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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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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4.18  17: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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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동자가 어린 직공을 만나 오늘 밤에는 눈 대신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 내리는 거리. 어린 꼬마(홍경인)가 우산을 판다. 파란색 비닐의 나무 우산. 대개 일회용이지만 소나기에 요긴하게 쓰였다.

그 나무 우산은 70년대 말까지 심심찮게 등장했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도록 철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나 정교해서 펴고 접을 때 우산 쓰는 맛이 제법 있었다.

일회용 그 우산이 기억 속에 또렷이 되살아난다. 파란색 나무 우산.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나오는 주인공 전태일이 팔던 바로 그 우산.

비가 와도 우산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어린 소년이 서울 거리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산 사에요. 우산.’ 그러나 우산은 쉽게 팔리지 않는다.

그때 한 여성이 얼마냐고 묻는다. 굳은 표정의 소년이 활짝 웃으며 달려간다. 한 다 발 우산을 옆구리에 꼈으나 자신은 정작 비를 흠뻑 맞으면서.

그 부인은 35원이 비싸다고 집어 던지고는 택시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다시 굳은 얼굴. 그 위로 빗물이 세게 내리 붇는다. 웃음과 절망의 교차.

한 신사가 그런 꼬마를 눈여겨본다. 먹물을 먹은 영수(문성근)다. 그는 쫓기고 있다. 이른바 반체제 인사로 수배를 받고 있다. 세월은 삼엄해 민청학련과 인혁당 인사들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자신도 쫓기면서 그는 불꽃처럼 살다간 한 노동자의 짧은 생을 회상하고 있다. 5년 전. 세상 사람들은 벌써 그를 잊었지만 멀리 있는 봄을 기다리듯 그를 생각하고 있다. 전태일.

영수에게는 예쁜 동거녀(김선재)가 있다. 세련된 그녀가 노동운동을 한다. 영수는 그녀에게서 현실의 힘겨운 일상을 목격한다. 그리고 꼬마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태일의 어머니를 만나고 평화시장 공장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의 긴 꼬리 음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둠은 세상을 지배하고 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가차 없던 시절. 태일은 청계천 구석의 한 허름한 지하 방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시다에서 재단사가 됐다. 수출물량은 날로 늘어난다. 밤을 새는 날이 많아지고 여공들은 결핵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렇게 일하고도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다. 가난은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유령처럼 배회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 연속. 그런데도 삶은 나아지지 않고 뒷걸음질 치고 그런 삶에 대해 태일은 의문을 품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원인을 찾고 해법을 모색하는데 골몰한다.

남들이 잠깐 쉴 때도 책을 읽고 무언가를 노트에 적는다. 그러다가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배운게 적은지라 읽어도 무슨 뜻인 줄 모른다.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면, 물어보면 대답해줄 배운 사람이 곁에 있다면 하고 태일은 한탄한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는다. 스스로 읽고 이해하면서 차츰 노동 현실에 눈을 뜬다.

그리고 그런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기도 하고 노동청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이었다. 그는 허탕을 친다.

어디에도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조직했다. 바보회를 만들어 요구사항을 적어나갔다. 삼동회를 통해 동료들을 각성시키고 자신을 더 단련했다.

사장에게 환풍기 시설을 달아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우연히 만난 경향신문 기자에게 평화시장 어린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렸다. 그런 사실이 신문에 났다. 신문을 사서 돌렸다. 서로 돌려 보면서 변화된 노동 현실을 기대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처음에는 들어 줄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는 그럴 돈이 없다고 버텼다. 지금이 어떤 시국이냐고 되레 큰소리쳤다. 다시 절망이 찾아왔다.

약 먹고 주사 맞으면 버티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보다 어린 그런 동생들을 위해 차비를 아껴 먹을 걸 사다주고 대신 일을 해주는 태일.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액자 속의 근엄한 독재자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고 열심히 일할 때라도 채근한다.

울분이 뼛속 깊이 몸부림친다. 마침내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 대학도 들끓었다. 유신철폐, 독재 타도의 목소리가 높았다. 경찰이 나섰다. 세상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2살 전태일. 그는 자신의 한 몸을 불사르기도 작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고 자신의 몸도 그렇게 했다. 죽어가면서 그는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영수는 적어서 책으로 묶었다.

이른바 전태일 평전, 전태일은 세상에 그렇게 알려졌다. 1970년 11월 13일 그는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났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세상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노동 현실도 조금씩 좋아졌다. 한 청년의 죽음이 후에 올 많은 청년들의 일터를 바꾸어 놓았다.

국가: 한국

감독:박광수

출연: 홍경인, 문성근, 이선재

평점:

: 이 글을 쓰는 즈음 <파업전야> (1990)가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영화는 노동 현실을 고발한 최초의 성공한 영화였다.

그러나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알음알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필름을 빼앗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썼으나 필름은 살아남아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독립영화로 <파업전야>는 30만 명 이상이 본 것으로 전해졌고 이 영화의 힘은 노동자들의 자각에 기여를 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는 작은 주춧돌 역할을 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나왔다. 전태일의 뒤를 밟는 인물 영수는 아마도 조영래 변호사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고 조영래 변호사는 생전에 약자를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약했으며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흉상을 제막해 그를 기리고 있다.

암울한 시대에 행동했던 양심을 후배 변호사들이 보라는 의미였다.

한편 전태일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 기념관이 하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지역 관계자들의 관심으로 건립움직임이 최근 일고 있다.

서울에는 그가 활동했던 청계천 인근에 기념관이 완공돼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홍경인의 쏘는 듯한 눈빛, ‘진실의 힘... 사실의 영화’라는 포스터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시종일관 어둠이 지배하고 태일이 등장할 때는 흑백으로 영수가 나올 때는 컬러 화면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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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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