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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빠삐용(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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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빠삐용(1973)
  • 의약뉴스
  • 승인 2016.02.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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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답답했다가 일순간 시원한 영화가 있다. 바로 <빠삐용>(원제:Papillon )이다. 프랭클린 j.샤프너 감독은 스티브맥퀸 (빠삐용)과 더스틴 호프만(드가) 을 등장시켜 감옥에 갇힌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일전에 한 번 다뤘던 <쇼생크 탈줄>의 주인공 앤디와 마찬가지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빠삐용의 심정은 억울함과 분노 그 자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재심을 청구해 누명을 벗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지옥 같은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결론은 두 영화모두 해피 앤딩이다. 거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이 빠삐용의 정신과 육체를 좀먹었는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안다.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도 모질어도 되는지 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영화는 더블 백을 메고 막 군대에 입소한 신병 같은 재소자들이 막사 앞에 집합해 교도관의 지시사항 앞에서 쪼그라드는 형국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지금부터 프랑스령 기아나형무소의 소유물이다. 빠삐용과 드가는 수송선에서 앞으로 서로 운명을 같이할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서로 범죄 이력을 들어서 알고 물어서 알고 소문을 통해서 알고 있다.

빠삐용은 뚜쟁이를 죽인 혐의로, 드가는 거액의 위조 지폐범으로 각각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죽을 때 까지 동물이나 물건처럼 국가에 소유돼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 한다.

이들이 자유의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탈주하는 것이다. 더구나 빠빠용은 자신이 검사에게 속아서 죽이지도 않았는데 살인자로 몰렸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의 탈옥은 바람직하고 정당한 것으로 관객들은 이해한다.

1928년 국방채권으로 번 떼돈을 항문에 숨겨놓은 드가가 밑천을 대고 두 사람은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호시탐탐 울타리 밖으로 도망치려 한다. 가슴의 나비문신이 화려한 빠비용이 우리 중 1년 안에 40%가 죽는 지옥 같은 감옥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은 동료죄수가 그에게 작당모의를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이미 안다.

섬에 도착하기 전 어떤 죄수는 자신의 무릎을 칼로 자르는 자해를 시도한다. 그만큼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기에 탈주가 용이한 병원 행을 택한 것이다. ( 나중에 이 죄수는 탈주하다 인간 사냥꾼으로 불리는 동료죄수의 총에 사살된다.)

기아나에 도착한 죄수들은 화려한 옷차림의 간수 부인들이 멋진 2층집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간수로부터 탈옥은 불가능하고 첫 번째 탈옥 하다 걸리면 2년간 독방생활을 해야 하며 두 번째 걸리면 5년이 추가된다는 일장연설을 듣는다. (하지만 어떤 죄수는 이런 규율대신 단두대서 목이 잘리는 처형을 당한다. 신부는 죄수의 생명을 구하기보다는 공포에 질린 죄수에게 들리지 않는 성경을 읽어 주기에 바쁘다.)

드가는 어떤 죄수로부터 돈을 조금 쓰면 섬이나 수용소에 가지 않고 여기 남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드가가 돈을 쓰자 효과는 나타나 두 사람은 조금 편한 보직을 얻는다. 그렇다 해도 발에 족쇄를 채우고 더러운 수용소를 벗어날 수는 없다.

 

빠삐용은 일차 탈출을 시도하다 교화 따위는 하지 않는 침묵이라고 쓰인 독방에 갇힌다. 드가는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려고 했던 빠삐용의 우정에 감사하는 보답으로 간수 몰래 코코넛을 넣어준다.

바퀴벌레와 지네, 쥐가 득실거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독방에서 빠삐용은 교도 당국의 희망처럼 육체와 영혼이 부수지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어느 날 식구통으로 목을 내민 빠삐용에게 간수의 곤봉이 목을 조르고 그제서야 그는 코코넛이 발각 됐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보내준 드가를 끝내 불지 않고 식량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간혹 비추던 빛까지 6개월간 차단되는 형벌 앞에서 빠삐용은 살인과 이를 부인하는 환영에 시달린다. 하지만 인생을 허비한 죄라는 재판관의 말에 유죄라는 말을 되뇌며 돌아선다.

그 사이 드가는 도장찍는 보직을 맡아 나름대로 감옥생활에 적응해 가고 새로운 죄수들은 똑같은 생활수칙을 듣고 빠삐용은 독방에서 살아난다.

드가의 도움으로 다시 체력을 키운 빠삐용은 드가로부터 법무성의 재심신청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도 아내와 변호사가 백방으로 노력해 석방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빠삐용은 고개를 젓고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 온다. 빠삐용은 변태 동료 죄수로부터 시달리는 진짜 살인을 한 젊은이와 담을 넘는데 성공한다. 음악회의 서빙을 하던 드가도 얼떨결에 탈주대열에 동행한다.

한센인의 도움 등으로 죽음을 넘기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빠삐용은 살아서 프랑스를 벗어난다. 그곳은 별세계다. 벗거벗은 여자들이 조개에서 진주를 캐내고 그는 추장의 딸 정도로 보이는 예쁜 여자와 며칠을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거기서 그냥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빠삐용은 다시 밖으로 나오고 성당의 수녀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다음날 그가 믿었던 수녀는 경찰에 신고하고 빠삐용은 다시 독방에 갇힌다.

5년 후 독방을 나온 빠삐용은 다른 감옥보다는 감시가 느긋한 악마섬에 수용된다. 조류가 세고 사방이 낭떨어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다시 드가를 만난다. 그리고 다시 탈출한다.

드가는 이번에는 빠진다. 떠나는 빠삐용에게 손을 흔드는 드가. 관중들은 망망대해로 멀어지는 질긴 인간 빠삐용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국가: 미국, 프랑스
감독: 프랭클린 J.샤프너
출연: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평점:

 

팁: 사람들은 빠삐용을 밀고한 수녀가 죽이도록 밉다고 한다.

그러나 수녀는 최선을 다해 자기 직분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같이 위험한 인물이 탈출하는 것은 신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혹 탈출하다 잡혀왔을 때 수녀는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수녀에 앞서 성경의 말씀만 빠르게 읆어대는 얄미운 인간으로 보여지는 아니 얄밉다기보다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단두대 처형 직전의 겁먹은 신부 모습에서 관객들은 벌써 신이나 신의 대리인은 고통에 빠진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다.

빠삐용이 독방에서 쿠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일 수도 있고 솟구치는 성욕을 자위로 해결해 차츰차츰 힘을 고갈시키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일수도 있다.

어쨌든 빠빠용은 살아서 탈출했다. 그러나 그가 역방향으로 부는 조수를 이겨내고 섬에 상륙해서 남은 생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았는지는 모른다.

사람들은 얼마 안가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을 알면서도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믿는 것은 그가 자유를 너무나도 갈망했기 때문이다.

감옥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유독 빠삐용만이 탈옥에 목을 맨 것은 모든 인간이 다 자유를 그토록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인간은 자유 대신 노예로 길들여진 삶을 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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