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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2:11 (금)
153. 주교(1902)-생의 마지막에서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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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주교(1902)-생의 마지막에서 ‘좋구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1.16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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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하루 앞두고 있다.

마흔두 개의 교회와 여섯 개의 수도원이 있는 도시는 기쁨에 넘쳐 있다. 타종 소리는 높고 길게 울렸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시의 대기는 활력으로 들끓었다.

태양은 화창하고 새들은 지저귀고 광장에는 그네를 타는 사람과 손풍금 소리와 주정뱅이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가득했다. 정오가 지나면 큰길에는 경마가 시작됐다. 한 마디로 모두 흥겹고 태평했다.

그러나 바로 하루 전 이 도시에는 비극이 벌어졌다. 존경받고 있던 고위 성직자 표트르 주교가 급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이다.

구 년 만에 만난 생모와 여덟 살 어린 조카와 즐길 시간도 없이 장티푸스를 앓다 삼 일만에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이다.

울면서 부탁하던 청원자들은 그가 있을 때는 그가 없으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처럼 두려워했으나 이제 주교의 죽음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흘러갔다.

부활절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도시는 북적였고 성당의 종소리와 축복의 소리는 흥겨웠다. 불과 한 달 뒤에 새 대리 주교가 임명됐다. 신도들은 벌써 표트르 예하 주교를 잊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잊었다.

그런 것이다. 세상의 일을 관장하는 주교도 자신이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순식간에 잊혀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장 출혈이 왔을 때 주교는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고 과거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더는 되풀이 되거나 계속되지도 않을 것을 확신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욕을 하던 신부의 신학생 아들이나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헛소리할 때까지 퍼먹던 고주망태 신부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 주교는 죽기전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진다.
▲ 주교는 죽기전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진다.

자신을 포함해 무려 11명의 주교를 모신 시소이 신부에 대한 회고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 짜증을 내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그는 이곳에 머문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내일 떠난다고, 여기는 지긋지긋하다고 주교에게 통보했던 것이다.

주교는 생각한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시소이 신부다. 그의 집은 어디인지, 그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자신이 왜 수도승인지 조차 알지 못하면서 모든 일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고 불평불만인 시소이 신부.

주교는 의심한다. 그가 과연 신을 믿는가.

이런 잡다한 생각이 들자 신부는 외국에 있다가 갑자기 러시아로 불려와 주교가 되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가 좋았다. 따스한 바다의 속삭임, 밝고 천장이 높고 다섯 개의 방이 있던 새하얀 교회. 인생은 가뿐하고 즐거웠으며 길고 길어서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은 추억 속에 잠겼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설교하고 청원자를 만나고 집전하는 일들은 그에게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군중들, 가물거리는 촛불, 작은 흐느낌, 수도사의 괴성들. 병에 걸린 지금 모든 것은 공허하고 하찮았다.

밤새워 처리했던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이 그를 화나게 했다. 밀려드는 수십만 장에 달하는 평가서를 읽고 쓰는 일들에 그는 종일 시달렸다. 정신은 피폐했다.

<자유 의지에 관한 교훈>이라는 책을 쓸 만큼 똑똑하고 대단했던 관구 주교가 왜 머리가 텅 빈 쓸모없는 인간이 됐는지 그래서 자신의 신앙도 잊고 지내는 시시한 인간이 됐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런 이해는 시소이 신부에게 가졌던 신을 믿는가에 대한 의심이 주교 자신에게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이다. 이제 끝났다. 참회와 비탄의 감정보다는 영혼의 안식과 고요가 주교에게 찾아왔다. 삶의 끝자락에서 주교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정말 좋구나, 정말 좋아.

: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들도 때로는 불신을 경험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주교도 예외는 아니다. 느닷없이 혹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런 것이 올 때가 있다.

체호프의 단편 <주교>는 주교가 부활절 하루 전에 죽을 때까지 일주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월 초순 저녁은 쌀쌀하고 낮은 봄기운이 완연한데 성당 안은 열기로 가득 찼던 러시아의 작은 도시가 이 짧은 단편소설의 무대다.

그곳에서 주교는 더위와 지친 몸으로 겨우 저녁 미사를 마치고 마차를 타고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의 집, 성당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바로 잠자리에 들 수는 없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았다. 취침 기도가 그것이다. 여전히 그에게 믿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믿음 속에서 그는 미사 중에 언뜻 스쳐 지나갔던 헤어졌던 어머니와 아버지, 고향마을에 대한 달콤한 추억에 잠겼다.

이 마을 저 마을 종일 다니면서 축복을 올릴 때 세상은 환희의 물결로 요동쳤다. 소박한 믿음과 미소가 끝없이 흘렀던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바로 오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를 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막상 어머니를 만나자 어린 시절의 그 순간으로는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 너라고 하지 못하고 주교님이라고 부르면서 공손하고 다정한 말씨를 쓰는 어머니는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죽음의 목전에서야 어머니는 주교의 어린 시절 이름인 파블류샤를 부르며 울먹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안개 속으로 마치 꿈속의 일처럼 사라졌다. 그가 없어도, 신이 없어도 세상은 그 이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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