그것을 왜 이제야 말해." 춘호는 억지를 부린다.

시어머니의 유품을 건네면서 순이는 숨을 거둔다. 춘호는 하얀 쌀밥이 가득한 솥단지를 발로 걷어찬다. 무척이나 사내 다운 기색이다. 그러고 중얼거린다. 도망치지 않고 살아 남을겨.

국가: 한국

감독: 하명중

출연: 하명중,이혜영,조용원

평점:

: 하명중 감독은 김유정 소설을 원작으로한 <땡볕>을 보기좋게 만들었다.

그러나 원작과는 너무 많이 다르며 김유정의 다른 작품들을 조금씩 짜깁기한 느낌이 든다. ( 원작에서는 아내가 대학병원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때는 중복이라 땡볕이 강한 어느 날이다. 지게 위의 아내는 앓고 있다. 남편은 아내의 병이 희한해서 연구용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드문 병일수록 월급도 주고 치료도 해준다는 말을 들은 터다. 그러나 아내는 뱃속의 죽은 아이 때문에 아픈 것이다.)

감독은 김유정을 흠모한 나머지 영화 시작 전에 이런 문구를 적어 놓았다.

1930년대 말 일제 치하에서 단편소설 작가로 활동한 이력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문학사상 최초로 토착적 유머를 정착시켰고 최적의 장소에서 최선의 언어를 배치했다. 무지개처럼 찬란히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작가 김유정의 한을 아픔을 눈물겨운 슬기를 그리고 못 다한 그 시대의 말을 영상화하기로 했다.”

소개 글에서 언급했듯이 김유정의 토착적 유머는 가히 배꼽을 잡고도 남을만하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는 음담패설이나 성적 비하로 들려 영화속 이야기를 여기에 적을 수는 없다. 춘호와 향심이와 혹은 몽태(최주봉 )가 지껄이는 농은 듣는 순간 흠칫거리게 만든다.

그러니 궁금한 성인 독자들은 어서 보기를 권한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더 좋지만 시간이 없다면 영화만으로도 작품을 감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잔학한 일제의 수탈과 궁핍이 절정에 달한 민초들의 거친 삶과 끈질긴 생명력. 그 와중에 왜놈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이주사의 등장에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서글픔은 보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먹고 나서야 도덕’이라는 말이 있다. ( 브레이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대목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윤리니 도덕이니 들먹이는 것은 가당찮다.

강릉댁이, 향심이가, 순이가 그리고 마을 부녀자들이 이주사를 격멸하면서도 그에게 몸을 던지는 무기력은 그래서 더 애잔하다.( 남편들은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등떠밀기도 한다.)

향심이의 남편이 지껄이는 소리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다.

‘지금은 무언가 찿는 시대가 아닌 참고 견디는 시대다. 저 여자의 눈에 당신이나 내가 무엇으로 비치겠느냐. 병든 나와 새끼 지키고 언젠가는 올 우리의 내일을 기다리며 죽지만은 말자.’

하명중 감독은 <탱볕>으로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조용원은 이후 영화배우로 명성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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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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