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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마지막 황제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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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마지막 황제 (1987)
  • 의약뉴스
  • 승인 2013.04.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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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줄서서 본 적이 있다. 1998년 어느 날 대한극장 앞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를 볼 때도 그랬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70밀리미터 대형화면과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9개 부분을 휩쓸었다는 선전도구에 훅 마음이 끌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역시 선전도구로 사용됐던 신개념의 사운드 음향은 어느 정도인지 이 또한 궁금했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도 있는 사실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당시만 해도 만들어 진지 10년이 지나서야 상영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별로 없었다. 늦게라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1950년 중소 접경지역의 열차에서 한 무더기의 패잔병들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푸이( 존 론)도 다른 전쟁 범죄자들 틈에 끼여 있다. 초라한 행색의 이 중년 사내는 기차역 대합실 방에서 면도칼로 자해를 시도한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화면은 회상과 현재를 교차로 보여주면서 1908년 철권을 휘두르며 공포 정치를 폈던 할머니 서태후가 입에 흑진주를 물고 죽자 3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 마지막 황제에 오른 푸이의 일생을 따라간다.

 
푸이의 삶은 중국 근현대사의 격동과 어울리면서 한편의 거대한 파노라마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황제이지만 자금성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황제의 닫힌 세계 또한 푸이의 또 다른 인생 역정이다.

군부 구데타로 실권을 상실한 황제는 자금성 안에서만 황제노릇을 하면서 영국인 가정교사 (피터 오툴)로 부터 세계정세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이때만 해도 푸이의 생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군대가 자금성에 들이 닥치고 텐진으로 피신하면서 그의 인생은 극도로 꼬인다.

중국 점령의 전초기지로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북중국을 먼저 삼킨 일본은 푸이를 내세워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세계 제패의 야욕을 꿈꾼다.

실권은 관동군 수비대장이 갖고 있는 허수아비 황제이지만 그래도 다시 황제 호칭을 들으며 푸이는 재기를 모색한다. 그러나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터지면서 그의 신세도 전범으로 추락한다. 탈출하려는 비행기 안에서 소련군에 잡힌 푸이는 중국 공산당에 넘겨진다.

후처(비비안 우)는 도망가고 아내(조안 첸)에게 배신당한 푸이는 한 철 메뚜기처럼 처량하다. 2000년 제국의 역사는 말 그대로 종말을 맞고 역사 속에 사라진 것이다.

푸이는  이제 죄인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조국을 배신하고 만주국을 세운 과정을 후회하는 반성문을 요구 받는다. 심문과정에서 이름을 대라는 말에 바닥에 백묵으로 부의(溥儀)라고 적는 모습은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황제에게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는 초라한 신세의 푸이와 호통치는 관리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극적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고 있다. 뒤늦게 일본에 속은 것을 알지만 후회는 항상 늦듯 그가 사태를 깨닫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상태였다.

아편으로 손쉽게 중국을 점령하고 아시아를 차지하려는 일본의 만행, 서태후의 묘를 파헤치는 장개석 군벌과 장개석을 물리치고 등장한 모택동. 중국의 역사는 숨돌릴 틈 없는 파란의 연속이다. 그 중심과 변두리에 푸이가 있다.

죄수번호 981번을 달고 10년의 옥살이 끝에 완전히 교화됐다는 당국의 판단에 따라 1959년 세상에 나온 푸이에게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기다리고 있다.

붉은 깃발을 내세우고 젊은 홍위병들이 설치는 살벌한 광기의 10년 세월. 어느 날 푸이는 관광객으로 자금성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이 앉았던 권자에서 작은 통을 꺼내 아이에게 준다.

통속에서 메뚜기가 나온다. "난 중국의 황제였다." 죽으면서도 황제였던 사실을 상기하고 싶었던 푸이의 일생은 메뚜기의 하루 만큼이나 허무하다.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국가: 중국/이탈리아
출연: 존 론, 조안 첸, 피터 오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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