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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 이원적 의료체계 새 판단 기준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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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 이원적 의료체계 새 판단 기준 제시"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2.12.2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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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두륜 변호사 "진단기기 사용 사실상 허용"..."한의사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의약뉴스] 최근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한 사건과 관련, 해당 판결이 ‘이원적 의료체계’에 대한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한 해당 판결로 인해 기존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해도 크게 책임지지 않았던 한의사들에게 ‘오진에 대한 책임’이 생겼고, 궁극적으로 한방의료행위의 모호한 개념으로 인해 한의사 정체성 혼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지난 2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최근 대법원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사건에 대해 ‘양한방으로 구분된 우리나라의 이원적 의료체계에 대한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 현두륜 변호사.
▲ 현두륜 변호사.

해당 사건은 한의사 A씨가 지난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한 것과 관련,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며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된 사건이다. 

1ㆍ2심은 A씨를 의료법 위반으로 보고 8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해당 사건에 대해 현두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의의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인지에 대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양한방 의료행위의 구분에 대해 새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현 변호사에 따르면, 과거 판례는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 주로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 이론, 원리를 응용ㆍ적용하기 위한 것이지가 핵심이었지만, 새로운 판단기준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방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돼야 한다는 것.

현 변호사는 “새로운 기준은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 의료행위 원리에 입각하거나 이를 적용,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하다는 게 명백하게 입증돼야 한다는 것으로, 기존 입장보단 넓게 보겠다는 의미”라며 “한의사가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리는 행위 자체는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한의사가 진단을 하기 위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현 변호사는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의사가 초음파진단기기를 사용한 것과 관련, 재판 도중 위헌법률심판제청한 것으로, 한방의료행위가 정의가 불분명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게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불명확하다면서 위헌을 주장했다”며 “당시 헌재는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는 명확히 구별된다면서,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서 처벌할 필요가 있고, 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헌재의 결정은 기존 기준대로 판단한 것인데, 그로부터 10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대법원이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는 게 현 변호사의 설명이다.

다만 현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로 인해 발생한 가장 큰 문제점은 한방의료행위가 무엇인지 불명확해진다는 것”이라며 “면허까지 따로 구분해놓은 양한방 이원적 의료체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로, 70년간 유지되면서 불합리한 점이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북한까지 전통적인 의학이 존재하는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이원적 체계를 갖춰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선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구분이 애매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대법원이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새롭게 한 것은 이원적 의료체계를 규정해놓은 의료법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해석을 통해 해결을 시도한 거 같다”고 전했다.

그는 “대법원의 판단 기준으로 한의사들도 초음파와 같은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진맥 등에 의존했던 한방의료행위의 개념이 의료행위와 구분이 불분명해진다”며 “이는 한의사의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의사와 같은 진단기기를 사용하고 처방하는 한의사를 환자들이 찾아갈 지에 대한 생각도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현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로 인하 한의사에게 ‘오진에 대한 책임’이 생겼다는 점과 함께, 다른 의료장비까지 확대해석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있고,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게 됐다는 기준이 세워졌지만 ‘초음파로 진단하는 게 보조적인 수단이고 진맥이 주된 진단 수단’이라는 논리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초음파를 사용해 오진을 한 한의사에겐 업무상과실치상,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법원 판결로 인해 다른 의료장비에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X-Ray나 CT, MRI 등은 의료관련 법령에 사용가능한 자격 기준이나 설치기준 등이 따로 규정돼 있으니 해당 장비들은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다”며 “기준이 따로 없는 의료기기의 경우 이번 판례를 따라갈 것이고, 어지간한 장비는 사용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2016년 치과의사 보톡스 소송과 함께 달라진 시대의 변화에 따라 판례가 달라진 것이라고 평했다.

현 변호사는 “그동안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의 직역간 다툼이나 갈등이 심하지 않았지만, 2000년 이후로 직역간 갈등이 심해지기 시작했다”며 “보톡스 시술도 예전엔 치과의사의 업무영역이 아니었지만 지난 2016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 바뀌었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초음파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의료환경이 바뀌면서 한의사와 치과의사가 조금씩 의사 영역을 침범하고 갈등이 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원적 의료체계를 규정해놓은 우리나라 의료법은 1973년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이에 따른 기존의 판단기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대법원이 이번에 판례로 보여준 것”이라며 “시대가 달라지만 입법은 못 따라가고 있으니 해석이라도 시대에 맞게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치과의사 보톡스 소송 이후,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소송까지 나왔으니 앞으로 이런 식의 새로운 판례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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