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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출산 후 뇌손상 산모에 10억 배상 판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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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출산 후 뇌손상 산모에 10억 배상 판결 '우려'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3.04.04 10: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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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서 판결 뒤집혀...산부인과계, 분만의사 이탈 및 전공의 기피 가속화 이유들어
▲ 분만 과정에서 과다 출혈 등으로 뇌 손상을 입은 산모에게 병원이 1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판결로 인해 의료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계에선 이번 판결로 인해 분만 인프라가 더욱 황폐해지고, 전공의 기피가 가속화될 거라고 지적했다.
▲ 분만 과정에서 과다 출혈 등으로 뇌 손상을 입은 산모에게 병원이 1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판결로 인해 의료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계에선 이번 판결로 인해 분만 인프라가 더욱 황폐해지고, 전공의 기피가 가속화될 거라고 지적했다.

[의약뉴스] 분만 과정에서 과다 출혈 등으로 뇌 손상을 입은 산모에게 병원이 1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판결로 인해 의료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계에선 이번 판결로 인해 분만 인프라가 더욱 황폐해지고, 전공의 기피가 가속화될 거라고 지적했다.

수원고등법원은 최근 산모 A씨가 B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0억 6180만원과 2016년 2월 1일부터의 이자를 지급하라면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인정한 배상액과 이자를 합치면 약 15억원에 이른다.

A씨는 임신 40주째인 지난 2016년 2월경 B의료재단이 운영하는 B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의료진은 질식분만을 시도하다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소하자 응급제왕절개수술을 시행, 아이를 출산했다. 수술 이후 A씨의 혈압이나 맥박 등에서 특이한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 부위를 봉합하던 중 질내출혈을 발견, 이를 멈추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출혈이 계속되자 남편의 동의를 받아 부분자궁적출술을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상승하자 병원은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하는 한편 수술을 종료한 뒤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 했다. 전원 됐을 때 A씨는 코마상태로, 복부 CT촬영 결과 복부에서 다발성 출혈병소가 관찰돼 의료진은 자궁동맥색전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A씨는 저산소성 뇌 손상 의증, 산과적 (폐)색전증 의증을 진단받게 됐다. 또 뇌 기능 손상으로 인지능력 저하, 사지의 경도마비, 보행 장해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에 A씨는 B병원을 상대로 자궁 절개 부위 봉합 부전으로 대량 출혈을 시킨 과실, 산후 출혈에 대한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 대량 출혈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과실, 전원(병원 이송)을 지연한 과실 및 설명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총 30억여원을 배상하라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지만, 2심 재판부는 병원 측의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B병원 의료진은 A씨의 대량 출혈을 확인하지 않은 의료상 과실로 자궁적출술과 전원 조치를 지체한 잘못이 있다”며 “A씨 및 보호자 등에게 응급상황과 그에 필요한 치료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적절한 전원치료가 지연되는 원인을 제공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만약 A씨가 좀 더 빨리 전원치료를 받았거나 자궁적출술을 받았다면 현재 상태에 이르지 않았다거나 적어도 치료 후의 경과가 지금보다 더 좋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A씨의 출혈을 발견한 무렵부터 지혈을 위해 계속 노력한 점 등 의료상 과실로 원고가 심각한 뇌 손상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발생한 모든 손해를 피고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의료행위 특성과 그 위험성의 정도 등에 비춰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면서 손해배상책임을 40%로 제한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산부인과를 포함한 의료계에선 크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한 여파가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

지난 2014년 인천 한 산부인과에서 자궁 내 태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 담당 의사가 금고형을 선고받은 당시에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50%대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해당 의사가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고 학회ㆍ의사회 노력으로 지원율이 80%대로 회복됐지만, 이번 판결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지난 2일 ‘제49차 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법원 판결 직후 분만 현장에서는 당장 이 상태로 분만을 어떻게 해야 하냐, 우리도 소청과 폐과처럼 분만실 폐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이번 판결로 분만 현장에서 받은 충격은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대로라면 의료적 판단을 의사가 아닌 법원에서 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는 산부인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중환자들 사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모든 진료가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인턴들 사이에서 산부인과를 지원하면 ‘미쳤냐’, ‘돌아이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산부인과는 이미 기피과로 낙인 찍혔다”며 “계속 이런 식의 판결이 난다면 필수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유 회장도 “의료행위라는 것은 정확하면서도 완벽할 수 없다. 의학교과서나 이제까지 알려진 의학상식에 벗어난다면 의료과실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과실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에서 나온 판결”이라며 “결과에 따라서 잘못했다고 판결을 내린 건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어 “처치 과정을 살펴보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행위를 했다. 다만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인데, 그 결과가 끼워 맞춘 판결”이라며 “의사회에서는 해당 회원이 연락을 주면 언제든지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에서도 이번 판결에 대해서 크게 우려했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겸대변인은 “의협이 의료분쟁특례법을 추진하는 이유가 이 판결에 있다”며 “당시 여러 상황과 병원의 진료기록 일부를 귀책사유로 삼아서 판결을 했는데, 행위적으로 볼 때 산모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의료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분만 과정에서 악결과가 발생했고, 이를 가까이 있는 의료진 탓을 돌리면 앞으로 산부인과를 하려는 의사는 없을 것이고, 분만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게 분명하다”며 “불가항력 사고에 대해서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보호해야 한다. 개인 의사나 개별 의료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면 의료현장은 더욱 황폐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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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2023-04-07 10:37:03
뇌손상 환자는 평생 치료받으면서 살아야 되는데 10억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 아닌가?
의사도 사람이니까 실수 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실수로 인하여 환자는 평생 고통받으면 살아야 되는거죠. 아무리 의약업계를 대변하는 언론사라 하더라도 기사를 중립적으로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의사는 성역이 아닙니다. 본인이 실수해서 피해가 입증되었는데도 배상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환자는 어디서 보상을 받나요? 더구나 우리나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승소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법원 및 국가에서는 제도적으로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일종의 성역화 시켜주고 있는 현 상황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