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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2:11 (금)
버스비를 아끼고 구경하는 재미로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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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를 아끼고 구경하는 재미로 걸어 다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2.03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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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학 간 둘째 형 말에 따르면 서울에는 거지가 아주 많다고 했다.

동량 그릇을 앞에 놓고 종일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하는데 그릇에는 언제나 동전 한두 개만 있다고 했다.

서울이라고 해서 다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일은 정말로 거지를 보았다. 서울에 와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도로를 메운 차도 땅속으로 다니는 전차도 몰려다니는 사람이나 시커먼 매연도 아니었다. 동량 그릇을 앞에 놓고 구걸하는 남루한 차림의 거지들이었다.

적어도 시골에는 저런 거지는 없었다.

일하면 굶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울 거지는 밥도 못 먹고 굶고 있다. 성일이 받은 충격은 거지 그것도 아주 많은 거지가 역 주변에 늘 그렇게 앉아 있거나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서울은 거지말고도 많은 것이 아주 많았다.

건물도 많고 가게도 많고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성일이 서울로 온 지 한 달 만에 여순네도 동네를 떠났다.

그는 이런 사실을 ‘부모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면서 알게됐다. 편지를 시골로 보내는 것은 성일이 한 달에 한 번 치러야 하는 숙제였다.

정태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고 그것을 편지로 증명하는 것은 성일의 몫이었다.

편지는 가족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었다. 서울 친척 집에는 전화가 있었으나 시골에는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전화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성일은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칠 때면 늘 아버지 정태와 어머니 용순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려나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구구절절 효심을 담아 보내는 편지에 성일은 자신이 먼저 감격해 울컥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 훔쳐본 형의 편지는 자신이 쓴 것과는 달리 무미건조했다. 평소 언행처럼 편지도 무뚝뚝해 왜 이렇게 쓰는지 모르겠다고 성일은 속으로 불평했다.

좀 감정도 넣고 하기 싫은 말이라도 좋게 쓰면 좋을 것을 그러지 못했고 더구나 편지 말미에는 늘 돈이 부족하다고 썼다.

‘그러니 돈을 부쳐 주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고등학생이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할까. 성일은 걱정하는 용순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형에게 불만이었고 그것을 보충할 요량으로 더욱 정성껏 편지를 썼다.

물론 편지의 내용과 실제 생활은 달랐지만 말이다. 무뚝뚝한 형은 공부를 잘해 부모의 기대를 샀고 싹싹한 동생은 형편없는 실력으로 다른 식으로 부모를 괴롭혔다.

‘다음 기말고사는 잘 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게요.’

돈을 달라는 것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으로 편지는 늘 마무리됐다.

그런데 어느 날 답장이 왔다. 척 봐도 정태의 글씨체였다. 한문에 익숙한 글씨를 한글로 쓴 것이 한자 같기도 하고 한글 같기도 한데 이런저런 말 가운데 눈에 번쩍 띄는 내용이 있었다.

여순네가 이사갔다는 것이다. 집도 논도 다 팔고 여순 엄마가 머슴과 여순을 데리고 아예 마을을 떴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 달 만에 이뤄졌다. 급하게 전답을 처분하느라 제 가격을 받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여순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선심을 베풀 듯이 조금 싼 가격에 내놨고 덕분에 정태는 닷마지기 논과 육백 평짜리 밭을 하나 장만했다.

정태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계를 들어서 목돈이 들지 않았고 논과 밭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곗돈은 충당 될 것이다.

사실 답장은 여순네의 이사보다는 논을 사고 밭을 샀다는 정태의 자랑을 자식에게 하기 위해서였다. 형은 대뜸 돈이 없다더니 다 거짓말이네, 하고 화를 냈다. 성일은 반대로 논과 밭이 돈을 벌어주니 우리 집은 부자가 되고 있다고 좋아했다.

형제는 이렇게 모든 사안에 대해 가치 판단이 달랐다. 같은 학교에 다녔으나 형은 언제나 버스를 탔다. 그러나 성일은 늘 걸었다.

버스비를 아끼는 것이 첫 번째였다. 구경하는 것은 두 번째 였다. 거기다 학교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었다. 버스 기다리고 신호 걸리고 하다 보면 어떤 때는 겨우 10분 차이였다. 그런데도 형은 한 번도 걸어서 학교를 가지 않았다.

성일이 버스를 탄 것은 서울로 전학 온 첫날이 유일했다. 형이 몇 번 몇 번 버스를 타면 되고 내리는 곳의 위치를 알려 줬다.

차를 탄 것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길을 익히기 위해 성일은 창밖을 유심히 살폈다. 고가를 지나고 좌회전 우회전하는 길목을 익혔다.

걸어가는 길은 금세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부터 성일은 익힌 것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집과 학교의 최단 거리를 알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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