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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6:02 (금)
자신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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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3.03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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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하찮은 존재였다. 공짜로 누구나 가질수 있는 버려진 물건이었다. 용희는 스스로 무너졌다. 고민 같은 것은 사라졌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따지고 재고 할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무기력이 정신이 지배했다. 몸은 스펀지처럼 축 처졌다. 길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비가 쏟아졌다. 이곳의 비는 무자비했다.

내리기 시작하면 죽죽 내렸고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이런 비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뭐든 처음이 두렵듯이 용희도 또 다른 공포에 몸을 사렸다. 포 소리인지 천둥소리인지도 시도 때도 없이 쿵꽝거렸다.

도무지 멈추는 것이 이곳에서는 없었다. 쉬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자 용희는 절망했다.

조명탄과 번개는 구분되지 않았다. 서쪽 하늘 아래서 번쩍이다가 어느 새 동쪽으로 북쪽으로 이동해 하늘을 갈라놓았다. 용희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었다. 그럴거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자신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순전히 의지대로 할 수만 있다면 백번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때는 정말 그러려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러면 얼굴이며 목이며 손등에 붙은 모기도 놀라 날아갔다. 이곳의 모기는 고향의 모기와는 달랐다. 너무 많기도 했고 너무 크고 너무 아팠다. 모기 때문에도 제명에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용희는 문을 열었다. 밖을 보는 것이 두려웠으나 어디서 그런 마음이 나왔는지 용희는 막사를 벗어나 비 오는 거리를 조금 걸었다. 혼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먼 해변까지 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길로 가는 곳까지는 갈 수 있었다. 맑게 개인날에 조선에서 온 여자 셋이서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경험이 있어 안심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때는 멀리 여기저기 떠 있는 섬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먹장구름에 가렸고 대기는 온통 안개에 덮여 있었다.

뜨겁고 습한 기운이 그러잖아도 지친 몸을 더 지치게 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용희는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주저앉았다. 굵은 빗방울이 아프리만치 용희를 내리쳤다.

그녀는 조금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순간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도 있었다. 조용하고 억눌려 있던 것이 폭탄처럼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곳의 모든 질서 있고 체계적인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한마디로 용희 내부에 숨겨진 어떤 알 수 없는 힘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여기를 나가자. 죽음의 순간에 용희는 삶을 보았다. 퍼붓는 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져 내렸다. 어떤 알 수 없는 환희 같은 것이 몰려왔다.

그래 내려라. 계속 내려라. 섬까지 잠겨 버려라. 차마 눈뜨고볼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용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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