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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목적지에 대한 불안감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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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목적지에 대한 불안감은 깊어만 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3.02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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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은 쌀쌀했다. 먼 산마다 눈이 쌓였다. 신의주의 삼월은 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가 떠도 눈은 녹지 않았다. 그러나 실내는 후끈거렸다. 기차에서 내린 점례 일행은 트럭을 타고 한참을 달렸다.

경성역에서 보았던 그 트럭이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어느 순간 국경을 넘었고 드넓은 만주 벌판 깊숙이 들어갔다. 조선 땅은 이제 돌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트럭은 사람만의 무게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덜컹거리는 것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도로는 좋지 않았다. 눈이 없는 곳은 먼지가 일었고 눈이 있는 곳은 일부가 녹아서 웅덩이가 됐다.

그런 곳은 패였고 패인 곳을 지날때는  쓰러질 듯 뒤뚱거렸다. 사람들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사라진지 오래인 핏기 대신에 공포가 자리 잡았다. 다들 두려움에 떨었다.

춥기도 어지간히 추웠다. 천으로 뚜껑을 덮기는 했지만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무명의 옷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두 사람 당 군용모포 한 장이 따로 지급됐다. 그것을 뒤집어 쓰고 소녀들은 두려움과 추위와 맞섰다. 

점례는 파리한 소녀를 모포로 감싸주었다. 소녀는 체온이라는 것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자신의 팔로 안았을 때 소녀는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조금만 참아. 곧 목적지에 올 거야. 따뜻한 밥과 폭신한 이불도 있고. 그리고...

점례는 돈이야기를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이제 그것으로도 소녀를 안심 시킬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돈 벌러 왔다가 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람, 허탈한 마음이 점례의 돈을 눌렀다. 

도대체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알 수 없는 목적지에 대한 불안감은 너무 깊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멀미가 왔고 어지러움은 점례 일행의 혼을 쏙 빼놓았다.

살다 살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속이 울렁 거렸고 먹은 것은 다 토해냈다. 트럭 바닥에서 쉰 냄새가 올라왔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점례는 일본에 간다더니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 잡을수 있는 힘이 없었다. 될대로 되는 거다. 그녀는 자신이 홀로 아닌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함께 있으니 그런데로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옆자리의 소녀는 자신보다 멀미가 더 심한지 아예 안색이 없다 못해 파리하기 까지 했다. 살다 살다 파란색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아보자. 트럭에서 내리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돈도 줄거야.

점례는 돈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는 소녀에게 그래, 많이 돈 벌거야. 조금만 참자, 하고 달랬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산을 타고 들을 지나 계속 앞으로 가기만 하는 트럭은 멈춘다는 것을 잊은 듯 했다. 참을 만큼 참았던 소녀들은 창피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체 남은 것은 다 토해냈다.

토할 것이 없는 소녀들은 검은 물 한 모금까지 다 기어냈다.

살려 주세요.

어디선가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살려 주세요.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반응은 없었다. 달리는 트럭 위에서 그 소녀를 살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살아야 한다. 아우성을 치든지 아니면 가만 있던지 알아서 처신해야 한다. 

그것을 신호로 여기저기서 웅성대지도 않았다. 그것 뿐이었다.

살려 주세요.

점례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 내가 너에게 동조해 줄게라고 속으로 속삭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점례는 정신줄을 풀지 않았다. 아니 더 단단히 잡고 있었다.

그 때 트럭의 맨 뒤에 타고 있던 두 명의 군인 가운데 한 명이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트럭의 난간을 잡았다.

일어 섰다고는 하나 허리를 다 편 것은 아니었다. 겨우 그가 몸의 중심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차가 웅덩이를 통과했고 그 바람에 군인은 오물더미에 발을 헛디뎠다.

넘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난간을 잡은 손을 놓치는 것과 동시에 군인은 점례쪽으로 쓰러졌다. 강한 충격에 점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군인은 화가 나 있었다.

군화의 한 쪽에 밥풀이 묻어 있는 것을 그는 성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자기 자리로 가기 위해 일어서던 군인은 힘을 주면서 애꿎은 점례를 밀쳤다.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은 순전히 그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저리 꺼져.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점례가 지른 것인지 그 옆에 있던 파리한 소녀가 마지막 힘을 짜서 지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소리에 더 화가 났는지 제자리로 가려던 군인이 밥풀 묻은 군홧발을 파리한 여자의 치마에 대고 씻었다.

에이, 더러워.

발길질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운전석 쪽에서는 뒤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유리창으로 운전자 옆자리의 장교가 고개를 돌려 간혹 뒤쪽을 살폈으나 지금은 꾸벅거리느라고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한 번에 오물이 떨어져 나가자 씩씩거리던 군인은 화풀이 대신 소총을 가랑이 사이에 끼고는 흔들리는대로 몸을 맡겼다. 옆자리 소녀는 그와 몸이 닿지 않게 웅크렸다. 그가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소녀 나이 또래인 그도 이들이 조금은 불쌍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코가 석자인 만큼 호의를 베풀만큼 인정이 많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번 길은 초행이 아니다.

처음에는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 때문에 조심스럽게 대했으나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자 시끈둥해 진 것이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은 그는 총을 세우고 무표정하게 맞은편을 응시했다.

점례는 안도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느꼈다. 토할 것 같다고 여기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의 깊은 안쪽에서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자신의 통제밖에 있는 행동이었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남의 토는 그런대로 참았으나 자신의 토 만큼은 참기 어려웠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것에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분은 곧 풀렸다. 앞이 어질거리고 자꾸 어질 거리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하나로 보였다가 둘이었다가 자꾸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점례는 쓰러졌다.

제 몸무게를 못 이겨 옆에서 받쳐 주던 파리한 소녀의 힘이 빠지자 그녀는 토사물 바닥에 고꾸라졌다. 발길질 했던 군인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앞쪽으로 다가와 유리문을 두드렸다. 잠에서 깬 장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따지는 눈치였다.

잠시 후 차가 멈춰섰다.

모두 내려. 좀 쉬었다 가자.

차에서 내린 여자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쓰러질 듯 하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는가 하면 그 때까지 참았던 구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앞에서 내린 일본인 장교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크게 웃었다. 숲속에 웃음소리가 봄 꿩이 우는 것처럼 꿩꿩하고 들렸다. 점례는 이게 무슨 일인가. 무슨 날벼락인가 생각했다.

일이 잘못되도 한 참 잘못되고 있다. 무엇이 우습다고 웃는가. 웃다가 지친 그는 담배를 꺼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자 장교 주위로 운전수와 뒷자석에 있던 군인 둘도 호위하듯이 그 주위에 따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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