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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을 그는 마치 하늘에 닿기라도 하듯이 뛰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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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을 그는 마치 하늘에 닿기라도 하듯이 뛰어 올랐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2.02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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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보여줘 봐요.'

점례가 약간은 뾰루뚱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듯한 손짓을 했다.

'아직은 아니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거든.'

유지는 점례가 실망한 표정을 보이지 실수한 것을 알아 차렸다.

'거칠어. 전혀 정리가 안됐어. 당신이 보면 웃을 거야.'

그래서 이렇게 달랬다. 자신은 달래려고 한 말이었으나 점례는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럴리가요. 아니면 말로 좀 설명해 줘요.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것도 어려워.'

'피, 당신은 내 것 다 보잖아요.'

'그림? 그림은 완성품이지. 누구나 보잖아. 나 말고도.'

'미완성도 슬쩍슬쩍 보잖아요. 안 보는 척 하면서요. 그리고는 한 마디 하잖아요.'

'좋았어. 이 정도면 최고야.'

유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요. 당신 작품 최고야. 인류를 구원하는데 도움이 될거야. 이런 식의 칭찬을 하고 싶어요. 칭찬은 아마 틀림없이 당신을 춤추게 할 거고요.'

유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커피 먹으러 가자. 거기서 좀 더 하자. 매듭지어야지. 이렇게 대충 끝내고 당신은 화실로 가고 나는 나의 아지트로 가면 속이 거북해.

'맞아요. 그렇게 해요.'

'당신은 강한 여자니 쓱쓱 그려 내겠지만 난 아니거든. 쓰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아.'

'알지요. 내가 왜 모르겠어요. 당신은 한 시간만에 편지를 썼지만 전 밤새웠다고요.'

'그런가, 일단 커피를 먹자. 내가 원고를 보여줄지 말지 커피를 먹으면서 생각하지. 달라질지도 모르잖아, 아닐지도 모르고.'

'두 잔 먹고 밤에 잠이 안 오면 당신이 책임져요.'

유지가 남자다운 웃음을 지으면서 오케이 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오후의 햇살은 따스했다. 밖으로 나온 점례는 핸드백을 앞뒤로 흔들면서 앞서 갔다. 세상에 막 나온 토끼가 엄마를 따라 깡총깡총 걷는 모습을 닮았다. 

'저런 여자가 어떻게 내게 왔지.'

유지는 순간적으로 점례에 대해 동지이상의 애정을 느꼈다. 끝까지 가야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발동했다. 그저 핸드백을 흔들면서 갔을 뿐인데 유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점례에 대한 신뢰가 더해졌다.

그녀는 뒤돌아 보았다. 유지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말 알아요? 가을 햇살에 딸 내보내고 봄 햇살에 며느리 내보낸다. 당신이 애타게 원하는 조선 속담이지요.'

유지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딸과 며느리를 차별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뭐지? 정말 몰라? 빨리 말해줘.'

유지가 보챘다.

그는 사색가다. 몽상가이면서 묻기를 좋아한다. 그의 입은 언제나 물음표를 달고 있다. 작가에 딱 어울리는 성격이다. 이 순간 점례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 아니죠? 말하는 게 갑자기 귀찮아진 거에요? 그래서 무식한 척하는 거지요?'

유지가 손사래를 쳤다.

'제대로 알고 싶어서 묻는 거야. 진짜라고.'

그러면서 무안했던지 유지가 말을 더듬었다. 불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처럼 행동했다.

점례는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햇볕이 그만큼 여자 피부에 좋다는 말이에요. 반대로 봄볕은 그렇지 않고요.'

유지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지나가는 금발 머리의 남녀가 그런 유지를 힐끗힐끗 보면서 지나쳤다.

'내가 지나쳤나? 지나치게 웃었지?'

유지가 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지요?'

'어, 작가 모임에서 알아둔 장소가 있어. 위고나 모파상이 즐겨 갔던 곳이라고 하더군.'

'좋아요. 그런 장소라면 기를 받을만 하지요.'

유지는 다가와 점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점례는 자신의 겉옷 주머니 속에 넣었다. 작은 주머니 안에서 두 손이 서로 어울렸다.

점례는 행복했다. 자신의 몸속에 있는 병들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수다를 떨어야 해. 말을 뱉어내야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점례는 그때 도를 깨치는 스님처럼 깨닫았다.

발걸음이 상쾌했다. 이런 식이라면 종일 걸어도 종아리에 붓기 대신 잔 근육만 생길 것 같았다. 배우러 가는 길, 무언가 알기 위해 학교로 가는 길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점례는 주변을 열심히 살폈다.

폐허의 건물은 철거되고 있었다. 먼지가 일었고 두 사람은 자리를 얼른 피했다. 복구의 속도는 느렸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복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은 사라지고 대신 희망의 노래가 울리고 있다.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상하지 않은 상점은 활기찼다.

'여보 저기 들어가 볼까요? 당신 신발이 닿았잖아요? 회색 바지에 갈색 구두가 어울리겠죠.'

느닷없는 제의에 유지는 끌려가듯이 매장으로 들어갔다.

유지는 아직 그럴마음이 없었지만 점례가 사주는 신발로 갈아 신었다. 예술가들이 사치하는 모습을 유지는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도 검소하게 생활하려고 했고 특히 작가 모임 등에는 일부러 헐한 옷차림을 즐겼다.

뒷축이 단 구두를 신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울려요. 당신한테 딱이에요. 안성맞춤입니다.'

'안성막춤?'

유지가 이번에는 묻지 않고 그대로 따라했다.

'안성막춤이 아니고요. 안성맞춤. 아, 이거요. 짐작한데로 역시 조선 속담입니다. 딱 들어 맞는 다는 뜻이죠.'

점례는 더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 지칠지도 모른다. 호기심을 뛰어넘으면 그 다음은 무관심이 될 수 있다. 

점례가 유지의 뒤쪽으로 돌아가서 갈색 빛이 도는 구두를 살피면서 가볍게 손을 들었다. 정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7살 무렵 설 명절 때 받은 선물 같았다. 그 기분을 그녀는 똑같이 느꼈다. 이번에는 자신이 아닌 유지를 통해서였다.

지갑을 열고 점례는 돈을 치렀다. 그 돈은 어디서 난 건지 유지가 궁금해 할 수 있다. 돈에 관해서는 그는 지금껏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무언가를 사려고 하면 돈은 항상 그 이상으로 있었기에 유지는 한 번도 생활을 걱정하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큰 돈이 들어가는 것은 파리 일본영사관이 알아서 다 해줬다.

'지난 번 그림 팔았다고 했잖아요. 그것으로 샀어요.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판 건데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어요. 신발을 신고 열심히 걷고 열심히 쓰고 열심히 운동하라고요.'

조금 우쭐한 기분이 든 점례가 이렇게 말했다. 남의 돈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 이었다. 유지가 말했다. 

'나도 질 수가 없지. 사랑이라면. 당신 머리에 딱맞는 모자를 사줄게.'

'당신 책 아직 안 나온 거 아시죠? 선인세를 받은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뒤로 미뤄요.'

'아냐, 아니야. 대박날 거야. 미리 가불을 한 셈으로 치지. 여기 출판사도 가불로 작가를 미리 잡아 두거든.'

이번에는 유지가 잡아 끌었다.

'파리지엥이야, 당신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점례를 보면서 유지는 만족했다.

'새 신을 신었으니 당신은 하늘을 향해 팔짝 뛰어요. 나는 모자를 잡고 뒤따를 게요.'

정말로 유지는 점례의 말을 따라했다. 마치 춤을 추듯이 위로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하늘에 닿겠다는 듯이 다리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가볍게 달렸다. 골목길이 이리 저리 지나갔다. 점례가 행여 놓칠세라 한 손으로 모자를 꾹 누르고 따랐다.

'늙어서도 우리가 이렇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찻잔을 두 손에 잡고 점례가 말했다.

'안될 것도 없지. 하지만 당신은 평생 늙지 않을 거야. 윤기나는 검은 머리에 흰머리는 상상이 안돼.'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점례가 커피잔을 마치 술잔 처럼 치켜들었다.

'그건 또 뭔 소리?'

유지가 놀란 척 물었다.

'설마 그것도 조선 속담인가?'

'맞아요. 조선속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해로 하면서 부부가 살자는 의미에요.'

'참 조선은 신비한 나라야. 비유가 대단해.'

유지가 감탄사를 쏟아냈다. 

'난 흰머린 참을 수 있어요. 대신 머리는 빠지지 마요. 난 대머리가 싫어요.'

'우리 아버지 보면 나도 그러지 않을까?

유지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 정도라면 봐줄만 해요. 스님처럼 대머리가 되면 난 울거에요.'

점례가 그 말을 하고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울어. 울면 어린애가 되겠지. 다시 젊어지는 거야.'

유지도 점례처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음미하듯이 한 모금 마셨다.

'바디감이 좋아. 묵직해. 나는 술도 그렇고 커피도 그렇고 이런 힘찬 맛을 내는 것이 좋거든.'

'저는 부드러운게 좋아요. 부드럽고 포근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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