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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천로역정>(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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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7.07.17  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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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제주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 둘레길이 있고 저 멀리 산티아고에도 길이 있다. 애초에 없었으나 우리가 걸었기에 생겨난 숱한 골목길도 있다.

사람들은 길을 통해 건강을 찾고 세상 시름을 잊고 마음의 고통을 덜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 가운데 존 버니언이 쓴 <천로역정>은 순례자가 걷는 길이다. (원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로 ‘순례자의 여정’ 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1865년 중국에서 번역된 책의 제목이 <천로역정(天路歷程)>이었고 그 보다 30년 후인 1895년 캐나다 선교사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번역한 책이 <텬로력뎡>이었기 때문에 오늘날도 ‘순례자의 여정’대신 <천로역정>으로 소개되고 있다. )

순례자는 이 길을 통해 영혼의 구원과 신의 축복을 얻는다. 죄를 벗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천당으로 가는 것이다. 천당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고 위험가득한 길이다. 심지어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멀지 않아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마을은 온통 잿더미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내와 네 아들에게 절규하면서 울부짖는다.

살길은 오직 하나,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나는 것뿐이다. 하지만 뚜렷한 방법은 보이지 않고 아내와 아들들은 크리스천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때 크리스천의 앞에 전도자가 나타난다. 그는 광채가 나는 곳으로 똑바로 가면 이윽고 좁은 문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 크리스천은 전도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 가족들이 돌아오라고 소리쳐 부르자 아예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뛰기를 멈추지 않는 대신 영원한 생명을 소리쳐 불렀다.

마을사람들도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 했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그를 만류할 수 는 없었다.

그는 정신병자라고 욕하는 고집쟁이 대신 자신과 뜻이 같은 온순을 데리고 넓은 평원을 거쳐 울 일도 슬퍼할 일도 없는 죽지 않는 아름다운 왕국의 지배자인 하느님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절망의 늪에 빠지고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다. 동행했던 온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예전에 살던 마을로 도망친다.

홀로 남은 크리스천은 도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도움으로 겨우 늪지대를 벗어나 다시 평원으로 나온다. 그 때 저쪽에서 걸어오는 세속현자를 만나고 세속현자는 크리스천에게 등에 진 무거운 짐을 어서 벗어 던지라고 충고를 한다.

그러면서 가던 길을 계속가면 피로와 고통 굶주림은 물론 시퍼런 칼날, 무서운 사자와 용을 만나게 되니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 가라는 길 대신 다른 길로 가라고 안내한다.

가던 길을 바꾼 크리스천의 앞에는 커다란 바위와 위험한 골짜기가 가로막고 있다. 겨우 언덕에 오르자 불길이 훨훨 타는데 지옥이 따로 없다.

뒤늦게 전도자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한 크리스천은 빠르고 훨씬 편한 지름길이 사실은 참이 아닌 그릇된 것임을 깨닫고 부족한 믿음을 책망한다.

그는 전도자가 가르쳐 준대로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여정을 계속했고 마침내 좁은 문에 당도했다.

그는 거기서 선의를 만나 구원의 장소에 이르면 저절로 무거운 등짐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그가 가르쳐 준 해석자의 집을 찾아 벌판으로 나온다.

그는 다가올 세상은 영원불멸하고 현세의 허황된 영광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해석자의 충고를 가슴깊이 새겼다.

구원의 언덕에 있는 십자가에 오른 크리스천은 갑자기 자신의 등 뒤에 진 짐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다가오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 중 한 명에게서 천국의 문에 당도하면 두루마리를 제시하라는 계시를 얻는다.

신이 난 크리스천은 다시 껑충껑충 뛰면서 길을 재촉했다. 노래 부르며 가는 길에 크리스천은 쇠고랑을 찬 천박, 나태, 거만, 허례와 위선을 만나지만 그들의 꼬임에 빠지지 않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고난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 나간다.

어느 날은 가파른 산의 중턱에 있는 아담한 정자에서 쉬기도 하고 그러다가 영생을 보장하고 천국으로 가는 통행증인 두루마리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렵게 다시 찾는다.

길을 막고 있는 무서운 두 마리의 사자는 믿음으로 피하고 눈앞에 있는 시온 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앞길에 불현듯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영생을 향한 크리스천의 집념은 끈질기다. (가족 정도는 가볍게 무시한다.)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처인 임마누엘 땅 산꼭대기서 그는 천국으로 가는 문을 본다. 그곳에서 크리스천은 자신보다 앞서간 마을 사람인 믿음을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겸손의 골짜기에서 그만 추하게 생긴 괴물 아폴리욘을 만나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인다.

결과야 크리스천이 이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 과정은 정말로 누가 죽이고 누가 죽을지 모르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순례길의 클라이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입은 사자를 닮고 몸은 물고기 비늘로 덮였으며 용의 날개와 곰의 발바닥을 가진 괴물을 이긴 것은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 때문이다.

아폴리욘은 크리스천이 섬기는 왕과는 불구대천지 원수지간이다. 그러니 그의 백성, 율법, 인격까지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왕에게 크리스천이 찾아 가는데 방해하지 않으면 아폴리욘이 아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한 크리스천은 천국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트려 순례자들을 되돌아가게 하려는 음모를 거뜬히 막아낸 것이다.

다윗왕도 빠진 적이 있는 깊은 수렁을 지나자 드디어 찬란한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지옥의 입구를 벗어난 크리스천이 아침 해를 받고 뒤를 돌아본 것은 되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가 위험을 뚫고 당당히 지나온 길을 밝은 대명천지에 똑똑하게 보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덫과 함정, 이교도와 교황도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 한 참을 더 가서 앞서 가던 믿음을 만난 크리스천은 그와 동행하면서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잡담대신 가치 있는 이야기로 신의 존재와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의 영광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여유까지 생겼다.

수다쟁이와 교리문답을 하고 다시 전도자를 만나고 허영이라는 마을에서 믿음의 최후를 보고 사심과 소망과 동행하고 하느님의 강이라 불리는 생명의 강에 도착했으니 이제 시온 산의 정상이 보인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절망거인과 그의 부인 자포자기에게 잡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하늘이 도움으로 빠져 나온다. 임마누엘 땅에서 목자들을 만난 크리스천 일행은 거짓 사도인 아첨쟁이를 주의하라는 주의를 듣고 무신론자를 지나쳐 여럿 보다는 혼자 걷기를 즐기는 무지를 만나고 마법의 땅을 벗어나 공기가 맑고 상쾌한 쁄라 땅에 들어섰다.

크리스천은 성문 사이에 놓인 강을 건너 천사의 나팔소리를 들으며 천국의 문을 통과한다. 드디어 순례자의 여정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 (이때 무지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 1부가 끝나고 6년 후에 완성된 2부가 세상에 나왔다.

2부는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애나가 그의 네 아들, 그리고 자비라는 아가씨를 데리고 크리스천이 갔던 순례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여정이다.

1부에 비해 박진감은 떨어지지만 1부를 받쳐주고 무리 없이 설명해 주는 대는 손색이 없다. 2부까지 다 일고 나면 나와 크리스천이 동일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든다.

크리스천이 무사히 천국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악한을 만나면 무찌르는 과정을 거치면 내가 마치 하느님의 대리인 같은 착각에 빠져 든다. 크리스티애나 일행 역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바심을 내는 것은 크리스천에 했던 것과 같은 마음이다.

순례를 끝낸 신의 존재를 믿는 독자들은 착하고 편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 된다. ( 쾌락을 위해 종교를 믿는 자는 쾌락을 위해 종교를 버릴 것이다 라는 말을 늘 새기면서.)

신은 없다고 단언하는 독자들 역시 아주 기분 좋게 내 마음의 천국을 상상해 보면서 긴 여정을 재미있게 마친 것을 자축하면 독서의 후기로는 더 할 나위 없다.

기독교 서적으로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읽혔으며 오늘 날에도 수많은 독자들이 순례길의 동반자로 <천로역정>을 끼고 간다. ( 존 버니언은 독자를 의식해 쓰지 않았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독자를 의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일관되게 흐르는 책의 중심은 기독교 사상이며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작자의 눈물겨운 의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짜임새, 세밀한 인물 묘사와 꿈의 비유와 상징, 사람 이름대신 쓰는 우화적인 인물과 그 됨됨이의 평가, 그리고 문장이 끝나고 나오는 시적 표현은 그가 운문뿐만 아니라 산문의 대가 였음을 잘 말해 준다.

수많은 뒤이어 나오는 작가들에게 숱한 이야기의 영감을 주고 그들이 반드시 거쳐 지나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우리 시대의 영원불멸의 고전.

땜쟁이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존 버니언이 이런 위대한 역작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통달한 침례교 설교자 생활과 그로 인한 감옥살이가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을 것으로 평론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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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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