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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프랑켄슈타인>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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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프랑켄슈타인> (191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6.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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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루체른은 마을이 오래됐고 경치가 아름다워 보기에 좋다. 알프스 자락에는 오뉴월에도 흰 눈이 걸리고 사시사철 맑은 호수는 은빛으로 빛을 낸다.

사람들은 언덕의 종탑에 앉아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데 여념이 없다. 인가의 숲은 나비와 벌과 꽃이 춤을 추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저마다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어떤 고통도 근심도 없는 지상낙원이 아닐까 이방인들은 잠시 환상에 빠진다. 이런 멋진 곳에 인류 최초의 인간 괴물이 태어났다고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렵다.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던 호기심 많은 제네바 출신의 최고명문가 태생인 젊은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연금술에 영감에 얻어 괴물을 만들어 내기로 작정한다.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힘을 얻게 된 그는 근육과 혈관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인간처럼 복잡하고 경이로운 동물에게 생명을 넣어 주는 것으로 인간창조에 도전한 것이다.

재료는 시체안치소와 해부실 그리고 도살장에서 공급받았다. 날밤을 세운 연구 끝에 그 해 낙엽들이 다 시들어 떨어질 무렵 연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11월의 어느 황량한 날 새벽 1시 생물체가 흐릿한 노란 눈을 뜨게 만든데 성공했다.

 

키가 2미터 50센티미터 가량 되는 인간은 흉측했다. 

무한한 노고와 정성 끝에 태어난 인간은 근육과 혈관이 드러나는 쭈글쭈글한 살갗에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을 가진 한 마리의 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공포와 혐오만이 프랑켄슈파인의 심장을 가득 채웠다. 

그는 미라가 살아 움직인다 해도 그처럼 흉측할 수 없는 괴물을 방에 남겨 두고 뛰쳐나와 어디론가 황망히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홀로 남기진 괴물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느 날 빅토르는 고향에 있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동생의 죽음을 알리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괴물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동생의 죽음은 잔잔한 수면의 로잔의 호수도 쥐라의 다정한 검은 산등성이와 몽블랑의 빛나는 정상도 자연의 궁전인 알프스의 눈 덮인 산맥도 그에게 어떤 위로를 주지 못했다.

시름에 젖어 정처 없이 걷던 어느 번개 치는 날 빅토르는 어둠 속 나무 등걸 뒤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희미한 형체를 발견했다. 번개 불이 번쩍 할 때 잠깐 보였지만 틀림없는 괴물이었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 흉측한 생김새, 더러운 악마에 치를 떨었다. 동생을 잃고 살인자로 누명쓴 아이까지 죽었다. 누명쓴 아이에게 고해신부는 종용하고 위협하고 유죄를 인정하라고 윽박질렀다. 프랑케슈타인은 이를 알고도 아이를 살려낼 아무런 힘이 없었다.

다만 괴물에 대한 증오심만 폭발할 뿐이었다. 그는 괴물을 쫒기로 작정했다. 어디에서 있는지 전혀 종작을 수 없으면서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그 사이 괴물은 어느 오두막의 창고에 숨어 살면서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사랑과 헌신과 용기와 따뜻함과 위로와 희로애락 등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는 인간들과 함께 살고 사랑받기 위해 그들의 하는 말을 익히고 <실낙원>이나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책을 읽으며 큰 용기를 내 눈이 먼 그들의 아버지에게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늙은 아버지는 수긍하고 이해했으나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은 그에게 위협을 가하고 지팡이로 때리고 쫒아낸다.

괴물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는 쫒기면서 인류라는 족속과 영원한 전쟁을 선포하고 자신을 이렇게 못생기게 만든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다.

프랑케슈타인 역시 괴물이 어디서 또 살인을 저지를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희망도 절망도 느낄 수 없는 영혼의 절대 고독 속에서 여행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압도적인 몽블랑의 풍광 속에서 빅토르는 둘 중의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끊을 수 없는 유대관계로 맺어 진 괴물을 또 한 번 만난다. 괴물은 빅토르를 보고 절규한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면서 자신만을 짓밟지는 말아달라고. 잘못도 없이 기쁨을 박탈당했고 이유도 없이 쫓겨 난 사실을 상기시켰다.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으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 미덕을 가진 존재가 되겠다고.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들려주고 거절하기 힘든 한 가지 제의를 한다. 나와 같은 여자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인간세상을 떠나 반려자와 서로 사랑하면서 멀리서 살겠다고. 이 약속을 지켜줄 것을 믿는다고.

프랑켄슈타인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나중에는 제의를 받아들이고 스코틀랜드의 변변치 않은 오두막 세 채밖에 없는 어느 섬에서 가서 작업에 착수한다.3년 전 에 악마를 만들어 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

하지만 그는 거의 다 완성된 여자 괴물을 갈가리 찢어 버린다. 달빛에 비친 악마가 창틀에 기대서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사고하고 추론하는 그가 약속을 저버릴 수도 있고 인간의 우월한 용모를 열망하거나 그들이 낳을 아기 괴물들이 인류의 절멸을 위협 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이길 수 없었다.

파괴된 피조물을 보고 괴물은 울부짖고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 괴물은 그의 친구와 사랑하는 아내를 잇달라 죽인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복수를 위해 도망간 그를 쫒는다.

하지만 빙하가 떠도는 어느 망망대해에서 지치고 피곤한 프랑켄슈타인이 먼저 죽는다. 괴물은 죽은 그의 몸 위에서 배회하다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당하기 위해 얼음뗏목에 올라 세찬파도를 타고 어두운 밤 속으로 아득히 사라진다.

: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괴물을 창조한 주인공 이름인데 괴물에게 이름이 없으므로 괴물의 대명사가 프랑켄슈타인이 됐다.

사람들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SF 소설의 시초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이야기되고 감정이 있는 로봇이 화제가 되면 그 당시 작가의 상상력이 어느정도인지 찬탄이 간다.

특히 작품을 쓴 19세기 초의 사회상과 작가가 여자이며 또 겨우 19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실로 대단했다.

이후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 지고(1931년 보리스 칼로프가 연기한 영화가 유명하다. 본문 사진 참조) 숱한 뮤지컬로 재탄생 되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의 목록에 오르내리고 있다.

책을 읽노라면 알프스의 장대한 설원이 눈앞에 바짝 조여오고 영국의 어느 고풍스런 시골마을과 스위스의 맑은 호숫가가 저절로 연상된다.

이 책은 여행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유럽 여러 나라를 도는 주인공의 행적은 당장이라도 책을 던져 보리고 배낭을 꾸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한편 괴물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모두 지니고 있다. 다만 몸이 흉측할 뿐이다. 아무리 ‘인간 세상은 얼굴이 지배한다’고는 하지만 생긴 것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나쁜 습성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것을 버리지 못한 인간의 편견은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토양을 만들어 준다.

괴물은 창조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 일까.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디서 왔고 내 목적지는 어디일까. 질문을 해 보았지만 끝내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만들어 놓고 책임을 지지 않는 프랑켄슈타인에게 우리는 괴물과는 다른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인간을 만들어 놓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신에게 인간이 요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요구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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