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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해결책이 없자 동휴는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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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해결책이 없자 동휴는 초조해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6.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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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순사부장의 모욕적 언사로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동휴는 어떤 식으로든 사적 복수를 하고 싶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경부인 자기에게 대든 것은 조선인이라고 깔본 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순사부장이 경부인 동휴를 견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되레 그 반대 상황으로 동휴를 친형처럼 따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둘이 만들어 가는 화음이 제대로 맞았다. 어떤 때는 형제애를 느낄 정도였다. 동휴가 그를 친동생처럼 아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신뢰가 배신으로 변하면 애초부터 없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동휴는 순사부장을 예전으로 돌리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까이 두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이 떠난 그는 동휴의 자리를 탐냈다.

오리지널 일본인이 짜가 일본인보다 지위가 낮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나이도 겨우 한 살 차이고 순사에 입문한 경력도 그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런데 동휴는 조센징 주제에 자신보다 두 계급이나 높았다. 순사부장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수시로 동료나 부하들 앞에서 불만을 드러냈다. 동휴의 상관인 경시정은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어떤 경우는 부추키는 언사를 했다. 둘을 경쟁시켜 미묘한 상황을 즐기면서 충성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또다른 한편에서는 특진을 거듭하는 동휴가 자신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기회를 봐서 아예 싹을 잘라야 한다고 경시정은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순사부장은 적절한 기회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현장 책임자가 사태를 잘못 파악해 범인을 놓친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순간 꼭지가 돌아 상관에게 대들 수 있는 것이다.

준비한 기간이 길고 잡을 확률이 높은데 실패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극히 예외적일 때만 허용돼야 맞다.

그런데 기미타 순사부장의 태도는 이와는 달리 작정하고 벌인 하극상이었다. 동휴는 그자를 처치하든지 옷을 벗기지 못한다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조선대 일본의 싸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신은 내선일체 이전에도 이미 뼛속까지 일본인인데 조선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노력이나 능력면에서 동휴는 조선 최고의 경찰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공훈을 세운이도 드물었다. 불과 5년 만에 남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경부의 자리를 꿰찬 것은 오로지 동휴의 능력과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경찰의 최고 우두머리 경시감이 그가 최종적으로 올라가야 하는 사다리였다.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 이제 겨우 순사부장이라는 놈이 태클을 강하게 걸었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었다. 그 모습을 휘하의 30여명 순사들이 다 지켜 보았다. 경부의 체면이 이만저만 깎인 것이 아니다.

상사도 있었다. 경시정은 순사부장에게 당하는 경부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자기 의자에 앉은 동휴는 속에서 불길이 끓어 올랐다.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올라와 당장이라도 목울대를 타고 넘어올 것만 같았다.

지체없이 일본도로 놈의 목을 치고 싶었다. 작전 중이라면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처형도 가능했다.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고 지휘봉으로 책상을 치던 동휴는 무슨 좋은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경시정의 방문을 노크했다.

그는 정중하게 두 다리를 모으고 경례를 척하고 올려붙였다.

‘순사부장을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회초리를 들게 해주세요.’

‘그건 경부가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사적 처벌이 아닌 공식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놈에게 상관 모욕죄로 일 계급 강들을 청합니다.’

경부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구두경고나 감봉 삼 개월도 아니고 계급강등은 지금 같은 전시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그건 자네 책임도 있어.’

경부가 목소리를 높였다.

‘휴의를 봐준 것 아닌가. 동네 친구라고 일부러 그런 거야?’

동휴는 어이가 없었다. 어릴적 친구인 것은 맞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되레 자기 손으로 잡아 변절의 이유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휴의가 덫에서 빠져나간 것은 경부 책임이 아니라 순사부장 책임입니다. 경시정께서도 상황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도주로를 확실히 명기했고 그곳 담당은 순사부장 구역입니다. 책임은 그에게 있는데 왜 제가 지고 모욕을 당해야 하지요.’

경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동휴를 쳐다봤다. 조선 놈 주제에 봐주니까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네 하는 못마땅한 태도였다.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네 놈은 태생이 조센징이야, 그런 말투를 내고 싶어하는 눈치를 애써 참았다. 경시정이 입안에서 혀를 이리저리 굴렸다. 하마터면 조센징 놈이 어디서 까불어 하고 소리 칠 뻔 했다.

그러나 경시정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동휴의 자존심은 바닥을 긁었다. 심해지면 좋을 게 없다. 당장 독립군이 만주에서 신의주로 잠입했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들은 일망타진하는데 동휴만한 인물이 없었다. 조선인의 속셈은 조선인이 안다고 그가 작전을 짜고 계획을 세우면 대개는 맞아떨어졌다.

경시정은 자기 책임하에 있는 부서에서 전과를 올리면 자신의 승진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를리 없었다. 그도 경시총감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적절한 선에서 동휴를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경부 생각은 어떤까.’

‘강등이 어렵다면 순사 모두를 연병장에 집합시켜 놓고 순사부장이 제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면 됩니다.’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그렇습니다.’

경시정은 난감했다.

‘아냐, 경고하고 감봉하겠네.’

동휴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대접이라면 차라리 뛰쳐 나가고 싶었다. 처음으로 휴의가 배신했을 때의 심정이 이런 유의 것은 아닌가 느낌이 들었다.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다.

‘나가봐.’

경시정이 한마디 하고 회전의자를 돌렸다.

그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두 계급이나 위인 내게 이번 작전의 책임은 경부에게 있다고, 그러니 책임을 지라고 되레 나에게 덮어씌웠다. 동휴는 아직도 그 일이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기나 한 듯이 인상을 치푸렸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있던 경시정은 제지하지 않았다. 순사들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모두 자기에게 눈길을 돌렸고 동휴는 순간적으로 대응할 기회를 놓쳤다.

‘지휘체계가 엉망이다.’

동휴는 경찰서 바닥에 침을 탁, 하고 뱉었다. 사적 보복을 해서 없애 버릴까, 아니면 이번에는 참고 넘어갈까. 동휴는 둘 중의 하나를 오늘 중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하나를 매듭지어야 다른 것으로 향하는 그의 성격은 오후 6시까지로 결정을 하기로 대못 박았다.

그는 결정의 첫째 조건으로 자신의 안전을 꼽았다. 어떻게 입은 제복인데 벗는다는 것은 꿈에서라도 생각하지 말자고 동휴는 이를 깨물었다.

다음으로는 경시총감으로 가는 길목에서 순사부장의 처리가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어떤 굴욕이라도 참아내야 한다.

다음으로는 조선인이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차별은 나쁜 것이다. 동휴는 심복 하나를 불러들였다. 일본인이었다.

일본 건달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조선 땅으로 들어온 자였다. 출신 성분이 천하고 무식했다. 그러나 출세욕은 대단했다. 그는 동휴를 롤 모델로 삼았다.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은 자신의 출신 성분과 비교됐으며 충성심과 지칠 줄 모르는 노력도 닮았다.

‘저 조센징이, 키가 나보다 크고 구부정한 저놈이 나의 스승이다.’

그는 아침에 눈 뜨면 그 말을 세 번 외쳤고 잠자리에서도 똑같이 세번 외쳤다. 동휴가 부르자 말단 순사인 그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내가 당한 수치를 알고 있느냐.’

‘네, 그럴 모를리 있겠습니까.’

‘왜 가만히 있었느냐, 일본인이라서 그랬느냐.’

‘천만에요, 손가락은 권총을 잡고 있었으나 탄창은 서랍 안에 있었고요. 일본도는 허리춤에 없었습니다.’

‘죽이려고 했느냐.’

‘하이.’

순사는 낭랑한 일본어 목소리와 동시에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순사부장이 감히 경부에게 책임을 지라고 삿대질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순사들이 다 모인 장소에서요. 불경한 짓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받은 것의 열 배로 돌려줘야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쥐도 새도 없이 죽여 버리려고요.’

동휴는 어이가 없었다. 단순 무식한 놈의 머리가 이 정도였다. 순사부장이 저격을 당하거나 총상으로 죽는다면 범인은 당연히 경부에게로 쏠릴 것이다.현장을 목격한 자가 나타나도 사주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뻔한 이치다.

‘아니다, 그만 둬라.’

‘너는 아직 쓸모가 많으니 몸을 아껴야 한다.’

동휴는 순사를 돌려보냈다. 서운하지 않게 다독인 것은 잘한 일이었다. 무모한 짓이라고 혼내지 않은 것은 건달출신이 갖는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오후가 되면서 동휴는 초조해졌다.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너무 쉽게 벌어졌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시정의 방으로 향하던 동휴와 순사부장이 복도에서 마주쳤다.

순사부장은 한 쪽으로 비켜섰으나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가에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동휴의 인내에 한계가 왔다. 마침 일본도를 차고 있던 그는 칼을 뽑았다.

‘너를 즉결 심판하겠다. 죄목은 상관 모욕죄와 상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죄.’

동휴가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경시정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고 있을 때 동휴의 장검이 순사부장의 머리 쪽으로 날았다.

악,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순사부장의 목이 복도로 떨어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사부장은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임무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몸에서 분리된 머리로부터 자신이 죽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시정이 무슨 소란인가 하고 확인하기 위해 자기 방문을 열고 나오다 쓰러지는 자의 몸을 부지불식간에 부축했다. 그 순간 목에서 나온 피가 경시정의 얼굴에 쏟아졌다.

에잇, 그는 부하의 머리라는 것도 잊고 자신이 받쳐 든 것을 바닥에 버리고 자신의 얼굴부터 먼저 손등으로 닦았다.

그러면서 여전히 칼을 들고 적에게 대들듯이 아니면 방어 할 듯한 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경부와 눈이 마주쳤다.

‘저놈이 나까지.’

그러나 경시정은 그가 칼을 칼집에 꽂고 경례를 올려붙이는 것을 보자 권총집을 향해 오른쪽으로 갔던 손을 제자리로 돌렸다.

‘즉결 심판,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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