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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땅이 오늘의 땅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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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땅이 오늘의 땅이 될 수 없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0.22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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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을 대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크다고 나보다 작은 것을 상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땅을 밟을 때도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개미를 밟아 죽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을 쫓아가서 밟아 죽였던 그런 때는 이미 지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한 생각에서 온 것이므로 자발적이며 따라서 마음가짐에서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으로 보니 예전의 땅이 오늘의 땅이 될 수 없었다.

땅도 살아서 꿈틀 거렸다. 무생물이라는 것에 생명을 불어 넣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흙을 밟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한 발 한 발 대딛는 발걸음에 감사함이 묻어 났다. 땅이 없다면 이렇게 딛고 다닐수가 없다.

그러니 힘들다고 마구 박차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걷어차지 않았다. 그렇게 사뿐 사뿐 걷자 종아리에 근육이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힘주어서 운동하고 있었다.

좋은 것은 언제나 이중의 효과를 가져온다. 걷기 운동이 근육강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밑에서 보았던 허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온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여기까지 온 자신이 대견해서인지 아니면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인지 큰 소리로 여기가 정상으로 가는 능선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떠드는 사람들의 이마위에 찬바람이 불었고 그들 이마의 땀은 어느 새 식었다. 몰려서 왔던 사람들은 무리의 힘을 빌려 소리를 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중첩된 봉우리의 아련함을 아지랑이 보듯이 손 가리개를 하고 눈여겨보았다. 소리를 지르는 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멀리 더 멀리 까지 보기 위해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길게 앞으로 뻗었다.

그 것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고 그런 느낌은 무리 진 사람들이 내뱉는 호령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을 차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산을 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어떤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것의 차이가 비록 이 봉우리와 저 봉우리 만큼 격차가 난다고 해도 게의치 않았다. 이 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 것보다는 동등하다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산은 좁은 새가슴을 바다만큼 넓은 가슴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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