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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큰 돈을 들이고 그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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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큰 돈을 들이고 그림을 샀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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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은 총독은 기분이 언짢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돌아가라니. 이거 똥개 훈련 시키나. 그러나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속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옆자리 앉은 경무총감에게 더 그랬다. 그에게 가벼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자는 언제나 자신의 경쟁자였다.

모시는 척하지만 틈을 노려 등 뒤에 칼을 꽂을 수 있다. 배신당하는 치욕은 피하자. 그러니 높은 자리에 있는 내가 조심해야지. 내부대신의 아들에게 점수를 깎이는 행동은 어리석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언제 일러바칠 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신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자리를 오래 지키고 싶다. 한 번 더 해 먹어야지.

난 조선이 좋아. 이곳에서는 내가 왕이야, 왕. 조선왕도 나처럼 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을 거야. 내려가기 전에 행세해야 할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총독은 자신이 총독이라는 사실을 상기한 것이 무엇보다 기쁜지 넌지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조차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구나 오늘일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실정으로 들고 일어난 것도 아니잖는가. 설사 내 잘못이라고 해도 문책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호사카와도 관련이 없다. 점례 마사코의 급작스런 발작 때문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래 조선 년 하나 때문에 총독의 일정이 바뀐단 말이지. 그는 속으로 쓴 것을 삼킨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감히 조선 년 하나가 이 총독을 오라 가라 한단 말이지. 각하는 그렇다고 쳐도 조센징은 아니다. 아니 식민지 지배국의 왕이 그깟 조선 년 때문에 체면이 구기다니, 이게 대체 웬 말이냔 말이냐.

그러나 총독은 앞서도 말했지만 내심을 숨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뱃속에 칼을 품고 있으나 입으로 환심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로 총독이었다.

그답게 그는 겉으로는 쾌차하셔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하고 얼굴 가득 수심을 채웠다.

'그래 마사코 양이 위중한 모양이지요?'

'위중이라니요? 그런 말을 쓰면 안 됩니다. 아마 급체인 듯싶습니다. 젊고 건강하니 금방 털고 일어나겠지요. 각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우리도 지금 이 지경인데 말이요.'

총독이 그 말을 하고는 심했다 싶었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금세 그것을 잊었는지,

'체가 풀려 지금쯤 여기로 오는 지도 몰라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 게 도리에 맞아요.'

'그래요. 그게 옳은 말씀입니다.'

경무총감이 총독의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그때 전화가 왔고 총독은 표정을 확 바꾸었다.

'집으로 갑시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각하가 총독부로 직접 오신다고 합니다.'

'그새 병이 나은 모양이요?'

'내가 뭐랬어요? 급체라고 했지요. 병원과 가까우니 얼마 후면 도착 할거요.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요.'

총독이 일어서자 나머지 대신들도 줄줄이 밖으로 나왔다. 정오에서 15분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총독은 일본각을 나오면서 갑자기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또 한 번 치를 떨었다.

직접 와야지. 왜 장소를 바꾼단 말인가. 집에서 방금 나왔는데 집으로 다시 오라고.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내부대신만 아니라면 요절을 내고 싶었다.

각하니 참지, 참자, 참자 그는 참을 인자를 세 번 쓰면 인격자가 된다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실제로 세 번이나 그렇게 외쳤다. 그러고 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되레 기회로 삼자. 그가 하자는 대로 했으니 나에 대한 평가를 나쁘게 전하지는 않겠지. 아버지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어.

총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종로서장도 장소가 바뀐 사실을 통보받았다. 이거 미친 것 아냐. 그는 총독과는 달리 화를 냈다. 부하를 상대로 조인트를 걷어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똥개도 아니고 심부름시키는 것도 여분 수가 있지. 그도 총독처럼 똥개를 들먹였다. 대체 이거 왜 그래. 그는 서너 번 피다 만 담배를 획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침을 탁 소리가 나게 뱉어냈다.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총독과는 다른 것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자존심 같은 게 아니었다.

휴의에게 당했다는 마음이 컸다. 이 모든 것은 그자의 계획이다. 점례가 이용당하고 있다. 말이 되는가. 일개 독립군 잔당 하나가 대 일본 제국을 흔들고 있다.

혼자서라도 휴의 쯤은 스무 명이라도 당해낼 자신이 있다. 멋지게 상대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제멋대로 장소를 바꾸고 총독까지 능멸하고 있다.

아프다고? 멀쩡한 사람이 아프다고? 아침까지 잘 먹고 잘 차려입고 차에 올라타더니 그 새 아프다고. 도대체 각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점례의 연극하나 눈치채지 못한단 말인가. 뻔한 속임수에 넘어가서 이게 뭐냔 말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일선에서 최고위 작전장교를 했지.

그러나 동휴 역시 심증만 있었지 확증이 없었다. 그래서 하려다 말았던 말을 내뱉었다. 별까지 달고 말이야.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동휴는 그러나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총독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병력의 일부는 무전을 통해 총독 관저에 미치 배치했다. 의전을 차리는 총독에게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

똥줄이 타올랐다. 느긋하다가 갑자기 서두르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는 그러나 노련한 경찰답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원점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휴의가 얻는 건 뭐지? 이득을 보는 게 뭐냐고? 총독 제거가 목적이 아니었나? 장소와 일시가 노출됐는데 일부러 피했다고? 그것은 말이 아니다. 이해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 때문에 동휴는 미칠 것만 같았다. 뭐지. 이게 대체 뭐냔 말이다. 그러면? 작전 지휘자가 휴의가 아니면 점례? 점례가 지휘했나.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총독부 습격인가. 아냐, 아냐, 이내 동휴는 머리를 세게 저었다. 이건 불가능하다. 총독부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입구부터 검문이고 안면이 확인되지 않은 자는 근처에는 얼씬도 못한다. 그러면, 이동 중에 저격하나. 헛발질 때문에 화가 난 그는 새로운 것을 찾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한 대 쥐어 박고는 그래, 그거다하고 소리쳤다.

동휴는 자신이 총독 옆에 바짝 붙어서 근접 경호를 하기로 했다. 날센 부하 서너 명을 앞뒤로 붙이고서는 총구를 길게 창문 앞으로 뺐다. 휴의에게 사전 경고를 하는 것이다.

삼엄하게 하고 있으니 섣불리 수작질에 나서지 말라는 위협시위였다. 말썽없이 총독부까지모셔야 한다. 이동중에 일어난 일은 자신의 책임이다.

'종로서가 경호를 철저히 하는 군요.'

먼저 총구를 발견한 경무총감이 한 마디했다. 총독이 뒤 돌아 봤다. 먼지를 일으키며 종로서 마크를 단 서장의 차가 따라 붙었다.

'에이, 저 놈도 조센징이지.'

'예, 그렇습니다.'

'먼지를 왜 날리고 지날이야.'

'그러게요. 아마도 총독님 신변을 걱정하는가 봅니다.'

경무총감이 입에 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성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신변이라고? 아마 제 놈 출세를 위해 그러겠지.'

'그렇긴 합니다만. 하지만 종로서장은 정신은 투철해요. 우리 일본인 보다 더 일본을 위하는 애국자가 틀림없어요.'

'내 기분이 상했는데 그 놈을 두둔하는 거요?'

'아니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건 나도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왠지 오늘은 영 기분이 잡치고 있어요. 종로서 때문에 일이 틀어진 것 같단 말이오. 그래서 인지 다 꼴이 보고 싶지 않네요.'

옆자리에 앉은 경무총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마 마사코양의 병원행 때문에 일이 어긋나지만 않았어도 그러지는 않았을텐데요, 하면서 비위를 맞추었다.

'그래요, 바로 그거요. 엥 조센징이란.'

총독은 속마을 들켰다. 그걸 알고는 바로 '아니 마사코양 때문은 아니요. 경무총감도 알지요? 내가 마카코양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는지.'

'네 그러믄요.'

그가 정색을 하면서 공손히 말했다.

'마사코 양은 우리 일본의 자랑이요. 파리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잖아요?' 

'총독부 정면에 걸린 그림도 마사코 양의 작품입니다.'

'내가 그걸 왜 모르겠소?' 

총독이 퉁명스럽게 받았다.

'저 넘 저러다가 우리한테 총쏠라.'

총독은 튀어나온 총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런 말을 했으나 집어넣으라고 명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난번 전시회때 내가 작품을 사지 않았소?'

그건 몰랐다는 듯이 경무총감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 큰 돈을 썼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아니 그보다 거 차기가 있단 말이요, 내 말 알아듣겠소?'

총독이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혹시 남은 그림이 있으면 저도 하나 장만 하고 싶어요.'

실수를 만회라도 하듯이 경무총감이 말했다.

'다 팔렸소. 한 발 늦었어요.'

경무총감이 머쓱한 듯이 손을 긁적였다.

총독은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정말로 우러나오는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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