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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말괄량이 길들이기(1590)- 더 상냥하게 더 사납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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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말괄량이 길들이기(1590)- 더 상냥하게 더 사납게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3.01.24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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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사람은 바꿔서 쓸 수 없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얼마든지 바꿔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보면 이 말은 사실로 증명된다.

그러니 사람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그런 고정관념을 가졌다면 재고하기를 권고한다. 고쳐 써 보니 매우 만족이다. 고쳐 쓰는 과정이 조금 까탈스럽다는 점을 빼면.

이탈리아가 무대다. 피사에 사는 부자 아들 루첸티오가 파도바로 여행을 온다. 유학을 핑계 댔으나 실상은 공부보다는 다른데 한눈을 팔고 있다. 피 끓는 청춘은 공부가 다 무엇이야, 신부를 원하는데 마침 마음에 꼭 드는 신붓감이 나타난다.

이름은 비앙카. 아버지는 파도바에서 부자로 소문난 밥티스타. 얼굴 예쁘고 마음씨 착하고 돈도 많은 비앙카에 루첸티오는 곧 빠져든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구혼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편 비앙카는 언니 카트리나 때문에 괴롭다. 때리고 손을 묶고 학대한다. 이유는 아버지가 자신을 멀리하고 동생만 편애한다는 것. 언니 카트리아에 따르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 비앙카 우리 비앙카 하지만 자신에게는 고집쟁이나 심술꾸러기 취급을 한다는 것.

아버지 사랑에 목마른 카트리나의 성격은 더 거칠어져 '이보다 더 악녀는 없다'는 지경에 이른다. 밥티스타의 고민은 깊어진다. 둘째인 비앙카에게는 신랑이 줄을 섰지만 카트리아에게는 청혼자가 하나도 없다.

재산은 많아도 나이 들어 곧 죽을 목숨인데 돈을 물려줄 사위를 못 구하면 낭패다. 그렇다고 첫째를 무시하고 둘째부터 시집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러나 고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저절로 풀어진다.

누구도 구혼하지 않는 카트리나에게 페트루치오라는 청년이 나타난다. 베로나에서 온 그는 돈은 많으나 성질은 불같고 목소리는 천둥처럼 크고 성질은 괴팍하다.

주인공답게 뒤늦게 나타나서는 무대를 아예 개차반으로 만든다. 하지만 모두 네가 아무리 그래도 카트리나의 상대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웃었다.

얻어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불쌍한 청혼자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결론은 다 알다시피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를 드센 신부가 아닌 양순한 신부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무슨 소리를 하든 칭찬 세례를 퍼붓고 따귀를 때리면 다른 쪽 뺨을 내민다. 악마로 변해 악다구니를 퍼부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케이트, 베이비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카트리나를 어이 상실하게 만든다.

어거지로 결혼을 약속하고 나서는 상냥한 태도가 돌변한다. 식장에서 신부를 냅다 걷어차는가 하면 피로연도 하기 전에 급하다고 하객을 무시하고 바로 납치하듯이 신부를 끌고 간다.

천하의 카트리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기 일보직전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멋들어진 상을 차리고는 온갖 구실을 대고는 상다리를 걷어찬다. 진수성찬이 그런 식으로 차려지고 계속 사라진다.

밤에는 잠을 재우기 않는다. 신혼부부라면 당연히 치러야할 응응응은 간데없고 베개가 더럽다느니 하면서 이불을 제킨다. 새옷과 모자를 진흙땅에 쑤셔 박는다. 온갖 트집에 패악질이 도를 넘었다.

굶기고 잠 못자게 하니 카트리나는 죽을 맛이다. 지금까지 이런 상대를 만난 적이 없다. 달을 보고 해라고 하면 해고 여자를 보고 남자라고 하면 남자가 맞다고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거짓에 수긍하면 어디 저게 해냐고 시비를 걸고 저게 남자라고 하면 네눈에는 그렇게 보이니? 여자지 하면서 남자가 맞다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상 또라이’ 짓을 멈추지 않는다.

▲ 천적은 있기 마련이다. 천하의 카트리나도 페트루치오 앞에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강했으나 진짜 강자를 만나 순한 양으로 길들여진 카트리나의 처량한 신세를 위로해 본다.
▲ 천적은 있기 마련이다. 천하의 카트리나도 페트루치오 앞에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강했으나 진짜 강자를 만나 순한 양으로 길들여진 카트리나의 처량한 신세를 위로해 본다.

카트리나는 미친 여자가 되어 그가 맞다고 하면 맞고 틀리다고 하면 틀린 것이 맞다는 지경에 이른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정도는 약과다.

살기 위해 카르리나는 그의 순한 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길들여졌다. 온순한 양이 되어 늑대의 종이됐다. 약자에게는 강했던 그녀는 강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자, 주인공의 이야기는 이렇게 대충 마무리됐다. 그러면 맨 처음 나왔던 루첸치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예쁘고 상냥하기까지 한 비앙카를 수많은 구혼자 중에서 어떤 방식으로 차지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인을 자신으로 하고 자신은 캄비오로 변장해 비앙카의 시를 전공한 라틴어 교사로 잠입 하는데 성공한 것이 사랑의 결실을 얻은 첫 걸음이다. '내 사랑 비앙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비앙카'를 제목으로 사랑의 시를 읆어 주면 끝.

그와 경쟁했던 페트루치오의 친구 호텐쇼와 다른 구혼자들은 그에게 속아 애초 사랑했던 미망인과 결혼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나가떨어졌다.

결혼에 성공한 세 명의 남자들 페트루치오와 루첸치오 호텐쇼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서로 누구의 아내가 말을 잘 듣는지 남편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내기에 나섰다.

남편의 전갈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오는 신부의 남편이 승자다. 당연히 카트리나가 일등으로 들어온다. 페트루치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르게 온 것.

그때까지 반신반의 했던 두 남자는 완벽한 길들이기에 성공한 페트루치오를 보고 사람은 바꿔 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더구나 그녀는 여자의 자세 혹은 아내가 남편을 섬길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의 사이비 교주 같은 설교를 늘어놓는다. 성난 여자는 탁한 물과 같아서 보기 흉하다는 것. 남편은 주인이고 생명이며 수호자란다. 길 들여진 여성의 말로는 이런 식으로 끝을 맺는다.

: 페트루치오 내외가 주인공이지만 루첸티오를 주인공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중도 높고 재미도 뒤지지 않는다. 처음 등장하는 것도 루첸티오다.

그가 비앙카를 신부로 맞는 과정은 페트루치오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진진하다. 페트루치오가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무대포 사랑(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로지 돈과 소유욕은 아닐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노골적인데 종착력은 완벽한 사랑이다. 처음부터 사랑했고 나중에도 사랑했으니 루첸치오와 비앙카의 사랑은 해피앤딩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른 두 경쟁자를 따돌리는 술책은 칭찬받을 수 없다. 하지만 칭찬받으면서 연적을 따돌릴 수 없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이니 그를 여기를 비난하지 말자.

그럴 시간이 있다면 루첸치오의 '사랑의 기술'을 칭찬하는데 쓰자. 여성비하나 여성혐오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는 그 당시 습성을 오늘날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을 터.

1967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엘리자베스테일러 리처드 버튼 주연의 동명의 영화를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다른 어떤 책도 그렇지만 독후감만으로는 원작의 감동을 십분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로멘틱 코미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말광량이 길들이기>는 꼭 완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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