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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봉 일대 일제 동굴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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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12.26  09: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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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로 남은 곤을동 마을의 흔적.

제주 구시가지 인근의 사라봉에 오르면 시내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여기저기 오름이 있고 작은 건물이 있고 푸른 바다가 있고 파란 하늘이 정겹다.

제주 10경이라는 사라봉 낙조를 볼 수는 없었지만 지는 해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장관이 연상된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해발 108미터 정상을 오르면 입구가 작은 구멍 하나를 볼 수 있다.

오래돼 허물어진 이 구멍은 자연적으로 생겼다기 보다는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구멍 주변은 고사리 등 이끼 식물들로 덮여 있으나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는 유지하고 있다.

그 옆에는 푯말도 있다.

무심히 지나치려다 가만히 읽어 보니 일제의 동굴진지 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래서 끝까지 들여다 보았다.

제주 등록문화제 제 306호로 지정된 이 동굴의 정식 이름은 ‘제주 사라봉 일제 동굴 진지’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는 해안으로 상륙하는 연합군을 저지하고 진드리 비행장으로 불렸던 제주 동비행장과 현 제주국제 공항인 제주 서비행장( 정뜨르 비행장)을 방어 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했다.

사라봉 일대의 동굴 진지는 디긋자형과 일자형 그리고 입구가 세 개인 와이 자형 등 모두 8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설물은 1945년 무렵 패전이 짙은 일제가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은 침략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지만 실제로 구멍안으로 들어갈 볼 수는 없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주변을 둘러쌓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운동시설이 세워진 근처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건강해지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제의 만행과 대비가 부족해 나라잃은 설움을 지녔던 우리 선조들의 얼굴이 교차됐다.

사라봉을 넘어 바래봉 아래로 내려 오면 4.3 당시 가장 참혹했던 현장과 마주선다.

곤을동 마을 두 개를 쓸어 버려 어린아이는 물론 노인까지 단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했다.

흩어진 돌담은 여기 집이 있었다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바람은 고요한데 햇볕은 따사로운 어느 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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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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