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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만약에(2016)-만약에가 없었다면 이 영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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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만약에(2016)-만약에가 없었다면 이 영화도 없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7.22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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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만약에가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명확해 이런저런 추측이 소용없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만약에가 항시 따라 붙는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상상할 수 있다.

만약에 로또가 당첨된다면, 혹은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면 하는 식이다.

가정법은 그래서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현재를 이겨내는 힘이며 반면에 미래를 꿈꾸고 당장의 공포 앞에 무릎 꿇게 만들기도 한다.

그 만약에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라면 인간의 심리를 관찰하기에는 그만이다.

공통된 만약에 앞에 어떤 사람이 취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도 감독 프르야다르샨은 <만약에>라는 영화로 극강의 심리전을 펼치는데 성공했다.

장소는 병원 대합실이다. 병원이니 아픈 사람들이 모여든다. 안 아픈 사람은 앞으로 아플 기미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치명적인 질병이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줄을 선다.

모여든 그들의 표정은 대개 무뚝뚝하다. 표정 감추기의 달인들이 전부 함께 있는 곳이 병원 대합실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초반부는 인도의 교통 불편, 엄청난 인파, 느린 것에 대한 분노 뭐 이런 잡다한 것들이 양념으로 무쳐진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대합실에 온 사람들은 안 보는척 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에이즈를 정확히 검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른 병원에 간 사람들도 이곳 병원을 오기 위해 하루를 내야 할 정도다.

그들은 콜레스테롤이나 다른 질환을 알아보기 위해 왔다고 태연한 척 하지만 하나같이 에이즈 검사를 받기 위해서 이른 새벽 기차를 탔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걸리면 치료약이 변변치 않아 사망 위험이 높고 주변에 알려질 경우 가족관계의 해체는 물론 직장에서도 쫓겨나야 한다.

한마디로 치명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는 그 사람의 절망과 희망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의 혈액은 검사실로 보내졌다. 당장 결과가 나오면 좋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접수가 열기도 전에 왔으나 오후 5시 30분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그 오래 걸리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각자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다가 에이즈 검사라는 것을 실토한다. 그리고 지루하고 짜증나게 기다리는 대신 검사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 안달한다.

그만큼 초조하기 때문이다.

마침 접수대의 여성은 돈에 궁한 처지다. 통화내용을 들어 보면 당장 오천 루피를 오늘 안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어머니와 여동생이 집에서 쫓겨나야 할 형편이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돈을 얻을 수 있을지 궁리해 보지만 동료한테도 이미 상당한 빚이 있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런 불안한 심리에 빠진 여성이 환자들을 상냥하게 대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대기실의 한 남자가 그런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검사 결과를 미리 알려 주는 대신 돈을 주겠다고 제의한다.

처음에 거절했던 여자는 칠천 루피로 합의를 본다. 대기자들은 십시일반 돈을 낸다. 처음에 거절했던 여자는 끼워 달라고 간청해 합류한다. 그렇게 모은 돈은 접수대에 전달된다.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극도의 긴장감에 화면이 폭발할 것만 같다. 카메라는 그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신은 위대하다고 기도한다. 그 위대함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적용돼야 마땅하다.

자신을 호명하는 소리에 환자들은 일어난다. 그리고 확인한다. 안도의 한숨과 환호성이 터진다. 그것을 바라보는 대기자들의 표정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난 멀쩡해 하면서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도 저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엄청난 기대감이 섞여 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다. 광견병에 걸린 개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한가지가 있다. 여자가 돈을 낸 사람 가운데 모두 음성인데 단 한 사람만 양성이라고 말한 것이다.

누군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할 수가 있나. 어쨌든 한 사람씩 음성이 확인되면 나머지 사람들의 확률은 그만큼 높아간다.

최후의 두 사람이 남았다. 무려 절반이다. 둘 중 하나는 걸렸다. 돈을 주선했던 남자가 검사지를 펼쳐든다.

그는 표정을 제대로 밝힐 수 없다. 웃는다면 남은 한 남자는 절망할 것이다. 운다면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쉴것이고. 그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냐, 아니냐.

이처럼 떨리는 순간이 또 있을까. 눈에 집중된 표정은 보는 이의 오금을 덜덜 떨게 만든다. 관객도 이 지경인데 만약 당사자라면 오죽할까. 그야말로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일어난다.

이것을 코미디라고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드라마라고 해야 할지 고민된다. 굳이 장르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만약에 당신이 그 둘 중 하나라면 어떻겠는가. 세상을 바르게 살겠다고 앞으로는 부정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겠는가.

나쁜 짓을 해도 걸리지 않는 병인데 해오던 대로 그렇게 살다 죽겠다고 고집 피우겠는가. 만약에 자신이 걸렸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것은 영화 <만약에>가 우리에게 던져준 질문이다. 손을 들고 정답을 외치면서 각자 대답해 보자. 정답은 없으니 오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가: 인도

감독: 프리야다르샨

출연: M.S. 바스카, 나사르

평점:

: 본문에서 기막힌 반전을 언급하고 정작 반전의 내용은 빼놓았다. 언제나 친절한 영화평이니 스포일러 같은 것은 신경 끄자. 접수원 여자는 거짓말을 했다.

모두 음성이었다. 사실 여자는 검사지를 사전에 확보하지 못했다. 원장이 하필 그 시각에 수시로 드나들며 각자 원위치 근무 태도를 지적해 입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먼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모두가 사라진 대합실에 홀로 남은 그 남자. 누군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땅에 떨어뜨렸다. 아니 저절로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백발이 된 남자처럼 절망의 순간에 그의 심장이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 남자가 돈을 걷어 일찍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접수대 여자가 그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더라면, 만약에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만약에 그런 내용이 없었다면 <만약에> 같은 좋은 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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