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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행위마저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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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행위마저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1.0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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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던 일상은 끝났다. 평온이 사라진 세계는 암흑이거나 빙하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생명의 움직임은 없었다. 살아 있는 것은 곧 죽을 운명이었고 새로 태어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살 수 없는 땅, 바로 황무지였다.

그분이 없는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하며 삶을 이어갈 것인가.

잡을 줄도 없고 세울 기둥도 없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지탱해야 하는지 성일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해 답답했다.

나라 잃은 설움은 이런 것인가. 일제 치하를 겪은 선조들의 고초가 실감났다. 그것은 세상의 멸망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세상의 끝자락에서 성일은 할 말을 잃었고 최후가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한 모습이었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터지고 말 거라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개는 그런 형국이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면 따라가기야 하겠지만 자신이 앞장서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런 상황이 성일은 답답했다. 속 시원히 뻥 뚫려야 할 것이 막혀 있었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자 성일은 시야가 뿌옇게 흐려왔다. 그래서 성일은 조금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작심한 듯 눈을 꾹 감았다. 그러자 고여 있던 것이 찔끔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한숨이 따랐다. 답답한 것이 조금은 사라졌나 했는데 다시 가슴을 조여왔다. 숨을 쉬어도 다 들이마실 수는 없었다. 그런 행위마저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반쯤 들어간 산소는 급히 밖으로 나왔고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을 크게 벌려야 겨우 한 모금 정도 들어올 정도였다.

그것으로는 호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겨우 목숨이 붙어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서 있을 힘은 사라졌고 맥은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갔다. 난파선처럼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위해 잠시 수면 위에서 작은 소음을 일으키다 마침내 영원히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이래도 되는가. 그분이 없는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맥박은 양심도 없고 보는 눈은 염치가 없었다.

핑 돌던 눈물이 다시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성일은 애써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눈을 다시 아래로 꾹 눌러서 안에 있는 눈물샘을 더 자극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운데 제법 큰 것이 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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