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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당신으로부터 분리하지 말라고 점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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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당신으로부터 분리하지 말라고 점례는 말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10.27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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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와 점례의 파리 유학 생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초기 어려움은 파리 주재 일본 영사관의 도움으로 해결됐다.

참의원은 아들의 파리 유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한 후에는 뒷바라지에 열을 올렸다. 모든 편의는 아버지 참의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리 중심에 집을 사고 그곳 화가들과 연결하는 것도 다 부친의 지시를 받은 영사관이 발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은 그러지 아버지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특히 점례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자신을 가볍게 두지 않았다. 참고서도 없이 프랑스 말을 외웠고 마구잡이로 익혔다. 배우는 속도는 유지보다 빨라 유지가 점례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ㄴ했다.

'너는 정말 남달라, 점례 마사코.'

'뭐예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요.'

점례가 눈을 약간 흘기면서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는 창씨개명같은 것은 안해도 되잖아.'

'좋아요, 아무렇게나 불러요. 저는 점례도 좋고 점례 마사코도 괜찮아요. 당신이 부르면 나는 언제나 달려 갑니다.'

점례가 뒷말을 하면서 노래 부르듯이 콧소리로 말했다.

유지는 그런 점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를 익히면서 점례는 자신만의 화풍을 다듬어 갔다. 프랑스인과 스스럼 없이 소통이 가능해지면서부터는 직접 화랑가를 돌며 잘나가는 화가들과 교류에 나섰다.

어려운 문제는 영사관이 해결했다. 파리 화랑가는 일본에서 온 젊은 부부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곳 미술잡지는 표지에 유지와 점례의 사진을 박고 무려 3페이지에 걸쳐 그림과 그들의 일상을 스케치했다.

불과 일 년 만에 둘은 프랑스의 미술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일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큰 대회에서 수상해야 한다.

그러나 첫번째 시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낙선작 가운데 우수 작품으로 뽑히기는 했지만 점례와 유지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고군분투했다.

점례는 어떻게 화면 대회에 수상하는지 수상작품들을 연구했다. 모방을 통한 창조의 길로 나가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는 다작보다는 서너 작품에 집중했다. 전쟁은 좋은 소재였다.

처음에는 일본 찬양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가 손가락질만 받았다. 여기서는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방향을 틀어 점례는 평화를 그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실제로도 그와 맞았다.

화풍과 그림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유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 무렵 일본에서 편지가 왔다. 아버지는 길고 긴 편지를 통해 외동아들에 대한 사랑을 실었다.

유지는 편지를 읽으면서 부모 이긴 자식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버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는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다 읽고 나서 점례를 불렀다.

'여기와서 봐요. 아버지 편지야.'

점례가 다가왔다. 그러나 점례는 유지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 읽기보다는 유지에게 온 편지가 읽어도 되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한테 온 편지잖아요. 부자간에 사적이 대화도 있을 수 있는데 읽기가 좀 그래요.'

'아냐, 괜찮아. 우리 사이에 그런 벽은 없어.'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요.'

점례는 처음으로 우리 사이에 대해 유지 호사카에게 물었다. 어떤 금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둘은 늘 함께 했지만 결혼이나 부부나 하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었다.

공식적으로는 부부였으나 실제로는 그런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잡지에서 부부라고 호칭을 꺼냈을 때 둘은 어찌된 영문이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다정한 웃음과 함께 손을 잡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날려 버렸다.

과거를 알고 있는 유지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두 사람은 감히 혼인을 꺼내지 못했다. 조선에서도 파리에서도 어쩡쩡한 상태였다.

아마 유지가 먼저 말을 했다면 점례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단호히 자신을 입장을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유지는 한 번도 정말로 단 한 번도 그런 대화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점례는 마음에 걸렸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거부하더라도 그런 제의를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점례는 그러나 그 질문을 한 것을 곧 후회했다. 유지와 자신이 어떤 사이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신뢰하고 서로 밀고 도와주는 관계가 아닌가.

일상을 부부처럼 지낸다고 해서 다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니잖는가.

'점례는 아녜요, 그냥 해본 소리예요. 읽어 볼게요.'

그는 잡은 편지를 눈 가까이로 가져갔다.

유지는 점례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곧 우리 사이에 대해 내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 편지는 그 다음에 읽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점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냥 해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유지는 끝내 말했다.

'우리는 동지 사이야. 동지. 어때? 괜찮아.'

점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너는 내 하녀라거나 식모라고 불렀어도 할 말이 없었다. 첩이라고 했어도 점례는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지 호사카는 그런 식의 저질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동지라는 말로 점례를 안심시켰고 자신도 인격을 유지했다. 점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이 아니면 어떤가, 부인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점례는 안면에 작은 미소지었다. 한 걸음 앞으로 간 점례는 유지를 가볍게 안았다.

'고마워요. 동지, 나의 동지. 부인보다도 마음에 드는 호칭입니다.'

떨어진 점례는 편지를 쭉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은 어쩌면 자신과 연관된 일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편지에는 뜻밖에도 동휴의 이름이 언급돼 있었다. 휴의도 나왔다. 동명이인 일수 있지만 점례는 동휴가 그 동휴이고 휴의가 그 휴의라는데 의심을 품지 않았다. 두 명의 같은 이름이 동시에 나올 수는 없었다.

순사였다가 군인이었다가 종로경찰서장이 된 동휴. 군인이었다가 독립군이 된 휴의. 휴의 나의 휴의, 그는 내 사랑이다. 점례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들키지 않기 위해 편지를 더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종로서가 네 삼촌이 운영하는 화방을 급습해 삼촌을 연행해갔다. 곧 풀려났지만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서장도 삼촌이 나의 동생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

용서할 수 없어 바로 파면하고 체포할 계획이었으나 조선헌병대사령관이 총독에게 미리 손을 써 어쩔 수 없었다. 사령관에 따르면 조선독립군이 총독관저를 습격할 때 총독과 나를 살려낸 생명의 은인이었구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일은 되풀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휴의라는 독립군이 삼촌이 운영하는 화방을 드나들었다는 이유를 대고 있는데 그 휴의가 이번에 관저를 습격한 대장 가운데 한 명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조선인들은 은혜를 모르는 경우가 종종있다. 너도 그것을 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편지는 일본 정치로 넘어갔다.

'전세는 우리가 이긴다고는 하지만 어렵다. 일단 나는 천황의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만약이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전쟁에서 패하면 그 책임은 오로지 군부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천황은 아무 잘못이 없다. 도조 히데끼 등 군부는 몸은 있어도 머리는 제대로 달고 있지 못하다. 유리한 전세를 늘 불리하게 끌고 간다. 미국의 본토 공격에 이른 또 다른 공격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한 몸으로 천황을 모시고 충성을 맹세하고 모든 책임은 군부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점례는 뒷장의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것은 편지 내용에 대해 유지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토론할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편지를 내밀면서 점례는 아버지를 위해 우리가 돕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만 아니었어도 당신이 일본에서 아버지를 돕고 있었을 텐데요. 미안해요. 힘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고 있어요.'

'아냐 점례, 당신은 늘 나의 원군이오. 혹 아버지가 조선인에 대해 불쾌한 언급을 했다면 이해하시오.'

'난 이제 조선인이 아닙니다. 당신의 동지는 일본인이에요.'

점례는 그 말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몸은 조선인이지만 정신은 일본이라고요. 나를 당신으로부터 분리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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