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7 06:51 (토)
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상태바
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7.18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사는 토마스라는 외과의사가 있다. 그는 실력이 좋아 담당과장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현재보다도 앞으로가 더 촉망받는 그런 사내다.

한 마디로 인간의 내부를 향한 칼 솜씨가 매우 뛰어난데 뛰어난 것은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사내다움이다. 보이는 여자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취하는데( 친구들이 몇 명의 여자를 가져봤느냐고 묻자 대충 200명이라고 말한다. 허풍이라고 말하면 그 정도는 많은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런 감정은 사랑과는 큰 연관이 없다. 사랑과 섹스를 동일 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의 애인이었다가 부인이 된 테레사의 가슴은 오죽하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머리에 다른 여자 성기의 냄새를 묻히고 오는 토마스 때문에 그녀는 실로 죽을 맛이다.

상처를 받고 살지만 그렇다고 다처주의인 그를 내칠 수도 없다. 토마스에게는 테레사도 아는 그림을 그리는 사비나라는 여자가 있다. 사비나는 테레사가 웨이트리스였다가 신문사 사진기자로 갈구하던 신분상승을 해주는 그런 착한 여자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테레사는 토마스와 사비나의 관계를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처지다. (테레사와 사비나는 서로 누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사비나 역시 토마스 말고도 프란츠라는 대학교수를 섹스 파트너로 두고 있다. 프란츠 역시 토마스만큼 바람둥이여서 이 여자 저 여자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하루 세끼 식사처럼 다른 여성들과 잠자리가 아주 자연스럽다.

그가 가르치는 안경이 얼굴을 덮을 만큼 큰 여학생과 오랫동안 섹스를 이어오는데 그런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부러워 할 뿐 비난하지는 않는다. 사비나도 프란츠의 여성편력을 알고 있지만 테레사처럼 그렇게 가슴 아파 하지는 않는다.

사랑과 섹스에 초월했거나 아니면 무관심하다고나 할까. 밀란 쿤데라는 토마스와 테레사, 사비나와 프란츠라는 4명의 남녀를 등장시키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는 멋진 제목의 소설 속에 이들의 사랑과 섹스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때는 1968년 장소는 체코의 프라하. 시기는 거의 변동이 없지만 (변동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그 당시의 일이 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장소는 프라하에서 스위스 취리히나 프랑스 파리 혹은 미국 뉴욕 등으로 주인공 들이 이동하면서 그곳 풍경도 간간히 묘사된다.

알다시피 이 시기는 '프라하의 봄'으로 시민들에게는 환희와 공포가 엇갈린 그런 때다. 2차 대전 후 소련 연방의 간섭하에 있던 체코는 개혁파 두브체크에 의해 제한적이지만 정치와 경제, 시민의 자유가 그 이전보다 더 확장됐다.

보도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시민의 이동 제한이 폐지되기도 했다. 소련은 즉각 반발했고 양측의 협상이 불발되자 소련군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4개국인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가 체코를 침공했다.

20만 병력과 2천대의 탱크를 밀고 온 이들은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오자 체코를 가볍게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반항하는 시민들은 학살됐고 저항하는 지식인들은 투옥되거나 추방됐다.

외과의사나 대학교수가 할 일이라고는 공산주의의 기만성을 조롱하거나 모른 체하거나 아니면 여자들과 사랑하거나 뭐 이런 것이 되겠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이런 일들을 한다. 토마스는 겨우 2년을 같이 산 부인과 10년 전에 이혼했고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이혼 당시 토마스는 어떤 여자이든 한 여자와는 살 수 없고 독신일 경우에만 자신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여자의 집으로 자주갔고 자기 집에 여자가 오는 것을 싫어했으며 오더라도 섹스가 끝난 후 자정 전에 모두 쫓아냈다.

하지만 테레사만큼은 아침까지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자도록 내버려 뒀다. 그것이 테레사가 토마스의 바람기를 발견하고 2년 후에도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을 때까지 함께 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결혼했고 톨스토이나 안네 카레니라 대신 카네닌이라는 이름의 암컷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바로 그 즈음 소련군은 탱크를 몰고 왔고 테레사는 군중에게 권총을 겨루는 소련군의 사진을 찍고 체포됐고 풀려나자 다시 거리에서 사진기를 들이댔다.

학술대회에서 만났던 취리히 병원장은 토마스에게 스위스의 의사 자리를 제안했다. 둘은 스위스로 떠났고 사비나도 망명했다. 망명지에서 토마스는 사비나를 만나고 테레나는 7개월만에 프라하를 돌아왔고 토마스도 그녀의 뒤를 따라 프라하로 온다.

왜 그랬을까. 테레사는 생명이 보장되고 편한 스위스를 버리고 고통받는 고국 체코로 돌아왔고 토마스 역시 모든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해가 예상되는 프라하로 온 것일까. 그것은 존재의 가벼움 때문일까, 아니면 무거움 때문일까.

뻔뻔스런 테레사 엄마에 대한 수치심일까, 아니면 벌거벗고 방에서 돌아다니는 계부에 대한 반항심 때문일까. 술 주정뱅이들 사이에서 무거운 쟁반을 들고 돌아다니던 테레사의 눈에 다른 사람과는 달리 동지애를 불러일으키는 책을 얹어 놓고( 테레사에게 책은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싸구려 맥주 대신 코냑을 주문하는 토마스와의 우연한 만남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프라하에서 토마스는 의사자격을 박탈당하고 유리창 청소부자리를 얻는다. 매일 유리창을 닦으면서 그는 남편이 출근하고 떠난 유부녀나 다른 여자와 섹스와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제네바 대학의 대학교수 프란츠는 강의가 끝나면 근처에 있는 여자친구의 집으로 곧장간다. 어떤 날은 하루 동안에 한 여자에게서 다른 여자로 부인에게서 정부로 정부에서 부인으로 왔다갔다하기도 할 만큼 정력이 대단하다.

사비나는 그런 프란츠의 근육이 기가막힌 멋진 몸에 아니 반할 수 없다. 밀회를 즐기기 위해 프란츠는 가공의 학회나 세미나 핑계를 대고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여자 친구들은 그와 동행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사미나 역시 테레사가 토마스의 여자편력을 알고 있는 것처럼 프란츠의 바람기를 알지만 테레사처럼 심각하지는 않다. 프란츠는 그런 여자 친구들이 진짜부인 마리클로드 곁에 누울 때마다 부인 곁에 누우려는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수치심을 느끼지만 그 뿐이다.

이런 프란츠는 존재의 무거움일까, 그의 힘을 사랑하는 사비나는 존재의 가벼움일까.


: 화가로 성공한 사비나는 제네바에서 4년을 지낸 후 파리로 온다. 그 때 토마스의 아들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였던 사비나의 존재를 안 토마스의 아들은 그녀에게 토마스와 테레사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토마스는 죽기 전 고국에서 수년 간 트럭 운전수로 일했으며 사람들이 시체를 발견했을 때는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고 경찰은 엉망인 브레이크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면 프란츠와 사비나는 책이 끝나고 나서도 살아 있을까. 앞서 언급한 토마스와 테레사가 데려온 개 키네닌은 두 사람이 죽은 후에도 살아 있을 까. 아니면 두 사람이 죽기 전에 죽었을까.

고국에 온 조금은 양심이 있는 토마스와 테레사는 사석에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라디오 방송에서 드라마처럼 틀어대는 공포정치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순종했을까, 아니면 저항의 작은 몸짓이라도 보이면서 숨 막히는 공포와 싸웠을까.

테레사는 홧김에 한다는 서방질을 한 번도 하지 않고 토마스에 대한 정조를 지켰을까. 아니면 엔지니어로 가장한 경찰의 끄나풀과 어쩔 수 없는 잠자리를 했을까. 이랬을까, 저랬을까.

이랬다면 존재는 무거운 것일까, 저랬다면 존재는 가벼운 것일까.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소설속이 아닌 독자 스스로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가.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