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6 16:11 (금)
국내 진공작전에는 의열단도 참여할 생각이다
상태바
국내 진공작전에는 의열단도 참여할 생각이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2.08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주 앉은 사장은 왼손으로 얼굴의 한쪽을 가리고 있었다.

왜, 그러시오. 맞기라도 했어요?

말수가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럴 리가요? 일제는 나를 신뢰하고 있어요. 이 상처는 잠깐 발을 헛디뎌서 생긴 것이오.

그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렸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딱히 고문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웠고 그 말대로 넘어진 상처 때문인지도 몰랐다.

말수는 그가 말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었다. 다만 부기는 한 사나흘 지나면 나을 정도네요. 심하지 않아요. 하고 위로했다.

사장은 한 달이 걸리든 그 이상이든 상관없다는 듯이 이런 것은 상처도 아니라고 했다. 나야 뭐, 사령관에 비하면...그가 머뭇거렸다.

그런데 휴장군은 어디로 도망쳤어요? 하고 물었다. 도망쳤다는 말이 거슬렸다. 일부러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아니겠지만 단어 선택에 좀 더 신중했으면 싶었다. 

그야 나도 모르지요? 나도 당했다니까요.

무슨 말인지요?

포목점 사장의 눈이 반짝 빛났다. 상처 때문에 더 작아진 눈이 뱀눈처럼 날카로웠다.

권총 위협을 당했어요. 곧 아시겠지만 그자들이 나와 아내를 묶었다고요.

그랬군요. 그 자들이라면?

말수는 대답대신 이번에는 자신이 질문할 차례라고 여겼다.

그나저나 형님은 어쩐 일이요?

뭔가 착오가 생긴 모양이오. 영사관에서 석방절차를 밟고 있으니 곧 나갈 거니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요.

그런데 휴 장군이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나요? 세 명이 왔다면서요?

좀 천천히 물어 보세요. 숨 넘어 가겠어요.

그야, 알 수 없지요. 도망치는 사람이 나 어디로 도망친다고 미리 말하고 그러진 않잖아요?

납치 과정에서 힌트를 얻을 만한 정보도 없고요?

알 수 없는 질문만 하시네요.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나에게 정보를 줄 정도면 굳이 묶을 이유가 없었겠지요. 

이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몇 명이 왔는지 알수 없었다. 세 본 다고 해도 그럴텐데 자기 방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무슨 경황이 있겠는가. 

다행입니다. 영사관이 석방 절차를 밟고 있다니. 영사관에 간다고 가서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아차 싶었어요. 사모님이 급히 와서는 알라 보라고 부탁해서 이렇게 다급하게 왔지요.

어쨌든 고맙소. 나가면 내 술 한 잔 사리다. 

그건 그렇고 오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아마도 휴장군 도피에 내가 관여했다는 의심을 산 모양입니다. 환자의 정체를 알고서도 미리 보고 하지 않은 책임을 물은 것이지요. 저는 끝내 불지 않았어요. 그것이 괘심죄가 된 것이고...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게 있어요. 형사가 병원을 급습하고 환자가 탈출한 시간이 거의 비슷한 게 우연의 일치 치고는 기묘해요. 아마 누군가 환자를 빼돌린 즉시 환자의 정체를 영사관에 보고한 게 아닐까요?

사장의 눈빛이 아까 보다 더 빛났다. 

그 사람 정체는 나와 사장님 밖에 더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박선생도 있고. 그렇다면 박선생이? 

말수가 사장이 자신을 의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이렇게 떠넘겼다.

그럴 수 있겠군요. 그 분이 밀정이라면.

사장은 자신이 제발고 영사관에 신고하러 갔다가 체포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은 빠지고 다른 제 3자를 엮어 보려고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게 계책이 영사관에 먹혀든 것일까. 

정말 영사관은 포목점 사장을 신뢰하는가. 그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납치 사건을 알고 있다. 사장님은 짐작이나 했어요? 박선생이 밀정이라는? 하고 물으려다가 말수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른 소리를 했다. 지금도 뭐가 뭔지 얼떨떨해요. 참 나도 직업이 의사라고 묶여 있느는 와중에도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신변의 위협보다 환자를 먼저 걱정하다니...

어쨌거나 휴의는 죽음 목숨이나 다름없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요.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저렇게 끌고 갔으니 사후관리가 되겠어요?

말수가 동의를 구하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사장은 이번에도 대답대신 질문을 택했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의사 선생, 내게는 거짓말하지 말아요.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한 가지만 더 물어 봅시다. 어떻게 묶인 줄을 풀었어요?

말수는 어이가 없었다. 사건 자체를 사장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체포가 가져온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형사가 풀어줬지요. 아까 말하지 않았나요. 

포목점 사장은 아, 그랬었지 아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으나 전적으로 믿는 표정은 아니었다.

어디로 갔는지 혹시 알 만 한 사람이 없을까요? 

같은 질문이다. 이것은 형사들이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전에 다녀간 형사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더구나 면회객에게 이렇게 큰 소리로 물을 수 있는 것도 이상했다.

대개는 조용조용 이야기 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 그런데 사장은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떠든다. 일부러 누가 들으라는 듯이. 말수는 발을 들어 가볍게 아래를 몇 번 툭툭 쳤다. 빈공간에서 울림이 들렸다.

나무판자 아래서 누가 귀를 대면 두 사람의 대화는 쉽게 드러날 것이다. 이 자가 나를 이용해서 무슨 비밀을 캐내려 하는구나, 직감한 순간이었다.

그가 몸을 앞으로 구부리면서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말수는 왠지 싫었다. 그래서 이쯤해서 면회를 끝내고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사장은 아까 했던 질문을 약간만 바꿔서 다시 했다. 

만약 그자가 숨을 곳이 있다면 어디라고 생각해요? 지난번에 우리가 갔던 임정의 안가는 아니겠지요?

말수는 동의했다. 그곳은 이미 일제가 파악하고 있는 장소인데 거기를 선택할 리는 없다고 말했다.

아마 그곳도 검색 대상에는 올라 지금쯤 형사들이 다녀갔을 겁니다.

그렇지요? 다른 곳은?

글쎄요. 제가 어디 그쪽과 끈이 깊나요? 사장님이 더 잘 아실텐데요.

말수는 형님대신 사장님 호칭을 쓰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안심하시오. 동생. 내가 동생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소. 내 선에서 마무리 짓기 위함이지요. 굳이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함께 물속에 빠질 이유가 없지요. 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충분해요.

마치 잘못이 있는데 자신 때문에 말수가 잡혀들어 가지 않은 것처럼 사장이 뜬금업이 말했다. 말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보다는 그의 처지가 딱해 그래 언제쯤 나올까요? 하고 걱정하는 투로 물으면서 어디 구명 요청을 할 데가 있으면 말하라고, 자신이 나서겠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어, 벌써 석방 명령서가 왔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장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예상대로였다. 영사관은 실무진의 착각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포목점 사장을 석방했다. 둘은 나란히 영사관을 빠져나왔다.

우리 낮술이나 한 잔 삽니다.

그럴 정신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밤이 깊어가고 있어요.

아, 그렇네요. 낮에 잡혀 와서 여전히 낮인줄 알고 있었다니까요.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사거리에서 그는 자기집으로 말수는 병원으로 각자 발길을 돌렸다. 

한편 약산은 작은 메모 하나를 남겨두고 임정의 안가를 떴다. 자신이 남아 있는다고 해도 할 일이 없었다. 작전이 변경됐으니 다른 작전을 펼쳐야 한다.

그는 무선전신기, 암호책자, 이념 서적 등에 묻은 자신의 지문을 지우고는 방을 나섰다. 치료 경험이 있는 임정 요원과 의사 박군이 휴의의 치료를 감당할 것이다.

임무에서 배제돼 갑자기 허탈해진 그는 방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모처로 이동해 죽산과 접선해야 한다. 그 장소는 여러차례 지나쳤으므로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넉넉했다. 그러나 그는 달리 갈 곳도 없어 미리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바깥공기가 약간 차가웠다. 그의 짙은 삼각형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람 때문이 아니라 큰 눈에 들어간 티끌 때문이었다. 그는 눈꺼풀을 껌벅거렸다. 눈물이 찔금 나왔다. 두 손으로 눈썹을 문지르면서 그는 올라간 손으로 머리도 매만졌다.

죽산을 만나는데 깔끔하게 보여야지. 그런 생각으로 그는 어느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은 밖과는 달리 포근했다. 바람은 멈췄고 온기가 감돌았다. 죽산이 먼저와 있었다.

이거 기다리게 했습니다.

아니오, 아직도 약속 시간이 한 참 남았는 걸요.

빨리 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됐어요.

괜찮되두요. 그래 휴장군은 어떤가요?

다행히 목숨은 건지 모양입니다. 모처로 이동중인데 일제가 비상을 걸고 난리입니다.

오전에 난 사이렌 소리는 아마도 그것 때문이겠지요?

그럴 겁니다.

금붕어 형상의 잘 생긴 눈이 가볍게 떨렸다. 환영한다는 의미라고 약산은 생각했다.

다행입니다. 장군이 빨리 회복돼야 국내 진공작전이 차질이 없을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거기에 우리 조선의용대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약산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요. 우리가 힘을 합쳐야지요. 사분오열이 왠 말입니까?

임정과는 잘 얘기가 되고 있나요?

그럼요. 그러니 휴장관 탈출 책임을 저에게 맡겼지요.

주석님과도 화해했고요?

화해고 말고가 있나요. 원래 우리는 같은 생각이었어요. 임정폐지를 주장했다는 말은 사실과 달라요. 소문이 그렇게 난 것은 제가 좀 과격한 것이 문제지요.

약산이 웃었다. 죽산도 따라 웃으면서 그래도 약산의 주장은 많은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요. 더구나 연안파와 결별까지 한 것은 잘 한 일이지요. 임정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의견에는 동조합니다. 그런데 조선혁명당은 어쩌고요?

같이 가야지요. 약산은 두루뭉술하게 이 부분은 넘겼다. 아직 확정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가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수십 개의 정당이나 분파는 세력의 약화만 가져 옵니다. 민족 유일당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도 박헌영 쪽과는 결별했어요. 너무 급하게 나가면 탈 나지요.

그가 기침을 했다. 겨우 손으로 입을 막을 정도로 급하게 나오는 기침이었다.

그래, 죽산 선생님은 건강은 어떠세요.

나야, 뭐 늘 이 지경이지요. 추운 모스크바행이 독감으로 이어졌나봐요. 결핵만 아니면 다행이지요.

모초록 몸 건강하셔야지요.

이제 그 곳에 갈 일을 없을 겁니다. 선생이 연안파와 결별했듯이 나도 공산당과는 선을 끊을 작정입니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을 집어 들었다. 잘린 손가락이 안타까웠다. 약산은 자신도 감옥 경험이 있어 감옥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독립운동하다 수감생활을 한 사람끼리 모이면 상대가 나보다 더 심하게 당한 꼴을 보면 가슴이 미어져 온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지 이제 두 어달 되어 갑니다. 몸이 조금 회복되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나저나 약산선생도 조심하세요. 조선독립에 있어 선생만큼 치열한 사람도 없으니 후배들에게 귀감을 오래도록 주기 위해서도 건강해야지요.

허허, 선생님에 비하면 저는 새 발의 피입니다. 선생님처럼 교양있고 굽힘없는 뚝심이 부럽습니다. 그런 선생에게 무정부주의자니 교활한 공산주의자니 주석에게 사사건건 대드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다니 그게 왠말 입니까.

다 제 불찰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전쟁은 어디로 흘러갑니다.

일제의 패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세계 신문을 보면 그런 분위기도 감지되고요. 하지만 언론은 자기 나라 유리한 쪽으로 보도만 하니 알수가 있나요.

일제의 기세는 어쨌든 예전만 못한 것이 확실하군요. 이럴수록 몸조심해야지요. 예비검속이다 뭐다 해서 지금 대대적인 독립운동가 체포에 나서고 있어요. 여기도 위험합니다. 살아서 광복된 조선에서 함께 만납시다.

무슨 작별 인사 같아 슬퍼집니다. 그래요. 이렇게 선생님을 직접 뵙고 좋은 말씀 들었으니 안심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우리는 합쳐야 해요. 이것은 조선독립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