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에서 갑사로 가지 않고 갑사에서 동학사로 길을 잡았다.
몇 개의 점집을 지나고 서너 개의 언덕을 넘자 반대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오르는 길은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됐다.
저 멀리 풍광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곳에 도착하자 멋 진 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가 아니고 두 개인데 가까이 있는 것은 5층이고 다른 하나는 7층이다.
둘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었으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남매탑이라고 말했고 안내판은 서서 그것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탑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혼자 맞는 사람도 있었다.
먹기 위해 싸온 도시락을 까먹기도 하고 빈 잔에 알밤 막걸리를 붓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으로 엄지손톱 크기의 초코릿 세 개를 먹은 것이 전부다.
도둑고양이처럼 눈치를 보며 벤치의 남은 공간에 조심스레 끼어든다.
그리고 사람의 뼈가 목구멍에 걸려 괴로워했던 12세기경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숫 호랑이를 생각한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 호랑이의 입을 벌려 그것을 꺼내 주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 대단히 용감한 스님과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아랫마을 공주가 아닌 경상도 상주까지 가서 처녀를 물어다준 은혜를 모르는 사람보다 나은 그 호랑이를 다시 생각한다.
처녀와 스님은 맺어 지지 못하고 남매로 남아 탑이 됐다.
숲속에서 깨닫은 자가 되기 위해 스님은 도를 전보다 더 세게 닦았기 때문에 처녀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하자는 제의를 정중히 거절할 수 있었다.
의남매는 서방정토에 가서는 오누이가 아닌 부부의 연을 맺었을까 하는 생각은 참으로 부질없다.
다음에는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길을 택해 남매탑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자세히 보는 기회가 한 번 또 와도 좋고 아니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