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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한약사회와 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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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한약사회와 백조의 호수
  • 의약뉴스 이찬종 기자
  • 승인 2022.06.22 0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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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1982년 11월 10일, 소련의 1인자였던 브리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사망했다.

이날 소련 국영TV 방송국들은 속보로 1인자의 사망을 알리는 대신 3시간 동안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전체를 방송했다.

국민들의 시선을 1인자의 사망에서 발레 공연으로 돌려 시간을 벌기 위한 소련 지도부의 의도였다.

이후 소련과 러시아에서는 TV에서 백조의 호수를 방영하는 것이 곧 정치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졌음을 의미하게 됐다.

약사사회에서도 화상투약기 시범사업 승인이라는 큰 사건을 맞이하기 전 회원들에게 이른바 백조의 호수가 방영됐다.

지난 4월 21일, 화상투약기 시범사업 3차 조정 회의에 참여했던 약사회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약사회가 회의에서 화상투약기의 문제점을 제시하며 규제특례가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 상정이 유력해졌기 때문이다.

빠르면 5월 초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새 정부 출범과 관련 부처 장관들의 교체로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다.

덕분에 4월 21일 회의 이후 화상투약기 시범사업의 승인까지 대한약사회 집행부에는 2개월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이 기간 집행부는 단 한 차례도 시범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 기간 약사회 집행부가 브리핑 시간을 통해 발표한 주제들은 지방선거에 맞춘 정책건의서 전달, 유튜브와 함께하는 약사 크리에이터 양성, 전자처방전 협의체 진행상황, 원스톱 회원민원 콜센터 운영 등이었다.

화상투약기 시범사업 저지에 회원들의 힘을 모을 수도 있었지만, 약사회 집행부에 부담이 가지 않는 주제들을 언론에 전달하며 현안에 대한 궁금증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2개월 동안 약사회 집행부는 비대위를 결성하고 비대면 진료와 화상투약기 도입에 반대하는 규탄 대회를 열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안에 대응하고 있는지는 말을 아꼈다.

집행부의 긴 침묵 속에 회원들이 처음으로 화상투약기 시범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5월 말에 열린 대한약사회 전국 임원ㆍ분회장 워크숍이었다.

이날 약사회는 약 20분 동안 화상투약기 시범사업 진행 상황을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화상투약기 시범사업 진행 상황은 일선 약사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심의위원회 개최가 일주일 남은 지난 13일에서야 표결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약사회 임원들이 1인 시위에 돌입하고, 1000여명의 약사가 거리로 나섰지만 결국 여론을 바꾸지 못한 채 화상투약기 시범사업이 통과됐다.

소통과 열린 회무를 강조하며 출범했던 집행부라면 회원들에게 백조의 호수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을 보여줬어야 한다.

더 치열하게 화상투약기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약사들에게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알렸어야 했다.

앞으로도 대한약사회가 넘어야 파도가 적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백조의 호수로 회원들의 시선을 돌릴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회원들과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행부만 홀로 현안에 맞서는 것이 아닌 회원과 함께 싸울 수 있고, 항상 부르짖는 약사직능의 힘을 정부에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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