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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고양이를 부탁해(2001)- 비굴하게 웃기 싫고 레논처럼 죽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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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고양이를 부탁해(2001)- 비굴하게 웃기 싫고 레논처럼 죽고 싶지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1.27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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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교실에서는 나름대로 평등하다. 같은 학교 같은 반 같은 담임이라는 이유로 너와 네가 비슷한 듯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인천에서 여상을 졸업한 이들은 각자 진로를 찾아 떠난다. 한 명(이요원)은 여의도 증권사에 취직한다. 다른 한 명(배두나)은 아버지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른 한 명(옥지영)은 공장이 문을 닫아 일자리 알아 보기에 바쁘다.

다른 두 명의 쌍둥이 자매(이은실,이은주 이들은 후에 극중 이름인 비류와 온조로 이름을 바꿨다.)는 거리 외판을 하면서 그럭저럭 하루를 보낸다. 땅에 닻줄을 놓고 줄넘기를 하면서 그런대로 평등했던 이들 여고생들의 일상은 졸업 후 이렇게 바뀌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되겠다.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가니 고양이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핵심은 아니다.

어느 날 지영은 길고양이를 들인다. 할머니는 '괭이'는 요물이라면서 반대하지만 벌써 티티라는 이름까지 가졌으니 어쩔 수 없다. 그 고양이가 어떤 이유로 인해 친구들에게 떠넘겨진다. 그때 하는 말이 영화의 제목인 '고양이를 부탁해'가 되겠다.

한편 요원은 깔끔한 옷을 입고 종일 분주하다. 하지만 하는 일은 커피를 타거나 복사를 하거나 팀장의 개인 심부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저부가가치의 일이다. 처음에는 열성을 보인다. 팀장의 자리에도 앉아 보고 승진을 위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좀 더 가치 있는 해야 한다는 고민에 쌓인다.

오지랖이 넓어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대신 타자를 치기도 하는 두나는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다. 그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고 우정을 생각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싶다.

▲ 여상을 졸업한 친구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평등했으나 졸업후에 이들의 인생은 각자 위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 여상을 졸업한 친구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평등했으나 졸업후에 이들의 인생은 각자 위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누가 먼저 연락을 하고 장소를 어디로 정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각자 조금씩의 자존심은 남아 있고 경쟁하려는 심리도 있다. 과거에 친한 것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 섭섭해도 그만이다.

둘 만 모여도 시기와 질투가 싹 뜨는데 다섯 명씩이나 되니 문제가 아니 생길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상대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친구가 야속하기만 하다. 돈을 좀 만지는 요원은 동대문 옷 상가에서 여러 벌을 고르지만 지영은 그렇지 못하다.

쇼핑에 빠져 있는 친구가 부러운지 아니면 자신의 처지가 괴로운지 그는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논다. 두나 역시 불만이 가득차 있다. 언제까지나 봉사하고 남의 뒤치닥꺼리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직 꿈 많은 이 십 대니 무언가 하기는 해야 한다. 담배를 피고 술을 먹고 춤을 춰도 마음속의 공허를 메울 수는 없다. 양말을 꿰매 신을 정도로 가난한 지영은 집이 무너져 내려 조부모 모두 세상을 떠난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지영이 안쓰럽지만 말로만 동정을할 뿐 다른 대책이 없다. 조사를 위해 경찰서에 간 그는 묻는 말에 아예 입을 봉해 버린다. 며칠간 구치소 신세를 지고 그가 나온다. 그런다고 달라진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 노랑머리가 다시 검어지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가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잘 곳도 갈 곳도 없다. 두나는 가출을 시도한다. 일 년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계산해서 아버지 돈을 훔쳐 나온다. 혼자보다는 둘이 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그는 지영과 함께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쥔다.

상처 입은 영혼, 방황하는 청춘은 이걸로 끝난 걸까. 하늘의 비행기는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이들이 비굴하게 웃지 않아도 되는 삶, 레논처럼 멋지게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줄까. 물음표에 대한 답이 부정적일지라도 일단 시도해 봤다는데 두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런움직임 조차 해보지 못하고 주저 앉는  청춘은 부지기수로 많다.

국가: 한국

감독: 정재은

출연: 이요원, 배두나

평점:

: 영화에 음악이 빠질 수 없으니 몇 곡의 영화음악이 나온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맨 처음 시작과 동시에 '전우여 잘자라'는 진중 가요가 선보인다는 점이다. 여고생 대상에 군가라니. 그래서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 봤다.

한국전쟁의 피비린내 속에서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만들어진 이 노래는 매우 슬프면서도 벅차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나, 우리는 전진한다.’ 이 비장함이 졸업을 앞둔 여고생들에게도 딱 들어맞는다고 봤을까.

총칼만 없지 전쟁터보다 더 살벌한 사회현실을 보여주는 노래다. 과연 졸업한 여고생들은 각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전우의 시체를 밟고 앞으로 돌격하는 군인들처럼.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사회는 학교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증권사 ‘시다바리’로 하루 11잔의 커피를 타는 저부가가치 인간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니들이 '사회를 알아' 하는 말은 전쟁터와 사회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현실은 영화가 나온 그 시절과 달라졌을까. 살림살이는 더 좋아졌을까. 막 20살을 맞은 청춘들의 삶은 더 행복해졌을까.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꿀과 젖이 흐르는 낭만이 펼쳐질까. (잘 적응하는 인생이라면 그것이 어찌 이 십대 삶일 수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각자 답을 해보자. 이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하는 질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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