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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19.8.22 목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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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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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1.12  13: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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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에 어치를 잡았다. 그때는 당가치로 불렀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산까치의 일종인 어치였다. 어치는 마당에 앉아서는 깡충깡충 뛰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까치의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그 까치는 100년도 넘게 묵은 팽나무를 보호막 삼아 나무와 땅을 오고 갔다. 학교에 돌아와 가방을 집어 던지고 마당으로 나와 보니 그 날은 어치가 유난히도 깍깍 짖어 댔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어서 나는 좀 당황했다.

그러다가 팽나무 위에 까치집이 있고 새끼가 막 부화한 것을 알았다. 어미는 내가 다가가자 새끼를 해치는 줄 알고 방어했으며 그런 어치를 향해 나는 손에 잡히는 돌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머리 위를 빙빙 돌거나 호버링 하듯이 잠깐 멈춰선 녀석에게 그것을 던졌다. 그래도 어치는 도망가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 끝에 나는 어치의 가슴에 돌팔매를 정확히 명중시켰고 어치는 순간 기절해 땅에 떨어졌다.

어치의 발에 나는 낚싯줄을 감았고 대문 기둥에 묶어 놓았다. 사발 종지에 물을 담아 놓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어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수소문 한 끝에 팽나무보다 더 높은 느티나무 꼭대기에 녀석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길게 늘어진 낚싯줄이 마치 거미줄처럼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줄은 마침 지는 석양을 받아 반짝였고 허공에 매달린 채 아무리 높이 뛰어도 잡을 수 없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어치를 보았고 그 모습을 다음날도 보았으나 그 다음 날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치를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그 일은 간혹 생각났고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의 환영이 또렷이 떠올랐다.

화면에서 보는 어치는 내가 잡았던 어치와 똑같았다. 갈색의 등이나 날개 죽지 주변에 파란색이 있는 것이 영락없는 녀석이었다. 동자승 해진 (황해진)도 나처럼 어치를 잡았다.

그리고 줄로 묶어 두는 대신 방에 두고 물을 주었으나 다음날 어치는 죽었다. 그는 죽은 어치를 깨진 기왓장으로 덮어 두었고 나중에 떠들었을 때 시체는 온통 구더기가 들끓었다.

나 어릴 적 시골이나 깊은 숲속의 산사에서나 어린애들이 놀것이 부족해서 이렇게 산 것을 곧잘 죽였다.

노승 혜곡 (이판용)이 살생장면을 보았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 감히 유추해 볼 수 없지만 해진아, 문 닫아라 하고 조용히 타이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자승은 커서 지금의 내 나이 보다는 적겠지만 만난다면 그 어치가 여전히 생각이 나는지 물어보고 싶다. (손에 잡았던 순간의 따뜻함과 작은 심장이 급하게 뛰었는지도.)

각설하고 그 절에 어느 날 젊은 스님 기봉(신원섭)이 올라온다. 중 눈썹을 한 것이 영락없는 스님 행세인데 깊은 수심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것처럼 얼굴 한가득 이다.

노스님과 해진 그리고 젊은 스님 셋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기봉 스님의 눈먼 어머니와 조금 이상한 여동생 정도가 나오니 출연진은 단촐하다.( 연출부도 그렇다. 배 감독이 감독은 물론 제작,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을 혼자 했다고 한다.)

출연진 셋이 수다를 떨거나 춤추고 노래하고 일하는 것이 아니니 화면은 빠르기보다는 느리고 자꾸 바뀌기보다는 한곳에 머물고 대사 대신 자연이 주 배경이 되겠다.

흐르는 계곡물 소리, 산 짐승의 울음소리, 계절 따라 바뀌는 산새 소리, 종소리, 등잔불 심지 타는 소리, 목탁 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가 고요한 화면 속을 더 숨죽이게 만든다.

장작불 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어린 동자승의 모습을 보는 관객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숙연해지고 자신이 마치 도를 닦는 기봉 스님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젊은 스님의 고뇌를 어찌 관객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혈육과 욕심을 박차고 나온 스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도를 터득하는 일일 터. 그러니 그의 수행은 수행이라기 보다는 학대에 가깝다.

깨달음에 대한 깊이가 깊어 질수록 노스님의 몸은 점차 쇠잔해 진다. 오랜 수행의 결과 혜곡은 자신의 숨길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말을 기봉에게 전해 주고 어느 날 길지도 않은 머리를 깎자고 냇가로 재촉한다.

열반에 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마침 그날 기봉은 해진을 데리고 산 아래 큰 절에서 벌이는 승무를 구경하고 저녁 늦은 무렵 산으로 올라왔다.

절 마당에서 문간에 비친 스님은 꼿꼿하다.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기봉이 가졌던 팽팽한 긴장감은 풀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자 스님이 옆으로 쓰러진다.

먼 길로 가기 전 스님은 자신의 죽음을 알려 번거롭게 하지 말 것과 관으로 쓸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려줬고 이 모든 일은 한나절 반이 넘어가지 않도록 다짐을 주었기에 기봉은 서두른다.

시체를 넣을 궤짝을 찾고 그것을 태울 장작을 모으고 불이 잘 붙도록 열심히 입으로 바람을 불고 석유를 뿌린다. 마침내 힘쓴 보람이 있는지 불길은 세차게 타오른다. 어둠이 가고 주변이 환하다.

산불을 조심하라는 스님의 당부대로 기봉이 신경을 썼는지 하늘로 치솟는 불길은 사방으로 번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만 화염을 품는다.

그 모습을 해진도 지켜본다. 시간이 지나고 불은 꺼지고 스님은 한 줌의 재로 남는다. 재를 골라 뼈 몇 조각을 추린 기봉은 돌로 그것을 잘게 부순 다음 흰 가루를 조심스럽게 뿌린다.

어치가 죽은 것처럼 스님도 죽었다. 어치가 죽었을 때 다른 짝은 심하게 울부짖었으나 스님이 죽었을 때 기봉과 해진은 우는 대신 마음속으로 슬픔을 삼켰다.

일을 마친 기봉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바랑 하나로 남은 스님의 유품을 해진에게 전해주고는 내려가서 너를 돌볼 스님을 올려 보내겠다고 한다.

기봉은 깨달음을 얻고 하산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스승을 찾아 자신이 갈구하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을까. 기봉이 떠난 절집에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진다.

국가: 한국

감독: 배용균

출연: 이판용, 황해진, 신원섭

평점:

: 화면이 느리니 스님이 받는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욕망이 최고조에 달한 젊은이. 머리를 자르고 장삼을 펄럭인 결과 해탈의 경지에 올라섰을까.

폭포 아래서 도를 닦고 시장 바닥에서 염불을 하고 온갖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참선을 해봐도 답이 없다. 스님은 다시 노스님 곁으로 돌아온다. 지팡이로 등짝을 얻어 맞은 기봉은 아픔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 아픔 때문인지 이런 헛소리를 지껄인다.

스님은 왜 산에 계십니까. 혜곡은 말한다. 강남에서 온 제비야. 별은 먼 곳에서 하늘의 균형을 잡는다. 너 같은 멍충이가 나를 찾아오니 내가 산에 있어야 한다. 선문답치고는 제법 이치에 맞다.

네가 선 곳이, 그 자리가 극락정토다. 그러나 젊은 기봉은 그 자리를 벗어나서 곧장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인다. 그 사이로 부처 얼굴이 언뜻 비친다.

종소리 은은하다. 화두의 바닥을 보았느냐. 육신이 세속과 맺은 인연이 끝나갈 때 던진 혜곡의 질문에 기봉은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나의 잔재를 너에게 맡긴다는 임무만은 충실히 했다. 기봉은 앞이 막히면 어디에 물어야 할지 이제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미 찾았다면 좋은 일이지만 찾지 못했다면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가는 것이라는 혜곡의 말을 더 새겨야 한다. 아직 그대는 도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치의 삶과 죽음은 해진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한편 이 영화는 한국 최고의 예술영화로 평가받는다. 이런 평가에 걸맞게 제 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금표범상을 비롯해 감독상, 촬영상, 청년비평가상을 받았다다.

기획 8년, 제작 4년이라는 오랜 제작 기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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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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