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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시 원위치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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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시 원위치에 와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1.27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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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절대자는 마음으로 통했다. 철조망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그랬다.

원하는 것을 다 말해 버렸고 그것에 대해 확신에 찬 결정도 확인했으므로 나는 매우 편한 마음이 됐다.

그동안 절대자를 만나지 못했던 3년간의 노심초사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감을 여러개 먹고 막힌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음은 한없이 편했고 머문 노을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절대자도 모처럼 편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는 남아 있던 잔을 비웠다.

그리고 나에게 한잔 따르라는 시늉을 했으므로 나는 허공에 걸려 있는 병을 잡고 절대자의 잔을 채웠다. 그리고나서 나도 잔을 비웠고 절대자처럼 채워 달라는 시늉을 보냈다.

절대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나를 향해 병을 들었고 나는 그가 따르기 좋게 잔을 약간 기울였다. 잔을 받쳐든 두 손은 공손했으며 표정은 황공함이 가득했다.

절대자에게 나는 무한한 존경심과 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네가 흔들릴 수 있도록 허리를 뒤로 제치고 구부렸던 앞 발을 앞으로 쭉 폈다.

그네가 앞뒤로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엉덩이에 닿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네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절대자도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이번에는 절대자가 가는 방향을 확인해 보았다. 그는 마치 영화처럼 하늘로 향했는데 곧바로 직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비스듬히 사선으로 위쪽으로 점차 멀어져 갔다.

마치 활주로를 벗어난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네는 사라졌고 병과 잔도 그렇게 됐다.

나는 애초 그 모습 그대로 정상의 바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엉덩이의 감촉은 그네에서 떨어져 바위에 부딛힐 때 났던 충격이었다. 절대자와 나는 그런 식의 헤어짐이 서운하지는 않았다.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절대자는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안녕이라는 말 대신 할 일을 하고 다음 할 일을 위해 떠났던 것이다.

내가 앞으로 몇 년 후에 다시 절대자를 만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해 놓은 일들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기에 절대자는 언제나 내 주변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눈을 들었다. 석양은 그사이에 바다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다시 원위치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옆으로 돌려 철조망이 있던 자리를 쳐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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