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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는 물론 색감이 뛰어난 그림을 삼촌에게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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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는 물론 색감이 뛰어난 그림을 삼촌에게서 받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27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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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관저에서의 식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늦은 점심은 식욕을 자극했다. 총독은 행여 내무대신의 아들이 만족하지 못할까 봐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호사카는 이미 어떤 경우든 이해하겠다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만사에 불만이 없었다. 일본각에서 허겁지겁 온 것이 전부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분 좋은 식사가 끝났다. 총독은 호사카와 점례를 위해 총독부 내부를 직접 안내했다. 으리으리한 궁전이 따로 없었다. 프랑스 왕가의 궁전이 부럽지 않았다. 바닥은 물론 천장까지 모든 것이 번쩍번쩍 빛나는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일행이 움직일 때마다 하인들은 감히 눈을 들지 못하고 한쪽 옆으로 비켜섰다. 점례는 그들의 모습에서 죽마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순사가 오면 하던일을 멈추고 길가에 엎드려 있던 그 시절 말이다.

점례는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우아한 표정과 걸음으로 마치 총독 부인처럼 행세했다. 누가 봐도 점례는 오늘 식사의 주인공이었다. 총독은 점례를 칭찬했다. 호사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자세였다.

'지난번 그림 전시회에 직접 가지 못해 송구합니다. 대신 신하를 시켜 몇 점을 구입했습니다. 저기 걸려 있지요. 바로 저 그림입니다.'

총독이 손가락으로 창가 쪽의 벽면을 가리켰다.

'그렇군요. 저 그림은 조선에 와서 급하게 그린 건데,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점례가 응수했다.

'저 사람이 나요. 실제보다 더 근사하지요.'

호사카가 거들었다.

'각하는 그림이나 실제나 다르지 않아요. 인자하고 다정다감하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 화나면 무척 무섭다니까요.'

점례가 손사레를 쳤다.

호사카가 웃었다.

'다음 부터는 안 그러면 모든 게 용서 됩니다.

총독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가요.'

멋 적은 듯 호사카가 뒷머리를 긁젹였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총독이 삼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향해 몸을 먼저 움직였다.

'여기서 보는 풍경이 좋아요. 조선식 한옥 건물은 서양식과 달리 곡선이 유려하지요.

'그래요?'

호사카가 관심을 보이며 창가를 바라봤다. 광화문이 보였다. 점례도 보았다. 총독 관전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저 건물도 헐고 현대식으로 지을까 해요. 쓰임새가 없거든요.'

총독 뒤에 있던 경무총감이 총독의 눈치를 보면서 한 마디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이곳에 앉아 밖을 보면 우리 일본이 조선에 대해 더 많이 도와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제 조선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지만 아직은 조선 때가 다 벗지 않았어요. 몇 개만 남겨 놓고 다 허물어야지요. 일본의 근대화된 문명을 심어 놓아야 합니다.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어요. 요즘 들어.'

총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말이요. 조선 민족은 참 게을러요. 그리고 모였다고 하면 서로 헐뜯기 일쑤지요.'

느닷업이 총독이 이 말을 하면서 총독이 점례를 힐끗 바라봤다. 의도적 이었다. 일부러 조선 여자인 점례를 노렸다. 황실과도 가깝고 일본 최고 위치에 있는 내부대신 각하의 아들이 조선여자와 함께 다니는 것이 못마땅했다.

점례는 그런 시선을 느꼈으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요. 이완용 같은 인물은 조선인들도 훌륭할 수 있다는 본보기로 삼을만 합니다. 안 그런가요?'

경무총감이 아까 한 자기 말에 총독이 호감을 느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대화에 끼어 들었다.

'조선 사람이라고 다 같은 가요. 사람은 어떤 민족도 같을 수가 없어요.'

호사카는 점례가 그런 말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보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기 문 뒤쪽에도 공간이 있나요?'

호사카가 안쪽의 비밀 공간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네 있지요. 열 면 대피할 수 있는 말하자면 비밀 아지트지요. 이곳 문은 뒤에 철이 붙어 있어 방탄 역할을 하고요. 위급할 때 이쪽에 숨어 있으면 수류탄 공격에도 안전하지요.'

총독은 자랑을 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휴의의 공격을 받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던 일년 전 일을 회상하고는 얼굴이 불거졌다.

기분 나쁜 기억을 상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는 문을 닫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호사카가 한마디 하자 멈칫했다.

'이곳이 피난처였군요. 아버지가 말한 장소가 이곳이지요?'

총독은 허를 찔린 듯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때 총독님의 의연함에 존경한다고 하셨어요. 총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올라오는 군홧발 소리에도 총독다운 태도를 잃지 않으셨다고요. 과연 전직 해군장군 다운 행동 입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때 권총이 없었어요. 있었다면 아버님을 보호하기 위해 제가 직접 총을 뽑았을 겁니다.'

총독은 부끄러워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처신을 했는지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의라는 자는 아직도 체포하지 못했다고 하니 어찌된 일인가요?'

호사카가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점례는 휴의라는 말이 나오지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글쎄 말이오. 종로서가 형편없어요. 서장을 갈아치든지 해야지 원.'

총독이 책임을 동휴에게 돌렸다.

'헌병대사령부도 책임이 있잖아요? 그리고 관저를 대비하는 총독부 수비대도 역할을 해야 하고요. 경찰에만 치안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고 말고요. 군이 나서야지요. 아직 조선은 완전히 식민지 됐다고 보기는 일러요. 99 프로는 일본에 동조하는데 나머지 1 프로가 문제입니다. 휴의가 같은 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요.'

총독이 대답이 없자 경무총감이 나섰다.

'그나저나 태평양전쟁이 승리로 마무리되면 그런 활동도 사그러들 겁니다. 일본의 위대함을 직접 보고 느꼈으니 저항은 무의미하다고 여기겠지요.'

'아마 그렇겠지요. 그런데 지금 전황은 어떤가요?'

이번에는 총독이 자신이 대답할 차례라는 것을 알고는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필리핀 해전의 손실이 커요. 미국의 공세도 거세고요.'

'러시아가 참전하면 어려워 질텐데 거기에 대한 대비책은 있나요?'

'물론 입니다.각하. 그래서 조선민들의 적극적인 참전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갈때 비서가 총독에게 귓속말을 했다. 총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았어. 가봐.'

'각하, 방금 비서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일본각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나 봐요. 경찰 한 명과 장교 한 명이 살해됐고요. 그런데 살인자가 휴의 일당이 아니고 주모였다고 하네요.'

'주모에게 당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래요?'

호사카가 반문했다.

'자세한 것은 종로서에게 파악하고 있다고 하니 곧 보고가 들어 오겠지요.'

'서장을 불러서 직접 들어보는 게 어떻까요?'

호사카가 그 자리에서 제의하자 총독은 거절하지 못했다.

삼 십 분도 안돼 동휴가 총독부로 들어왔다. 이층 원형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총독 일행은 동휴가 들어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서장 어찌 된 일인가?'

'각하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저의 경호가 완벽하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입니다.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원인은 알아야지.'

동휴는 헌병대에서 정보가 새나간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현장에서 종료된 사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빨리 총독에게 보고하다니. 믿을 놈 하나도 없다. 그는 사실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고 순간 판단했다.

머리를 굴릴 일도 아니다. 책임이라면 우리도 있지만 헌병대사령부도 자유롭지 못하다. 둘이 경비 책임을 맡았고 되레 지휘 체계는 종로서보다 헌병대사령부에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사카는 주모의 뒤에 휴의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행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점례는 동휴 얘기가 나올 때부터 휴의를 의심했다.

배후에 그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연약한 주모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시켰을까. 겨우 말단 경찰과 장교 하나로 뭐가 바뀐다고.

그리고 자신은 감쪽같이 빠져나가다니. 대범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고 점례는 생각했다. 애초 목표 였던 총독은 여기 살아있는데 조무래기 한둘을 해치는 것은 살인에 불과했다.

점례는 맞춰지지 않는 퍼즐에 당황했다. 호사카는 자리를 먼저 뜨겠다고 정중히 말했다. 내일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이런 일은 제가 끼어들 만한 사안이 아닌 것 같고요. 정치는 정말 골치아파요.'

호사카는 이야기에 쐐기를 박겠다는 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제가 너무 시간을 너무 빼았았습니다.각하 용서하십시오.'

총독이 정중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바쁜 총독님을 되레 힘들게 했습니다. 아버님께 베풀어 주신 호의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호사카는 나오면서 동휴와 아는 체를 했다. 점례는 목례를 했다. 동휴와 점례가 한동안 눈을 교환했다. 둘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 죽마을 동휴와 점례하는 것을.

동휴가 고개를 숙이며 종로서장 동휴 와타나베 입니다,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마사코에요. 점례는 조선식 이름인 점례를 일부러 뺐다. 그러면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프랑스식 인사였다. 그 순간 동휴가 빠르고 낮게 말했다.

'점례야, 나야 동휴. 휴의는 어디있니? 빨리 말해.'

뱃속이 다시 쿰틀거렸다. 메슥거워 곧 토할 것 같았다. 점례는 왼 손을 배에 갔다 댔다.

'이 개자식아, 개 보다 못한 놈. 나는 널 모른다.'

'어라, 이 년이 욕을 하네.' 

'네 놈이 우리 부모 죽였지. 네 놈 목을 내가 부러뜨리겠다.'

'무슨 여자가 그런 심한 욕을.'

'왜놈 앞잡이가 그렇게도 좋더냐.'

'네 년은? 네 년은 뭔데. 왜 놈 밑받이 주제에.'

그 순간 점례의 손이 번쩍하더니 짤싹 소리가 났다.

얼떨결에 따귀를 맞은 동휴가 아픔 때문에 손으로 그곳을 가렸다.

'도적놈, 남의 것 훔쳐 먹으니 기분 좋지?' 

'이 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점례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일이 더 커지면 자신이 불리할 것만 같았다. 동휴도 마찬가지였다. 이로울 게 없었다. 그래서 둘은 서둘러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대단한 연기자들이었다.

'예쁘게 차리고 오셨네요?'

'파리에서는 다들 이렇게 해요.'

'멋지세요. 정말로요.' 

'그렇게 보이지요? 파리지엥으로 살려면 어쩔 수 없어요.' 

저벅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경무총감이 다가왔다. 

'두 분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내 지난번 조선호텔에서 잠깐 뵌 적이 있어요.'

'무슨 얘기인지 진지하게 하네요.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이지요?'  

점례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 손을 빼면서 그럼 이만 실례하겠어요, 하고 물러났다. 

그렇게 동휴와 점례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을 때 총독은 호사카에게 따로 볼 일이 있었다.  

'각하, 잠깐만요.'

총독이 호사카의 옷 소매를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사람이 안 보이는 코너로 가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여비에 보태 쓰시지요. 작은 성의이니 사양치 마시고요.'

총독의 웃음이 턱수염 아래까지 내려와 걸쳤다. 

호사카는 주는 봉투를 받아 안 주머니에 넣었다. 

관저를 나온 호사카와 점례는 바로 인사동으로 향했다. 삼촌에게 인사를 하고 떠날 참이었다. 삼촌은 그림 몇 점을 점례에게 건넸다.

'이건 조선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화가의 그림이다. 점례도 보았겠지? 아니면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리고 이건 우리 일본 화가의 그림이다.'

쓰모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화폭에 가득 담긴 두 명의 비대한 남자가 서로를 쏘아보는 눈빛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군중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구도는 물론 색감이 뛰어났다.

'파리 화랑가에서 이런 그림에 호감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몇 점 가지고 가서 소개하면 네가 활동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점례는 황공한 듯이 그림을 받아 들었다.

'삼촌. 언제나 신경 써주니 고맙습니다. 유럽 화풍에 조금 주눅이 든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조상들의 이런 그림은 자부심을 줍니다. 더 당당히 활동할게요.'

'그러라고 그런 거야. 삼촌의 깊은 뜻은 거기에 있는 거고. 당신은 그걸 정확히 캐치했어.'

유지가 전적으로 동조한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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