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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베니스의 상인(1596)- 시대에 따라 달리 읽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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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베니스의 상인(1596)- 시대에 따라 달리 읽는 재미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7.27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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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와 부유한 유대인 샤일록은 원수지간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오랫동안 쌓여 앙금이 깊다. ( 아마도 수백년 아니면 수천년 그보다도 더 오래전부터.)

메다꽂을 기회만 있다면 원한을 꼭 풀리라 다짐하는 것은 샤일록이다.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샤일록을 옹호하거나 안토니오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일단 생긴 것을 평가해 보면 돈을 빌리기 위해 아첨하는 꼴이 꼭 로마 세리처럼 생겼다. 더군다나 그자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미워하는 것처럼 샤일록 역시도 그런 행동을 한다.)

더 나쁜 것은 공짜로 돈을 꿔줘 베니스 시내에서 자신이 하는 고리대금의 이자를 낮춘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를 비난하는 것은 물론 정당한 소득을 욕한다. (이것은 애국심은 물론 생계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잘못을 믿는 자라거나 무자비한 개로 부르고 발로 차고 저고리에 가래침을 뱉는 것은 덤이다.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을 상기해 보자.)

샤일록을 저주 하던 사람들도 안토니오의 이런 행동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고리대금업자에 냉혈한이라는 왜곡된 이미지가 조금은 바뀌었을 지도.)

샤일록은 말하자면 유대인이 잘못하면 기독교인이 벌하듯이 그 반대도 성립한다고 믿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나 할까.)

그런 모욕을 주던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궁한 처지다. 그렇지만 자존심은 남아 샤일록을 여전히 개로 부르고 침을 뱉고 발로 차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주눅들 샤일록이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 천한 직업을 갖고 그것도 이교도 주제인데 용기와 배짱이 대단하다.)

그러함에도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고 내게 입힌 당신의 치욕을 잊고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친절한 제의를 한다. (친절한 제의 속에 감춘 날카로운 발톱이다.)

공증서로 가서 무담보 계약을 하고 장난삼아 빚을 갚지 못하면 살 일 파운드를 잘라내서 가진다고 명기해 놓자고 한다. ( 장난이라고 말했으나 계약의 핵심이다.)

이런 내용은 다들 한두 번 들어서 알 것이다.

그러니 더 자세히 살필 필요는 없다. 다만 계약 전에 안토니오가 이런 수모를 겪고도 계약을 한 것은 친구 바실리오가 사랑하는 여자 포셔를 얻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 자신은 바실리오의 우정을 얻고.)

▲ 베니스에 가면 배를 타고 여행하자. 그 보다 먼저 샤일록과 안토니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그들을 옹호하고 때로는 비난하면서 먹는 흑맥주 한 잔은 깊은 맛을 낼 것이다.
▲ 베니스에 가면 배를 타고 여행하자. 그 보다 먼저 샤일록과 안토니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그들을 옹호하고 때로는 비난하면서 먹는 흑맥주 한 잔은 깊은 맛을 낼 것이다.

운은 좋고 여기에 재력만 덧붙이면 어떤 경쟁자도 따돌리고 포셔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안토니오는 발벗고 나선다. (친구의 우정이 이토록 깊은가.)

안토니오의 상선이 바다에 나가 있어 돌아오면 빚을 갚고도 충분한 이득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돈을 빌리면서도 안토니오가 여전히 샤일록을 함부로 대하는 이유다.

바사니오가 포셔에 구애만 하지 않았더라면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관계는 여전히 주종 관계 일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까지도.)

여기서 바시니오의 구혼자 포셔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바사니오의 말에 따라가 보자.

일단 놀랍도록 아름답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미덕을 가졌다. (거기에 유산도 엄청나게 많다.) 돈 많고 미모 출중하고 지식 겸비한 외동딸이다. 그러니 사방에서 구혼자들이 달려든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금 은 납, 세 궤 가운데 정확하게 심지를 뽑은 사람을 포셔의 남편감으로 점찍어 놓았다. 포셔는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도 없고 싫어하는 사람을 거절할 수도 없는 상태다.

나폴리의 군주, 펠러타인 백작, 프랑스 귀족, 영국의 남작, 스코틀랜드 귀족, 젊은 독일 청년 등이 모여든다. 그러나 그들은 궤를 정확히 뽑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땅을 치며 돌아간다. ( 누구나 예상하는 당연한 결과다.)

바사니오의 선택을 말하기 전에 안토니오는 파산한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바다에 나가 있던 재산은 파도에 모두 쓸려갔다. 약속한 날에 약속한 금액을 내지 못하게 생겼다.

빚을 갚을 방법은 살을 돌려내는 일밖에 없다. 심장에서 제일 가까운 부분의 살 일 파운드를 제거하면 안토니오는 죽을 것이 분명하다. (안토니오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베니스 법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는 다 들 알 것이다. 판결 전에 샤일록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원금의 세배를 준다는 제의도 거절했다.

앞서 유대인을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상황을 전한 바 있다. 구두쇠 샤일록은 금전보다도 기독교인의 생명을 노렸다. 이 기회에 반드시 원수의 생명을 뺏고자 했다. 그것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나와 있듯이 코너에 몰린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음에도 베니스의 유대인으로 더는 존재 할 수 없게 됐다. 샤일록은 법은 약자나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힘센 자의 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은 좀 바뀌었나.)

베니스 법정의 눈으로 보면 샤일록이 악당이다. 그토록 구한 자비를 베풀 줄 모른다. 그러나 샤일록의 입장에서 보면 엉터리 판결을 내린 것은 공작이다. (비록 자신이 수긍했다 하더라도.)

여기서 법리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니 그것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기자.

다만 원인 없는 결과 없고 그 원인 제공자가 여전히 잘못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2의 샤일록은 언제든 출몰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 약자라고 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고 처지가 위태롭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 침을 뱉고 발고 차고 개라고 욕해서는 안 된다. (더더군다나 자기 나라가 없어 외국에 떠돌면서 그 나라 종교를 믿지 않고 하찮은 직업을 가졌다면.)

: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이어져온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대했던 그런 태도는 히틀러의 망령을 낳았는도 모른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계속해서 상영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쟁도 당연히 있었다.

관대한 것을 최대 미덕으로 삼고 있는 종교가 다른 종교에 대한 무지막지한 핍박을 더는 조롱해서는 안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종교의 본질 등에 대한 논의 역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

대신 불리하게 돌아가던 판결이 안토니오에게 유리하게 번복하는 과정을 잠깐 되새겨 보자.

판결을 뒤집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은 박사로 변장한 포셔다. 바사니오는 다른 구혼자들과는 달리 정확히 궤를 맞췄다는 것은 앞서 말했다.

선택하면 다수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금궤나 너 자신만큼의 가치를 얻는다는 은궤 대신 선택하면 다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납궤를 정확히 잡았다.( 다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상당한 이득을 바라고 하는 것이다.)

바사니오는 포셔를 차지했다. 그녀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 대신 현명한 행동으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박사로 변신해 명석한 조언으로 안토니오를 구하고 샤일록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 바사니오를 얻은( 바사니오가 포셔을 얻은 것으로 나오는데 실상은 포셔가 바사니오를 차지한 것이다.) 포셔는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반지 약속이라는 또다른 유명한 계약을 맺는다.

반지를 빼놓거나 잃거나 남에게 준다면 사랑은 몰락한다는 포셔의 경고가 궁금하지 않은가. (경고 다음에는 항상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깨는 경우가 많다.)

반지가 떠나면 생명 또한 떠난다던 바사니오의 굳은 맹세는 지켜졌을까.(맹세 역시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시대에 따라 달리 읽고 해석하는 재미가 넘쳐난다. 줄거리 말고 전체를 읽어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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