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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2012)- 이유 있는 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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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2012)- 이유 있는 반항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2.28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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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사람은 돌아버리기 마련이다. 이때 이성은 가고 감정만 남는다. 물불 가리지 않는 상태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일 많다고 제발 ‘꼭지만을 돌지 말라’고 간청하는 수가 생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극적으로 상황이 반전되기도 한다.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라면 한 번 돈 꼭지는 돌아오기는커녕 되레 더 돌기 마련이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기 집 샤워실에서 정사를 벌인다.

교사 팻(브래들리 쿠퍼)은 그곳으로 가기 전에 이미 여기 저기 널린 리키의 속옷을 보고 괜히 설렌다. 샤워실에서는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에 들떠있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돌아간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진짜로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동료 교사가 아내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그 짓을 실제로 하고 있다.

팻은 바로 꼭지가 돌았다. 속된말로 ‘빡쳐서’ 죽을 지경이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면 다행이다.

동료 교사에게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잘못했다고 한 번 만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는 일이다.

아니면 대가를 제공하겠다면서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상응한 적절한 말을 꺼냈어야 했다.

아내의 남자는 팻의 이런 기대를 깡그리 무시했다.

그는 팻을 보고 ‘나가 있어’, 혹은 ‘꺼져 줄래’, 하면서 하던 일 마저 끝내는데 방해된다는 듯이 시답지 않은 말로 팻의 꼭지를 제자리에 놓기는커녕 아예 180 돌려 버렸다.

돈 꼭지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믿었던 아내였기에 상황은 더 심각했다. 팻은 무려 8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피해자는 팻인데 너무했다. 그러면 아내의 남자는 어떻게 됐느냐고. 그것은 필자도 모른다.)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심한 감정 기복에 피해 망상에 사로 잡혔다. 퇴원해서도 마찬가지다.

집이 좀 편안하면 그나마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 로버트 드니로)는 도박 중독자다. 풋볼 팀 필라델피아 이글스 ‘광 팬’인데 내기 도박으로 준비한 식당 개업 할 돈을 몽땅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다행인 것은 팻은 여전히 리키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에서 가장 예쁘다나, 마음도 천사같이 곱고 세상에서 가장 바른 사람 이라나.( 그런데 왜 바람을? 이런 의문은 영화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피하자.)

그는 리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살찐 몸을 근육질 몸으로 다듬기 위해 조깅에 열심이다. 일단 외면을 단단히 한 다음 내면의 맷집을 키울 생각이다.

‘무기여 잘 있거나’, ‘파리대왕’ 정도는 읽으면서 교양도 쌓아야 한다. 아내도 팻의 이런 정성을 가상히 여긴다면 팻을 다시 사랑하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다.

▲ 제니퍼 로렌스가 브래들리 쿠퍼의 심한 말에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
▲ 제니퍼 로렌스가 브래들리 쿠퍼의 심한 말에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

조깅 중에 그는 보석처럼 빛나는?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만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친구 부인의 동생으로 말하자면 친구의 처제되는 처지다.

그런데 그녀는 외모와는 달리 아름답지 못한 별명을 갖고 있다.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걸레’를 오명처럼 뒤집어 쓰고 있다. (그래서 보석처럼 빛나는 다음에 물음표를 붙였다는 점 참고 바란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다. 울화통이 터진 그녀는 회사 동료 전부와 잠자리를 갖고 그 이유로 해고 당했다.

제 분을 못 이기는 그녀 역시 꼭지가 돈 상태로 팻을 만났다. 팻이나 티파니의 정신병은 말하자면 그들의 전적인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돌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깅 파트너가 되기도 전에 그녀는 팻에게 이전의 버릇 개 주지 못하고 잠자리를 제의 한다.

'날 쳐다보는 너의 눈빛을 느꼈다.'

그러나 팻은 그럴 수 없다. 결혼반지를 보여주면서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리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편 팻은 법원의 접근 금지 명령 때문에 그녀의 그림자를 밟기는 커녕 편지조차 쓸 수 없다.

그는 티파니를 통해 친구 아내와 소식을 주고 받는 리키에게 편지를 전달할 기회를 엿본다. 일은 순조롭게 풀리는 듯하다.

이때 티파니는 조건을 건다. ‘잠자자’는 이전의 제의 대신 같이 댄스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것. 팻은 춤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나 관객들은 그가 결국 받아들일 것을 안다.

예상대로 그는 춤 연습에 몰두하고 아버지는 이글스 경기와 대회 점수 50점을 묶어 쌍도박 내기에 나서는 등 영화는 마무리를 향해 다가간다.

팻은 원하는 편지를 전달했고 그 편지를 받은 리키는 팻에게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 등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그러면 팻과 리키는 예전의 관계를 회복했을까. 아버지는 내기에서 이겼을까. 이 정도 질문은 마무리로 해볼 만하다. 아무리 친절한 평이라고 해도 때로는 질문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팁에서는 몰라도 본문에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자. 그것이 팻을 위해서나 티파니를 위해서나 읽는 독자를 위해서나 좋은 일이다.

국가: 미국

감독: 데이비드 o. 러셀

출연: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렌스, 로버트 드니로

평점:

: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나대는 팻의 연기가 좋다. (그러나 아케데미 주연상은 여주인공이 받았다.)

속사포처럼 누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할 만을 끝까지 하는 브래들리 쿠퍼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들까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의 주먹이라면 맞으면 굉장히 아플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이 연재물에서 소개한 바 있는 <분노의 주먹> (원제: Raging Bulls)에서 권투선수로 나왔을 만큼 맷집과 주먹이 세기 때문이다.

다행이 아버지는 아들처럼 쉬지 않고 떠들어 댔지만 ‘성난 황소’의 주먹질을 끝내 하지는 않았다. 안도감이 몰려들 즈음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티파니가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러니 놓치지 말고 잡아라.’ 팻은 아버지 말을 따라 먹구름 대신 한 줄기 빛을 선택했다.

리키가 아니고 티파니라니. 영화 내내 리키를 입에 달고 살았으나 막상 화해의 순간 리키는 사리의 썰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서 사족 하나: 남녀 한 쌍이 벌이는 춤 경연 장면은 볼만하다. 어설프지만 팻과 티파니가 추는 춤은 나탈리 우드와 리차드 베이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보다는 <펄프픽션>에서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이 추는 춤과 엇비슷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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