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2-10-02 15:58 (일)
24.감당못한 림프샘 가래톳으로 솟아나다
상태바
24.감당못한 림프샘 가래톳으로 솟아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0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것들은 어둔 밤에서 보면 고개 숙인 머리와 잘린 몸통처럼 보인다. 구천을 떠도는 원귀들이 돌덩이로 뭉쳐서 무언가 기회만 엿보는 것 같다.

다시 살아서 저녁 뿐 아니라 낮에도 활개를 쳐보자고 작당모의를 하고 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헤매다 돌아가지 못한 넋이 구멍을 뚫고 나오는 뱀처럼 스스로 땅으로 나와  하늘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발버둥 친다.

얼마나 원통하게 죽었으면 사무친 한을 풀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나타나서 기웃거리고 있는지 가엽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됐다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고개를 숙이고 몸통 아래는 다리도 없이 서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더 슬픈 원귀들은 밤이 깊을수록 떼로 몰려 나와서  서로 춥지는 않은지 저녁은 먹었는지 안부를 물어대고 있다.

유채꽃 피는 먼 남도 지방에서 왔나, 아니면 지리산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를 헤매다 불빛 따라 이곳까지 흘러들었나. 이인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원귀들과 노닥거릴 기분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팔 다리를 세게 위아래로 흔든다. 달리는 기분이 든다. 아까 지나왔던 곳에 다다른다.

여전히 콩을 심기 좋을 만하게 파여진 고랑이 가지런하다. 멀리 포클레인이 쉬기 위해 삽을 내려놓고 있다. 그 때 사타구니 어름에서 작은 통증이 인다. 처음에는 서로 비벼대다 생긴 생채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확실히 아픈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닌 상태가 지속됐다. 환한 곳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무언가 튀어 나와 있는데 콩알 만 한 크기로 손으로 잡힐 만했다.

다리 사이의 경계선에서 용케도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데 쉬이 없어지지 않고 다음날에는 크기도 커지고 통증이 점점 더해졌다. 림프샘이 감당을 못해 걸려 들어오는 균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침입하는 이물질을 방어하지도 못하고 이미 들어온 것을 제거하지도 못했다.

'녀석, 군대 였다면 넌 사형감이다.'

다행인 것은 양쪽 모두 그렇게 되는 쌍 가래톳은 아니었다.

한 번 엄지로 검지로 잡아 본다. 그것은 근육 사이에서 한 군데 있지 않고 손놀림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인다. 그 것이 싫어 그 뒤로는 그러지 않고 있는 멍울을 내버려 두기로 한다. 

대성산에 있을 때도 이런 것 때문에 골탕을 먹은 적이 있다. 거듭된 행군과 구보로 몸이 녹초가 됐는데 산의 팔부 능선에서 그만 다리를 접질려 넘어졌다.뒤따라 오던 대오가 일순 무너졌다. 반사적이다. 벌떡 일어섰다. 개머리판은 머리위에 날아와서 박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는 그 이전처럼 자유롭지는 못했다. 절뚝거리는 시늉을 하자 나 말고도 그런 상태에 있는 부상병 몇 명을 따로 모았다. 워커를 벗기고 종아리를 보고 급기야 사타구니까지 검사하더니 가래톳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 보는 병명이어서 당황했으나 이런 일은 졸병들에게 흔한 것이어서 상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날 저녁 이었다. 시시한 일로 보초를 빠지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이인은 교대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날은 맑고 바람은 없었다.

달이 밝아 먼 아래쪽이 훤히 보였다. 보이는 쪽이 경계를 서야 할 곳이다. 총알도 없는 빈총을 어깨에 걸고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는데 그 사이 달은 더 낮게 떠올랐다. 기가 막힌 풍경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고 있는 소대원들을 다 깨워서 자빠져만 있지말고 이 경치를 보라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피곤은 사라졌고 사타구니의 그 곳도 거슬르지 않았다. 들키면 남한산성 감이었지만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감히 이등병 놈이 근무 중에 그렇게 한다.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이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 같다.

그러나 달은 밝았으므로 멀리서 오는 그림자도 다 보였고 바람 소리도 없어 순찰 도는 발자국 소리를 걱정하지 않았다. 연기를 뿜자 음속을 돌파한 전투기가 하늘에 그려놓은 흰 줄처럼 일직선으로 뻗는다.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길고 선명하다. 폐활량은 이 때만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비벼 끄고 똑바로 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발에 힘을 주고 걸을 때 군홧발을 일부러 부디 친다. 그러나 다가오는 소리는 없다. 조용히 식은땀을 숨기고 귀를 열자 다시 무언가 들려온다.

작지만 분명하다. 나고다. 그가 노래를 부른다.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 체력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비실대던 그가 자도 부족한 잠을 자지 않고 있다.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조용한 이 산장에~.’

또 그 노래다. 아, 정말 돌아버리겠다. 화가 치밀지만 참는다. 자라고 조용히 말한다. 그는 그러는 대신에 담배라고 말한다.

없다고 고개를 젓다가 꺼내 준다. 나고의 목소리가 단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담배를 피다가 잠시 멈출 때면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멈추면 담배를 빨았다. 달은 더 가까이 왔고 별은 더 멀어져 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