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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24 12:48 (금)
완용은 없는 머리를 짜내기 위해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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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용은 없는 머리를 짜내기 위해 두 손을 모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8.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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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헌병대사령관이 지휘봉으로 식탁을 탁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거침이 없는 행동이었다. 완용 고바야시가 멈칫하고 몸을 움직였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아무리 헌병대사령관이라고 해도 종로경찰서장을 마주 앉혀 놓고 마치 때리기라도 하는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엄한 선생이 말썽꾸러기 학생을 닥달하는 태도였다. 내가 이 자에게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그 정도 밖에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니. 얼빠진 놈이야. 아군으로 모셔야지 적군으로 상대하겠다 이거지. 그러다 큰 코 다친다. 그러나 완용은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때린 곳이 바로 휴의의 면상이기 때문이었다. 지휘봉 끝은 정확하게 휴의의 얼굴을 강타했고 그 힘으로 눈 주위가 찢어져 나갔다. 몽타주가 옆으로 비틀어져서 얼굴쪽이 완용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빠가야로. 완용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면서 헌병대장 못지 않은 적개심을 뿜어냈다. 이거 무슨 수작이야. 헌병대장이 움찍했다. 나를 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완용은 상대의 마음을 알았는지 미안하게 됐소이다. 이 자에 대한 나의 분노를 표현한다는 것이 그만. 됐어요. 됐고. 아는 자지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와타나베 사령관이 속사포 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그럴 필요 없었다. 이 헌병대장이라는 자는 성격이 불같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티를 낸다고. 군바리는 꼭 이런때 못배운 티를 낸다니까. 완용은 자신과 상대를 구분하면서 자신은 그러한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목소리를 점잖게 하고 낮게 말했다. 이 자는 이런 나의 변한 태도를 알수 없을 거야. 그너니 너는 항상 그 모양이지. 네가 뭘 알겠니. 문제는 네가 모른다는데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화를 풀수는 있었지만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부하들은 겁을 먹었고 그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망설였다. 그러다가 정작 중요한 정보를 놓치기도 했다. 빠가야로. 이번에도 완용이 받아쳤다. 속으로 한 것이지만 제대로 했다고 완용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머저리, 바보, 천치 같은 놈. 완용은 한 번 더 쏘아주었다. 물론 그런 말을 와다나베는 들을 수 없었다. 완용은 상대를 앞에두고 이런 욕지거리를 들키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네 놈이 한꺼번에 질문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답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냐. 알아 들겠어. 물론 모르겠지. 바보 천치 같은 놈.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걸 완용은 사령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고바야시는 와타나베가 덤벙댄다고 생각했고 최고 지휘관의 그런 성격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나는 저런 자는 닮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알고 있어요. 알다마다요. 일찍이 친구였어요. 그도 연달아서 세 가지 질문에 답변했다. 이미 알고서 하는 질문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절적하지 않았다. 작은 눈이 옆으로 찢어지면서 와타나베는 총독부 습격 사건이 마치 완용때문에 일어난 일인 듯이 그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이것 보시오. 나도 이 자를 잘 알고 있소. 내 평생의 업적은 이 자를 잡아 처단하는 것이오. 내가 몰라서 아느 냐고 물은 게 아니오. 왜 잡지 못하느냐는 질문이었오.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와타나베가 고바야시의 머리쪽을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누가 할 소리를. 네 놈이 하느냐. 완용은 쪽바리 주제에 하는 말이 거칠다고 면박을 주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그래더니 입안에 침이 고였고 그래서 고바야시는 자연스럽게 가래 침을 뱉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때를 봐야 하는데 면전에서 그러모은 가래를 처리할 수 없어 완용은 얼굴을 가슴 안쪽으로 일그러트리면서 사령관을 쏘아 보았다.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간혹 그럴 때가 필요했고 완용은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매번 끌려만 가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사령관은 완용의 눈길을 피했다. 사람을 여럿 죽인 살인자의 번득이는 눈동자를 마주쳐다 보아서 이득이 될 것이 없었다. 그가 무섭다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한다는 눈초리였다. 탁자쪽으로 가 있던 눈길을 들면서 아, 그만두시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해요. 공과는 나중에 따지고 일단 휴의를 잡아 들입시다. 사령관이 한 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런 피라미 하나 잡지 못해서 이게 무슨 꼴이오. 총독 각하 볼 면목이 없어요. 하필 그 때 본국에서 참의원 나리께서 오시고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했소. 일을 빨리 끝냅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는 듯이 사령관이 군인답게 시원스럽게 나왔다. 종로서장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럽시다. 그럼 이 자를 빨리 잡아 오시오. 그러나 방향은 빗나갔다. 빨라 잡아들이라고 나에게 명령하고 있다. 이 자는 잘 나가가다 샛길로 빠지는데 능숙했다. 경찰은 노는 줄 아시오. 잠을 못자 부하들이 사경을 헤메고 있소. 이럴때는 군인들이 좀 나서야 하는 것 아니오. 치안유지에도 바쁜 경찰이 일손이 부족하면 헌병대가 지원해야지요. 완용은 휴의 체포를 온전히 경찰에게 떠넘기는 사령관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다시 두 사람은 대결 국면에 처했다. 이봐요. 광화문에 사방 경계를 치고 사단 병력이 집결한 것을 모르시오. 완용이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건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이다. 휴의 체포를 논하는데 총독부 방어진의 공치사가 왠말이냐, 완용은 답답했다. 일본놈만 아니라면 작살을 내주고 싶었다. 자신의 계급 체계에 있었다면 당장 주먹질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놈이 원하는 게 뭔가. 협업 정신인가, 아니면 자신은 빠지고 나에게 짐을 씌우는 자인가. 하나마나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같잖았다. 이런 자와 무슨 대화가 필요한가. 작전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다. 완용의 가슴에 냉기가 흘렀다. 강한 무엇이 내리누르는 압박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알았어요. 그러면 헌병대는 총독부 방어에 집중하고 휴의 체포는 우리 서에서 잡아 내겠소. 대신 중무장한 조선독립군은 그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시오. 그 자들은 이미 도망치지 않았소. 또 온단 말이오. 와타나베가 놀라서 소리쳤다. 그럼 당신같으면 포기하겠소.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요. 그런 미친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물론 마지막 말은 완용의 목구멍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단 말이오. 우리 첩보에 의하면 그렇소이다. 상하이로 거의다 도망갔지만 일부는 경성에서 암약하고 있어요. 암약의 우두머리가 바로 휴의이고 휴의는 상하이에서 행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여기 경성에 있다는 뜻이지요. 휴의든 그와 협력하는 자든 잡아서 족쳐야 앞으로 독립군 계획을 알 것이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이번에는 규모를 더 키워 제대로 전투를 할 모양이오. 뭐시라고요. 전보다 규모가 큰 부대가 침략한다고요. 모시모시. 사색이 된 와타나베가 부관 하고 소리쳤다. 옆에 있던 부관은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됐다. 사령관이라는 작자는 늘 이런 식이었다. 부관은 성난 와타나베 옆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종로서장이 잔당이 있다는데 우리는 파악했소. 추측 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조선독립군 잔당은 없습니다. 있었다면 벌써 잡아 들였겠지요. 전투가 벌어진지 벌써 세 달이 지나고 있어요. 정초 아닙니까. 부관이 되물었다. 되묻는 질문에 사령관이 기분이 상했다. 정초와는 무슨 상관이냐. 그래도 조선에서는 정초가. 됐거든요. 사령관이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잘랐다. 감히 어린 놈이 그런 식으로 되묻다니 불쾌했으나 화살은 그 쪽이 아니라 완용쪽에 퍼부어야 맞았다. 우리끼리 싸우기보다는 완용을 몰아쳐야 한다. 그래서 사령관은 부관에 대한 화풀이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아니 종로서장은 정보를 어디서 듣고 오는거요. 우리쪽이 파악한 바로는 죽은 적들 말고는 조선땅에 독립군은 한 명도 없소. 아니오. 있소. 바로 이 자요. 완용이 사령관의 지휘봉에 맞아 일그러진 휴의의 몽타주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한 차례 흔들었다. 이 자는 상하이로 가지 않았소. 내가 잡으라고 한 것은 상하이로 가든지 거기 영사관과 접촉해서 그곳 형사들에게 체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라는 것이었소. 서장이 말귀를 제대로 알아 들어야지. 기회를 잡았다 싶었던지 와타나베가 말꼬리를 길게 잡아 늘렸다. 아니오. 틀렸소이다. 휴의는 아마도 경성에 있소. 못박혀서 꼼짝 않고 있는거요. 아마도. 아마도라. 사령관이 지휘봉으로 휴의의 몽타주 대신 탁자를 탁탁 쳤다. 그런 애매한 표현은 삼가하세요. 아마도라니요. 그 모양이니 여태 잡지 못하는 것이지요. 내 생각에는 벌써 조선땅을 떠났다고요. 그렇소이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왜 뭐요. 대책이라는 것이. 우리 대책이 어때서요. 와타나베가 또다시 시비를 걸었다. 그러지 마시오. 내가 잡으리다. 잡을 거요. 귀신사에 우리 특수팀이 잠복이 들어갔어요. 귀신사라면 절. 그렇소이다. 아니 왜 절을. 휴의라는 자가 그렇게 돈이 많소. 시주할 돈이 남아 도는 거요. 말귀를 못 알아 먹으시는군요. 휴이가 아끼는 소년병사가 그 절에서 죽었소. 아마도 천도제를 지내러 올거요. 스님이 그랬거든. 원래 중들은 거짓말을 못하니 틀림 없을 겁니다. 날짜는. 그것이 문제요. 그래서 절 주변에 우리 형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거요.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몰라요. 완용이 타박하듯이 와타나베에게 물었다. 천도제라. 그것이 무어요. 난 절을 믿지 않소이다. 미신을 멀리한다고요. 고양이신을 믿으면서 부처님을 미신이라고. 이게 나를 바보로 아나. 완용이 입맛을 다셨다. 와타나베가 얼굴을 찌푸렸다. 천도젠가 뭔가 그것을 노리고 있으면 안 되오. 그것은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소. 사령관이 제법 위엄있는 태도로 말했다. 제 딴에는 비유가 적절했다고 느꼈는지 콧 수염을 잡아 끌면서 완용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았다. 우리는 그런 첩보를 바탕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헌병대는 어떤 구체적인 것이 있나요. 고양이 말고요. 허허. 사령관이 고양이라는 말에 자기 무릎에 고양이라고 있는 듯이 손을 앞으로 내밀어 쓰다듬는 행동을 했다. 

기다리시오. 아직 때가 아니오. 우리도 녀석들이 출몰하는 곳은 대충 파악했소. 동선도 일부 확인했고요. 지금 잡으면 상하이와 접선하기 전이라 일망타진이 어려울 수 있어요. 활동하게 놔 두었다가 임정의 새로운 계획이 실행되는 동시에 놈을 체포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사령관은 아까 자신이 한 말을 뒤집고 있다. 휴의의 동선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더니. 이 자도 수완이 높다. 뒤를 쫒고 있는가. 사실인가. 그것이. 그래서 적들을 독안에 잡아 놓고 몰살 시킨다고요. 이제야 알아 듣는군요. 와타나베는 무릎을 쳤다. 헌병대는 역사와 전통이 있어요. 우리가 조선을 지키고 있지요. 어라, 이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제멋 대로군. 완용은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을 알았다. 시계를 한 번 보고는 더 나올 내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만 자리를 정리하자는 제스처로 일어설 기미를 보였다. 그럼 각자 정보 교환은 끝났으니 임무에 충실합시다. 완용이 눈치 없이 그대로 있는 사령관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사령관은 딴 생각을 하고 있어 완용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그는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완용에게 시기와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귀신사라. 이 자는 위치까지 파악했다. 신빙성이 있다. 우리는 그런 정보가 없다. 역시 조센징은 끼리끼리 논다니까. 어쨌든 이 자에게 갑자기 신뢰의 마음이 생기는데. 그런 귀한 정보를 주다니. 와타나베는 느닷없이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다는 말을 했다. 불쾌한 기억이 있다면 지우시오.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니까. 다 우리 일본이 잘되라고 하는 일이잖소. 안 그렇소. 종로서장님. 그게 예의를 차리면서 말했다. 이놈 봐라. 그것은 와타나베의 전략이었다. 존칭을 붙이면서 대우해 주는 것은 완용에게 책임과 의무를 지우려는 속셈이었다. 헌병대가 조선을 지킨다고 했지만 종로서의 역할도 막중해요. 누가 더 나은지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우리는 한 배를 탄 동지요. 그러니 정보를 숨기지 말고 서로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휴의를 체포할 수 있어요. 칭찬인가. 아니면 자신은 뒤로 빠지고 독립군 체포를 아예 종로서에 맡기려는 술책인가. 성공하면 숟가락을 얻고 실패하면 우리 책임이라고 떠넘기겠다. 네 놈 속셈을 내가 왜 모르겠니. 와타나베의 음흉한 마음을 알았으나 완용은 신경쓰지 않았다. 휴의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꼭 체포하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진 와타나베는 그 자만 잡아들이면 훈장을 상신하겠다고 말했다. 더러운 쪽팔이 놈, 네가 아니라도 훈장은 당연한 거야. 이 왜놈의 자식아. 완용은 속으로 끊었으나 사령관 각하가 그렇게 해주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둘은 은근히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당황하는 척 했지만 와타나베는 골치아픈 헌병대사령관보다는 조선총독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번 사건으로 총독이 책임을 지고 본국에 소환되거나 다른 총독이 거론 될 경우 자신이 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말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조선땅에 일본인치고는 없었다. 조선의 일인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이 건강상의 이유로 야욕이 없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는 허수아비 정무총감 대신 자신이 먼저 그 자리를 꿰차야 했다. 그런 다음 총독을 노리는 전략을 썼다. 그래서 그는 기분이 상했어도 완용을 칭찬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어떤 식으로든 공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총독부 방어에 병력을 집중 투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비난을 받았다. 많은 병력으로 총독 관저를 둘러싼 것은 조선의 치안이 나쁘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려주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조선민이 원해서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강제적으로 점령한 것을 시인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방어선을 치고 흰 옷 입은 사람들을 위협하겠는가. 더구나 숫자가 너무 많다. 행인보다 군인이 많으면 경찰국가를 자인하는 것이다. 전선은 수세에 몰리고 있다. 그곳에 가야 할 병력이 겨우 조선인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좋은 전술이 아니라는데 모아졌다. 보고서는 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와타나베는 방어 인력을 10분의 일로 줄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래저래 헌병대사령관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었다. 그는 종로서장의 공을 가로 채기 위해 휴의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귀신사의 경계를 자신들이 맡도록 총독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곳은 산 속이고 험해서 경찰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이유를 댔다. 뒤통수를 맞은 완용은 휴의가 절에 가기 전에 시내나 다른 아지트에서 체포하는 것으로 작전의 일부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부대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부관에서 완용의 뒤를 미행하라고 지시했다. 저자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라. 그러면 휴의나 조선독립군의 행방을 쫒는데 유리할 것이다. 

부관은 놀랐으나 즉시 그 명령을 수행했다. 서장을 뒤쫒다 보면 그런 날이 오겠지. 부관은 사령관의 판단에 감탄했다. 경찰보다 한 발 앞서 체포해 공을 세우자. 그러면 나도 승진하겠지. 사령관이 떠난 자리를 내가 차지하는 거야. 부관은 부관대로 염불보다는 잿밥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절 주변은 당장 우리 관할이다. 경찰은 그림자도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하고. 하이. 부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령관과 부관이 이런 짝짜꿍 놀이를 할 때 완용은 곧바로 서로 향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발길은 남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신사 참배의 기다란 계단이 마치 깊은 굴로 들어가는 출입문 처럼 보였다. 그는 그곳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일본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했다. 대일본제국의 승리를 위해. 그는 꺾은 고개를 더 깊이 꺾었다. 계단식으로 고개가 아래로 깊숙이 숙여졌다. 코에서 흙의 냄새가 올라왔다. 신사에 묻힌 왜의 조상신들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준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완용은 휴의를 잡아다 문초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눈 앞에 그 모습이 어른거렸다. 고바야시는 일본의 승리도 중요했지만 그 보다는 휴의를 체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의 우선순의를 따져도 휴의 체포가 먼저였다. 도무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녀석에게 질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구겨도 여러번 체면이 구겨졌고 세워도 모자랄 자신의 위신이 되레 깎여 나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잡으면 반드시 사지를 찢어 죽이리라. 이를가는 소리가 뇌 속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는 부관도 돌려 보낸 채 홀로 신사를 거쳐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서진 성곽의 잔해들 사이로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런 것이 다 뭐람. 그는 워커발로 쓰러진 돌무더기를 밟고 일어섰다. 대일본 제국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곳에서 불이나 지피고 있겠지. 적이 쳐들어 왔는데 어느 세월에 연기를 보고서 대비를 하느냐. 전화기를 들고 그는 인천에 파견 나간 부하를 닥달하는 자신을 돌아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가지에 잎이 돋고 곧 사꾸라가 만발하겠지. 그래 사쿠라 바람에 흩날릴 때 쯤 다시 한 번 찾아오자. 무언가 결실을 손에 쥐고서. 코트 깃을 세우고 완용은 멀리 총독부 건물을 내려다 보았다. 오후의 지는 해를 받아 대리석의 흰빛이 슬쩍슬쩍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람했다. 저 늠름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석조 건물 앞에 왜소한 기와집 몇 채가 눈치를 보듯이 한쪽에 비켜 서 있었다. 왕이라는 자가 준비는 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졌으니 나라를 잃는 게 당연하지. 그자가 아직도 조선 왕으로 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여전히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있겠지. 배를 곯고 밤낮 일해도 헐어빠진 옷과 짚신 따위를 신고 진창길을 헤매고 있겠지. 일본, 아 나의 조국, 왜의 나라. 완용은 순간 감상에나 빠져 들었다. 나의 조국 나의 일본. 완용은 신사쪽을 향해 아까보다도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왜의 신이시여, 완용을 돌보소소. 반역자 휴의를 체포하게 도와주세요. 그는 두 손을 모아 비벼댔다. 비비기를 한동안 하니 손에서 열이 났다. 그는 열이 나는 손을 들어 코에 댔다. 닭의 똥 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손을 내려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내려가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완용은 날 듯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사령부 대원이 행여 놓칠새라 그 뒤를 따라 달려 내려갔다. 완용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부하들은 퇴근했고 당직자 일부만이 완용에게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서장님, 헌병대사령부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고바야시가 대답 대신 어떤 내용이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전해주겠다고 했으나 그쪽에서는 직접 말하겠다고 하면서 오면 전화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래. 완용은 그렇게 말을 받고도 전화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가놀다 왔으냐, 왜놈 사령관 놈아. 종일 이야기 하고도 못다한 말이 있어 전화를 했느냐. 이놈, 이 왜놈 같은 놈. 아니 왜놈아. 완용은 속으로 사령관과 있었던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불쾌한 듯 미간에 금이 가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 네놈이 뭔데 종로서장에게 이래라 저래라야, 개새끼. 완용은 부하들이 사라지고 나자 이런 욕을 하면서 책상 아래 발을 굴렀다.

밥먹는 거 처음 보냐. 할 말 다했으면 어, 저리들 가 있어.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움직이는 부하들은 없었다. 그들은 벌써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직자가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사령관을 바꿔달라는 말도 하기 전에 와타나베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종로서장과 한잔 하려고 찾았는데 어디갔었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둘러대고 뭐라고 할 기분이 아니었다. 신사 참배하고 남산에 올랐다가 내려왔어요.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니, 아니 별일 아니오. 그저 술 생각이 났던 참에 서장님이 생각나서 전화해 본 거요. 우리 낮에 했던 얘기 잊지 맙시다. 그렇다고 밤잠까지 설치지는 말고요. 그쪽에서 먼저 전화 끊는 소리가 찰깍하고 나서야 완용이 몸을 던지듯이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개새끼. 빠가야로. 단순 술자리는 아닐 것이다. 할 말 다 해 놓고 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전화질이야. 화가 덜 풀린 그는 밥에 장국을 말아 먹으면서 책상에 숨겨둔 대포 한잔을 걸쳤다. 이대로 잠을 잘 수 없을 듯했다. 오늘 밤은 자기는 다 글렀다. 왜놈 자식에게 이런저런 지청구를 들었으니. 그렇다면 야간 순찰이나 돌아볼까. 그는 당직자 가운데 한 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사방은 어두었다. 가로등 몇 개만이 어슴푸레 빛나고 있었다. 행인들의 발걸음은 뚝 그쳤다. 그는 인사동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가 문득 점례를 떠올렸다. 그렇지, 점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일등상을 받은 점례를 왜 이제야 떠올렸는지. 빠가야로는 자신에게 할 말이라는 듯이 완용은 빠가야로를 외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렇군. 참의원이 그 집에 들렀었지. 동생이 큰 화랑을 하고. 그리고 그 집 아들이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으로 돌아왔어. 그래 맞아. 지난번 술집에서 마주쳤었지. 군바리 티가 나는 그 애송이와 점례는 무슨 사이야. 아무래도 조합이 맞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점례와 그들과의 관계는 족보를 사 양반으로 성씨가 바뀐 상놈처럼 도무지 짜맞출수가 없었다. 화실의 불은 꺼져 있었다. 껌껌했고 창문은 닫혀 있었다. 간혹 살림집을 겸한 가게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도 있었다. 희미한 불빛을 벗삼아 완용은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기어코 무슨 생각을 해내야겠다는 듯이 잔머리를 굴렸다. 그런 모습을 누가 보면 사건 현장에서 단서는 찾는 형사를 연상 시킬 것이 분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형사였다. 모델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서성이던 완용은 점례와 참의원과의 관계보다는 휴의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완용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화는 이른 새벽에 다시 오는 것으로 달랬다. 잠복해 있다가 그 집에서 나오는 자는 무조건 체포하자. 그는 시나리오를 짰다. 참의원 집 일행을 잡아들이는 것은 종로서장의 권한 밖이었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고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다. 부하가 용의자를 잘못 판단했다고 사과를 그것도 지나칠만큼 하게 되면 되레 좋은 소식이 올지 몰랐다. 이유는 유리한 쪽으로 갖대되면 되는 것이다. 

수상한 자가 밤에 주변을 여러차례 맴돌았다거나 수배자가 이 근처에 은신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랐다고 둘러댈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변명 할 수도 있었다. 참의원 가족 등 요인의 집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라고 하면 충분히 먹혀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완용의 계획은 한 발늦었다. 점례와 유마는 일주일 전 쯤 화실에 들러 짐을 챙겨 일본으로 떠났다. 삼촌 혼자서 빈집을 지키기 적적해 골동품 가게서 소개받은 종업원 하나를 들여 놓은 것이 그 큰 집에 사는 전부였다. 허탕을 친 완용은 이번에는 직접 사령관을 찾아갔다. 부르지 않아도 그가 보기 싫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은 조선제일화랑이 의심이 갔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 미심쩍은 예감 같은 것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직감은 맞아떨어졌고 이번에도 그것을 기대한 것이다. 종로서장은 자신의 직관을 믿었다. 휴의와 화랑이 어떤 끈으로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이제 그는 확신을 가졌다. 틀림없다고 단언하는 마음이 들자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서장 일행은 사전에 연락해둔 대로 우리가 왔다고 보초에게 일렀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지 보초는 신원확인의 절차도 없이 순순히 문을 열면서 마침 사령관 각하가 집무실에 있다고 말했다. 사령관은 정복을 입고 있었다. 언제나 업무 중에는 깔끔한 군복으로 위엄을 과시하던 그가 오늘도 예외 없이 날 선 군복과 같은 눈으로 서장을 맞았다. 어서 오시오. 말은 호탕하고 목소리는 웃고 있었으나 네 놈이 무슨 볼일이 있어 이곳 남산까지 기어 올라왔느냐고 묻고 있었다. 각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장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짧고 가는 눈을 치뜨고 있던 사령관이 관심을 보이면서 앉을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조선제일 화랑이 의심스럽소. 거기 조선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미술대전에 금상을 받은 것 알고 계시지요. 사령관이 그래서 하는 눈초리로 서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도 조선제일 화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곳은 참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화실이었고 자신도 동생과 안면을 트고 있는 상태였다. 총격전이 있기 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참의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가 직접 화실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의 직급이 한 단계 더 올라갔을지도 몰랐다. 화랑 주인이 자기 형이 일본의 유력 정치인인데 총독에게 잘 말해 주겠다고 몇 차례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사령관은 군대에서나 얻을 수 있는 진귀한 것 몇 가지, 예를 들면 일반인이 구하기 힘든 군용 물품을 삼촌에게 넌지시 아부용품으로 건넸던 것이다. 그런데 일이 틀어졌다. 그래서 분해 있었는데 완용이 화랑을 직접 언급하자 관심이 쏠렸다. 공을 들인 것이 허사로 돌아갔고 그래서 와타나베는 진급은 커녕 물 먹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참의원은 본국에 돌아가 사령관의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던 사령관은 모두 참의원 덕분이라며 동생을 통해 대신 치하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내막을 종로서장은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화랑 이야기를 하고 금상까지 꺼냈음에도 사령관은 그 집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시늉을 하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대답해도 늦지 않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섣불리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눈치챈 서장이 방향을 바꾸면 중요한 내용을 듣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격을 죽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압수수색 한 번 해야 할까봐요. 아무래도 사령관님이 애타게 찾는 몽타주의 인물이 거기와 연관돼 있다는 의심이 들어요.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사령관은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한 거요. 괜한 잘못 쳤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는데. 낭패라니요. 숱한 화랑가운데 하나 건드렸다고 종로서가 무슨 곤란한 지경에 빠질리가 있나요. 완용이 이해할 수 없다는듯이 되레 반문하면서 사령관을 빤히 바라봤다. 네가 감싸고 도는 이유가 무슨 잘못을 감추기 위한 것이냐고 추궁하는 시선이었다. 그 집은 참의원 동생이 운영하는 화실이오. 나도 그곳을 알고 있고 화랑 주인과도 통하는 사이요. 괜히 벌집 쑤시지 말고 제대로 짚고 몽둥이를 휘두르시오. 하필 참의원 집이라니. 완용은 모른 척 한 발물어섰다. 아니 물러난 척 했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아주 조금은 알고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집니다. 금상을 받은 조선 여자가 감쪽 같이 사라졌어요. 그 아들도요. 아실 거예요. 태평양 전쟁 영웅 참의원 아들요. 부상 때문에 돌아왔는데 조선 여자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어요. 종국에는 프랑스로 간다고 하네요. 

그래서요.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의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와서 프랑스로 갔단 말입니다. 그래서요. 사령관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놓고간 물건을 찾으러 왔을수도 있잖아요. 그게 무슨 압수수색할 만한 근거가 되는지 의아하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완용은 결정적인 근거를 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 돌아와 프랑스로 가깆 전에 몽타주 인물이 몇 차례 드나들었다는 첩보가 있소. 드나들었다고요. 언제요, 지금요. 아닙니다. 과거의 일이예요. 한 달쯤 됐을 거요. 그 시기가 묘하게 겹친단 말입니다. 파리로 떠나고 나서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고요. 그 전에는 몇 차례 있었거든요. 그러니 휴의는 점례나 참의원 아들과 관련이 있고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떠나자 관련이 이제는 없어졌으니 그 집을 찾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길게 말하고 나서 고바야시는 분하다는 듯이 한 숨을 내쉬었다. 그걸 알면서도 왜 이제서야 보고 하는 거요. 보고라니. 내가 너에게 보고할 처지냐. 상관도 아닌 주제에. 완용이 씩씩거렸으나 여기는 종로서가 아니고 적진이 아닌가. 그래서 한 풀 꺾여 들어가서는 늦었더라고 뭔가 단서를 찾으려면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삼촌이 무슨 비밀 같은 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이번에는 완용이 삼촌까지 걸고 넘어갔다. 이 놈 봐라. 아주 작정하고 내 심기를 건드리네. 몽타주 인물을 잡으려면 해봐야 할까봐요. 제의에서 이제는 통보로 완용의 어조가 바뀌고 있었다. 이것은 완용은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한 결과였다. 문제가 되면 헌병대와 상의했다고 하면 자신의 입지가 나빠지지는 않는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다는 말이다. 잘 되면 서로 군경이 협조한 결과이니 나쁘게 볼 것이 없다. 몽타주 인물, 몽타주 인물이라. 완용이 혼잣말을 하면서 사령관의 눈치를 살폈다. 

완용은 휴의라는 말 대신 몽타주 인물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것은 몽타주가 갖는 단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휴의라거나 조선독립군이라는 말보다는 범죄자 이미지가 강한 몽타주를 꺼내 들어 죄인의 이미지를 덧 씌우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 몽타주 인물과 조선여자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친 소리요. 설사 연관이 됐다고 한들 그 조선여자는 지금 프랑스에 가 있다면서요. 그래 프랑스까지 쫓아갈 작정이요. 아니요. 조선에서 꼭꼭 숨어서 무슨 꿍꿍이를 펼치는 휴의를 잡는데 그 조선 여자를 미끼로 삼자는 것이오. 어떻게. 편지를 쓰는 것이오. 조선으로 들어오도록 편지를 써야 하는데 삼촌을 이용하자는 것이지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 여자와 삼촌은 일 년 이상 화랑에서 같이 생활을 했어요. 사령관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후하게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러니 화랑 주인이 프랑스 주소를 알 것이고 편지를 쓴다면 돌아올 것이오. 돌아온 그녀는 필시 몽타주 인물과 연락을 취할 것이고 그 때 덮치자는 말입니다. 사령관은 대충 이해는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참의원 동생 집을 건드리는 것이 자신의 신상에 어떤 득실이 있을지 따져 들었다. 순간 귀찮아진 그는 그 일 때문에 자신과 상의하러 온 완용에게 갑자기 싫증을 냈다. 나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고 독단으로 해도 될 것을 왜 와서 귀찮게 하는지 화가 났던 것이다. 이 자가 나를 끌어들여. 물귀신 작선을 쓰는 구나. 그래서. 이봐요, 종로서장. 그런 일은 종로서 단독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니요. 다른 일은 잘 알아서 하더니 왜 이 일에는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오. 사령관이 말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완용도 따라 일어나면서 각하, 심려를 끼져 죄송합니다. 일단 꼬리를 내린 완용은 일전에 저에게 부탁하신 것도 있고 해서 보고할 겸 상의한 것입니다. 완용이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완용이 아니었다. 그 집이 보통 집이 아니잖습니까. 경호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새로운 내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수색이니 급습이니 이런 것 하지 말고 삼촌을 만나서 주소를 물어보면 되지 않소.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드시오. 보고라는 말에 사령관은 자신이 서장보다 위에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삼촌을 만나서 물어보든지 아니면 급습을 하던지 그 일은 서장이 알아서 하시요. 일단 화랑 주인을 화나게 하지 마시고, 그 화가 나에게 미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난 뭐가 뭔지 모르겠오. 조선사람끼리 잘 해 보시오. 사령관이 한 마디 쏘아붙였다. 조선사람 끼리. 누구와 누구를 말하는가. 하나는 나를 지칭하는 것인데 다른 하나는. 점례인가. 휴의인가. 완용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불리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조선사람을 끄집을 내는 사령관이 저질스러웠다.

내선일체를 주장할 때는 언제고 조선사람이라고 얕보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완용은 자신의 출신 성분이 분했으나 그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각하, 저는 조선사람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의 신민입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는 부하를 향해 조선말로 거칠게 쏘아 붙였다. 야, 가자. 이것은 마치 사령관에게 하는 명령같았다. 완용은 부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안의 더운 열기가 밖의 시원한 기운과 맞서다가 이내 풀이 죽었다. 귓가에 찬바람이 횡, 하니 스쳐 지나갔다. 화가 났지만 완용은 자존심을 접었다. 안에서 지켜 보고 있을 사령관을 향해 뒤들 돌아서서 거수 경례를 올려 붙였다. 그리고 신사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누구보다도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완용은 그랬다. 그는 그 순간 천황을 위해서 죽어도 한이 없다고 다짐했다. 그 모습을 본 사령관은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종로서장이라는 놈은 우리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럽단 말이야. 하여뜬 저놈은 조센징 중에서도 특이한 놈이야. 잘 써먹어야지. 가능하면 놈이 화랑을 압수수색 했으면 좋겠는데. 일이 커지면 화를 내면서 생색은 내가 내고. 삼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며 종로서장을 문책하라고 호통을 칠수도 있고. 하지만 내가 하라고 할 수는 없어. 참, 난감하내. 사령관은 두 발을 책상 위에 얹은 채로 담배를 꺼내 물고는 거만하게 연기를 품어냈다. 저 놈을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제대로 이용해 먹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없는 머리를 짜내면서 사령관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나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저 놈을 미행해. 라는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을 실행한 직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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