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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명상록>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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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명상록> (169)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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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현재가 흡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이 없으므로 뒤를 돌아보고 지금을 관조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나날이라면 자신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마음을 나타내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의 첫 구절에서 훌륭한 조상과 훌륭한 스승과 훌륭한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해서 이처럼 누구나 감사함을 표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황제의 위치에 있는 자라면 다른 사람 아닌 자신의 훌륭함에 더 매료되기 십상이어서 감사할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라고 자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감사함의 대상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있다.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가 이렇게 타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은 그의 사유 세계가 얼마나 높고 깊은지 헤아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이런 마음을 혼자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자성록> 으로도 번역되고 있는 <명상록>이 되겠다.

무엇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순수의 세계로 돌아가도록 황제를 이끌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가 이 책을 저술한 배경으로 이해할 만하다.

121년에 로마 귀족으로 태어난 그는 161년 40살이 되던 해에 양자인 동생과 함께 공동 황제로 취임한다.

황제는 취임의 기쁨도 잠시 숱한 전쟁의 상황과 맞닥뜨린다. 정복과 후퇴가 하루도 빠짐없이 벌어지고 흑사병이 창궐한다. 삶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늘 가까이에서 그를 따라다닌다.

이미 철학(스토아)을 이해했던 그는 피 흘리는 칼을 닦으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고뇌는 오래가지 못했다. 칼을 채 닦기도 전에 다시 말을 타고 전쟁터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게르만이 다시 침공해 왔다. 로마군도 강했지만 거친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는 데는 수많은 병사의 죽음과 황제 자신도 그런 순간을 숱하게 넘겨야 했다.

겨우 막아내고 막사에 돌아올 때면 달은 휘영청 밝고 멀리 별들은 작은 빛을 내면서 밤하늘을 밝힐 것이다. 이 순간 그는 다음 날 전쟁도 잊고 그 높은 곳을 바라 보면서 인생무상에 가슴을 친다.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술잔을 찾고 취기가 오를 즈음 황제는 부관의 다급한 전갈을 받을 것이다.

장수 카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화급히 피하라는. 외적을 막기에도 급급한데 반란이라니. 호전적인 야만인을 상대하랴, 호시탐탐 권좌를 노리는 심복을 처단하랴, 황제는 몹시 고달프다.

한 순간 그는 왕관을 벗어놓고 한 번 더 인간과 인간의 행동과 그 속에 숨은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깊은 사색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칼을 갈고 적의 심장을 찌르고 피 묻은 손으로 펜을 들고 글을 끼적였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살고 있으며 로마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것이 궁금해 철학 속으로 ,다른 인간의 마음속으로 자꾸 빠져들어 갔다. 마치 게릴라전을 앞두고 혹은 끝내고 총 대신 시가를 옆에 두고 시를 써내갔던 체 게바라처럼.

언제 적이 돌격 앞으로 나팔을 불며 돌진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가 단숨에 길고 긴 책을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간순간 그때마다 떠오르는 짧은 편린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작 연도도 불분명하고 원본도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가 죽은 후 후대 사람들이 짜 맞추고 다시 편집하고 재편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니 어떤 책인지 구체적으로 조금 살펴보자. 이 책은 모두 12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장마다 연결되는 고리는 희미하다. 그래서 1장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어떤 장을 펼쳐 읽어도 무난하다. 그래도 처음부터 읽는 것이 끝까지 읽는데 도움이 된다.

1장은 앞서 말한 대로 감사함으로부터 시작된다.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으므로 황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인 다른 사람의 고뇌도 함께 아파했다.

그래서 감사함과 함께 잘못을 저지를 만한 성질을 가졌음에도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을 신에게 재차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인 아버지로부터 강한 오만을 고칠 수 있었고 궁전에 살면서도 호위병이나 화려한 옷이나 횃불이나 동상 등 외형적 사치를 탐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슬기를 받은 것을 감사했다.

평민처럼 검소하게 살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지배자의 통솔력이 필요할 때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위신과 권위를 잃지 않는 것을, 철학에 빠져들면서도 소피스트의 궤변에 흔들리지 않은 것 또한 감사했다.

고상한 품행과 격정에 휘둘리지 않는 온화함, 겸손과 사내다운 기백, 신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남을 위한 봉사 그리고 나쁜 행동뿐만 아니라 나쁜 마음도 삼가야 하고 부유한 생활에 빠지기보다는 검소해야 한다는 것을 조상에서 배운 것을 감사했다.

이밖에도 감사한 것은 차고 넘친다.

어려서부터 말과 생각을 글로 쓰는 법을 익히고 맨몸으로 나무판자에서 자면서 자신을 단련하고 으스대고 뽐내는 것을 따라 하지 않고 상대가 불쾌한 행동으로 화를 돋구었다 해도 화해를 원하면 받아주는 법을 배운 것에 대해 감사했다.

말 많은 사람에게 섣불리 맞장구치지 않고 운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며 용감하면서도 동시에 온화하고 재능이 있어도 보잘것없다고 겸손해하며 남의 흠을 들추어내지 말고 천박한 자라고 그 자리에서 창피를 주지 않고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말하지 않고 철학을 존중하고 선행을 늘 실천하고 아낌없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극기하는 정신을 배운 것을 감사했다.

 

뚜렷한 목적의식, 거짓을 멀리하고 용서와 자비를 따르며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떠한 것에도 귀를 기울이며 나랏일을 결정할 때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우정은 한결같으면서 지나치게 헤프지 않고 값싼 칭찬이나 아부를 한 눈에 가려낼 수 있는 힘을 준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하늘과 운명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거듭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2장에서부터는 감사함을 떠나 인간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고 있다. 

인간의 고귀함, 이성에 따른 행동, 선과 악의 본질, 생과 사, 우주 만물, 철학과 운명, 쾌락과 고통, 정의와 불의, 공익과 사익, 더 훌륭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내면과 외면, 칭찬과 아부, 담대한 행동, 전쟁과 평화, 순종과 저항, 자연과 신의 섭리, 육체와 영혼, 감정과 충동, 인내와 증오, 정의와 불의에 대해 그리고 우주가 당신에게 맡긴 역할이 작아 불만인 인간들에게도 한마디 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오만과 편견 등을 설파하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황제는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런 황제를 오지랖이 넓다고 탓해서는 안 된다. 황제의 박식함과 너그러움을 찬양해야 마땅하다.

지금 현실에 바로 적용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구구절절 옳은 말 잔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모든 구절을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다. 

하지만 게으른 독자들을 위해 되새겨 볼만 경구를 그대로 적어 놓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돌리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읽으면서 줄 친 부분을 옮겨 본다.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찬양받는다고 해서 그 자체가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는다. 보석은 칭찬받지 못해도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황금이나 상아, 자줏빛 옷감도 마찬가지다. 충동이 일어날 때면 그것이 이치에 맞는지 생각해 보라. 마음의 평정을 바란다면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고 철학자 데모크리투스는 말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대개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없애면 시간의 여유는 늘어나고 근심이나 걱정은 줄어든다. 무슨 일을 할 때는 이것은 꼭 필요한가,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라.

선한 생활 올바른 행동과 자비로운 품성을 간직하려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 또한 자신에게 물어보라. 실망하지 않으려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지 말라. 

기억하는 사람이든 기억되는 사람이든 모두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는 나는 인간답게 살고자 일어난다고 생각하라. 그것 때문에 내가 태어났고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 

불평하려고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포도송이를 맺고 나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포도나무처럼 남을 돕고 나서 돌아올 보답을 계산하지 말라. 

지금 이 순간 누구의 영혼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지 생각하라. 어린아이의 영혼인가, 청년 혹은 여자 혹은 폭군 혹은 가축이나 야수의 영혼인가, 수시로 자신에게 자문하라.

12권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당신은 이 거대한 세계의 한 시민으로 태어났다. 그 기간이 5년이든 100년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신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은 폭군도 부정한 재판관도 아닌 당신을 세상에 보낸 바로 자연이다. 

그것은 연출가가 배우를 고용했다가 해고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당신은 5막짜리 연극에서 3막까지만 출연했을 뿐이라고 불평하는가. 

당신의 인생은 3막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의 연극이 언제 막을 내릴지는 당신을 고용한 자연이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웃는 낯으로 떠나라. 당신을 떠나게 하는 자연도 당신을 향해 웃어 줄 것이다.

: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황제도 이처럼 자연 앞에서는 무력했다. 신 앞에서는 겸손했고 철학에 고개를 숙였으며 적에게는 관대했다.

그러나 황제의 글과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신이 아닌 인간의 한계였다. 그는 숱한 좋은 말을 남겼으나 제위를 아들에게 넘겨주면서 5현제의 마지막을 희미하게 장식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리에이터>에서는 왕위를 자신보다 더 뛰어난 막시무스에게 주려한다. 아들 코모두스는 그런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가 된다. 

현실에서는 이와 달랐다. 아들과 공동 황제가 됐고 공화정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매우 높게 칭송했다.

그는 절제된 삶을 살면서 항상 정의를 사랑하고 잔혹함을 적대시하고 인간적이면서 자비로웠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영예롭게 살다 인생을 마감한 것은 군인이나 백성에 신세지지 않고 세습에 의해 보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깊은 사유와 철학과 이성의 힘으로 버텨 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끊임 없이 사색하고 고뇌했으며 이런 결과물을 기록으로 남겼다. 늘 경계하고 채찍질하면서 부족함을 이겨내려는 황제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문장마다 가득히 담겨 있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다른 황제나 시민들이나 장군들은 그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악한 마음이 들 때마다 곁에 두고 펼쳐 읽으면서 수시로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은 모두 이 책의 저자에게 돌려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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