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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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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7.11.06  11: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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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이었을 것이다. 세속에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는 고된 수행에 관심을 쏟았던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들었다.

관심은 온통 다비식 후 수습될 사리에 모아졌다. 면벽수행이나 3천배 혹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등의 화두로 경지에 오른 큰 스님인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부처님의 8곡 4두(八斛四斗)에는 미치지 못해도 아마도 투명하고 영롱한 그것이 엄청나게 쏟아질 것을 기대했다. 사리의 양과 수행의 결과가 비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1993년 가을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에 불었던 어떤 기적에 대한 기대감과 겹쳐졌다.

성자로 추앙받던 장로의 죽음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일어 날 수 있는 그 무었을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애초에 없었으므로 생겨나지 않았고 실망한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고 장로의 적대세력들은 코웃음을 쳤다.

하루가 지나기는커녕 정오 무렵부터 냄새를 풍겼고 오후 3시가 지나서는 창문을 열어야 할 만큼 부패의 징후가 농후했기 때문이다.

썩지 않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며칠간은 온전한 상태로 있어야했다. 위대한 성자는 그래야 했다. 그래서 무언가 기대했던 것, 아픈 자들을 치유해줘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지자 비신자들과 신자들 가운데서도 욕심 있는 자들은 방금 전까지도 하느님처럼 떠받들던 조시마 장로를 비웃었다.

이것은 신과 신을 믿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과 증오를 생각 하게 하는 장면이다. 성철 스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과 함께 형제들의 아버지인 표드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가 거친 모습으로 등장하고 큰 아들 드미트리와 둘째아들 이반 그리고 막내 알렉세이가 두서 없이 나와 이들 주인공들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파란만장한 인생이 여러 폭의 화폭에 그려진다.

어린 아이일 때 버려졌던 아들이 장성한 후에 아버지를 만나는데 그 아들에게 무슨 부성애를 기대하겠는가.

만남도 하필 돈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니 이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 큰 아들은 전처의 소생이고 아래로 두 아들은 배가 같다. 어머니는 모두 사망했다. 하인으로 요리를 하는 스메르쟈코프는 술 취한 표드르가 백치 여인을 겁탈해 낳은 사생아로 보인다. 그 여자도 하인을 낳고 사망했다.)

50대의 아직은 팔팔한 아버지와 20대의 혈기왕성한 드미트리는 한 여자, 그루센카를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다. 결투 정도는 우습다. 서로 나인가, 그 놈인가 아니면 나인가 그 늙은 노인인가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그루센카는 하지만 두 남자의 애간장만 태울 뿐 선 뜻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다. 색기 있는 여자의 특징이다.)

연적을 용서할 수 없는 드미트리는 아비를 쥐어 팬다. 단순히 패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살을 낸다.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한 번도 아닌 두세 번 얼굴을 밟아 피떡으로 만든다. 그러고도 큰 반성은 커녕 지금 죽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두 동생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고. ( 다만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알렉세이만은 괴로워한다. 알렉세이는 죽기 전 ‘여기는 네 집이 아니다, 속세로 가라는 장로의 말에 따라 수도원을 나온다. 장로는 드미트리가 불행을 저지를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하지만 비극을 막지는 못한다. )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말리기는커녕 줄타기를 즐기는 천성이 요부인 그루센카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독자들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쥔다. 두 남자는 서로 질투심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는다.

그런데 그루센카에게는 이미 임자가 있다. 다리가 불편한 상인 삼소노프는 표드르처럼 늙었지만 돈이 있어 후견인 노릇을 하면서 정부로 그녀를 데리고 있다. ( 이상하게도 두 남자는 삼소노프에게는 질투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참고로 그녀는 5년 전 장교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버림받았다. 이후 상처한 그가 돌아오자 사랑을 되찾기 위해 그를 만나러 달려간다. 부자와의 관계가 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

그 이전에 아버지는 그루센카가 찾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주려고 3000루블을 노란색 끈으로 묶은 편지봉투에 넣어 두고서.

아버지는 스메르쟈코프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신호를 정해놓고( 처음 두 번은 조용히 나중 세 번을 빨리 두드린다.) 그녀가 오기를 매일 밤 달 뜬 몸으로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린다.

어느 날 드미트리는 분명 그녀가 자신이 아닌 늙은 호색한인 아버지를 찾아 간 것으로 판단하고 놋쇠 공이를 들고 미친 듯이 담을 넘어 집으로 쳐들어간다.

들이 닥친 그는 아버지 대신 자신을 키워 준 하인 그리고리 바실리쁘를 내리 친 후 피 묻은 손을 수습하지도 않고 사방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돈을 들고 그루센카를 뒤쫒아가 흥청망청 그것을 뿌리면서 파티를 벌인다.

그날 밤, 경찰들이 그를 부친 살해범으로 체포한다. 심문 과정에서 드미트리는 죽은 것은 하인이 아니고( 하인은 두개골이 박살났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다.) 아버지인 것을 안다.

그는 자신은 아버지를 죽도록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고 항변한다. 적어도 손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피에 관한한 자신은 무죄라고 소리친다.

이후는 지루한 법정장면이 길게 이어진다. 검사와 변호사의 치열한 법리공방을 들은 배심원들은 과연 어떤 결정을 하고 드미트리는 그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이반과 알렉세이 두 동생은 아버지의 죽음과 형의 살인죄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대책으로 무엇을 내놓을까.

이 과정에서 그들은 양심의 가책과 신이 부르는 영혼의 소리에 어떻게 응답하고 앞으로 삶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그 결과는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그루센카는 옛애인의 사랑을 되찾고 두 남자를 버릴까.

온통 물음뿐인 질문은 3권으로 이어진 길고 긴 책의 마지막을 덮었을 때도 명확한 결론을 내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 미리 말해두면 그루센카는 17살에 만난 옛 애인에게 실망하고 드미트리에게 달라 붙는다. 표드르가 사망한 것을 그루센도 알고 있는 시점이다.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드미트리를 선택했다고는 보지 않지만 어쨌든 다른 연적이 사라지자 뒤늦게 그녀는 그런 선택을 한다.)

그 답은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아니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짐승이 아닌 인간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하는 영혼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해답을 구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래서 신에게 묻고 그 질문에 신이 나타나( 언젠가는) 답하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족: 둘째 아들 이반은 드미트리의 약혼녀를 사랑한다. (약혼녀도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이반을 사랑하는 것같다.)

이반은 초반에는 냉철하고 차가운 지식인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갈수록 그 반대의 마음씨가 드러나며 형의 탈출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한다.

그도 남자인지라 여자 문제로 고심을 하지만 아버지나 형처럼 짐승 같은 정욕 때문에 헐떡이지는 않는다.( 그는 소설의 끝 무렵에 심각한 병에 걸려 죽을 운명이다.)

막내 알렉세이는 그루센카는 물론 약혼녀나 유산을 상속한 과부의 호감을 사지만 남자로서의 그것은 아니다.

작가는 알렉세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버지와 큰 형과는 다른 성스러운 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에게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고귀한 무엇을 주려고 한다.

그러니 아버지도 하인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렉세이에는 반감이 없다. 경쟁 상대가 아닐뿐더러 말과 행실이 맞아 떨어지고 비록 카라마조프의 피를 받았으나 그 피와는 다른 피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나 형제들 문제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 민중의 삶도 자신의 삶처럼 같이 가슴아파한다.

요리사 스메르쟈코프는 조금 우둔하고 ( 나중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다.) 간질 발작으로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이어가는데 아버지의 진짜 살인범이다. ( 간질은 작가의 고질병이기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간질환자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하기 하루 전에 이 사실을 이반에게 실토하고 목매 자살한다. 하지만 유언장에는 그 사실을 일부러 안 썼다.(그렇게 보인다.)

그루센카와 세상 끝으로 가서 살겠다는 드미트리가 20년 형을 피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주지 않는다.

지금 노인을 죽이지 못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반드시 죽이겠다는 드리트리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대신 그는 죽기 전 이반의 양심을 괴롭힌다.그가 죽여도 좋다는 암시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식의 말을 한다. 말하자면 이반이 살인교사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반은 '모든 것이 허락된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에 모스크바로 떠난다. )

그루센카와 약혼녀는 끝날 때 까지 서로 미워하고 질투한다. 남자들은 서로 각자의 영혼을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두 여자는 화해하지 못한다. (과연 남자에 눈이 먼 여자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의 죽음을 통한 구원은 좀 작위적이지만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등장인물들이 여러 이름을 써( 예를 들면 드미트리는 미챠, 미첸카, 미치카, 미트리 등) 처음에는 헷갈리나 나중에는 서로 구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 만큼 주인공들의 개성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죄와 벌>(1866)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이다. 하도 유명해 내로라하는 그 못지않은 유명인들이 한 마디씩 했다.

알베르 카뮈나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현대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혹은 오르한 파묵 등 당대의 위대한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니체나 프로이트 같은 철학자, 심리학자도 그의 작품에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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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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