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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지금까지 용순과 잘 해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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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지금까지 용순과 잘 해왔다고 생각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13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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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순과 같이 왔으면 조금 싸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옷을 흥정하면서 자신의 효심을 시험하는 것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마지막 가는 엄마에 대한 효심이었다.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상인들의 마음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다.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낳아 주고 길러준 부모에 그 정도는 할 능력이 있었다. 살아 계실 때 더 잘해 드리지 못한 회한은 두고두고 하면 될 것이고 우선은 옷감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정태는 더 열심히 일해서 용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갚고자 다짐했다. 옷감을 혼자 끊었다고 좋지 않은 표정을 짓겠지만 그것을 오래 가지고 있을 용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정태의 결심에 한몫했다.

말하면 이해가 되면 용순에게 정태는 고마움을 느꼈으나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내외간이라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정태는 이렇게 생각했고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간혹 그런 생각이 잘못돼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지금껏 잘해 오지 않았던가. 바람이 다시 불어 왔다. 만장이 흔들린다. 가마도 덩달아 앞뒤로 움직인다.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정태는 조금 앞서나가 상여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보일 리 없지만 새 옷을 입고 가마를 타고 있는 엄마가 새삼 그리웠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정태가 세상 물정을 알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13살도 되기 전에 죽었고 그래서 곡을 하면서 땅에 묻은 것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런데 엄마처럼 아버지도 꽃상여를 탔는지는 모르겠다. 다들 서두르는 기색이었고 빨리 일을 끝내려는 모양새였다.

애도의 기간은 짧았다. 식구들 누구도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의 부재는 금세 잊혀졌다. 살아서 했던 역할은 식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떤 때는 해를 입혔다. 쌀 말이나 살 형편이 없으면서 조상 대대로 물려온 작은 동산을 팔았다. 아니 장기 한판에 넘겨 버렸다. 앞섬도 그렇게 넘어갔다.

죽으면서 그는 재산을 남기기는커녕 빚만 졌다. 차라리 잘 죽었다는 말이 나왔다. 차마 식구들은 그 말을 하지 못했으나 누가 한마디 하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기세였다.

그래서 그의 부재에도 살아가는데 식구들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몫은 오로지 엄마가 맡았다. 어린 정태가 보기에도 엄마는 무척 강했다.

그녀는 울지 않았고 우는 대신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정태는 알았다. 그녀가 웃을 때 정태도 따라 웃었다. 함께 웃으니 기분이 좋았다.

억척같은 그녀는 어느새 빚을 갚았고 이런저런 토대를 마련해 정태가 논을 사고 밭을 사게 했다. 그녀는 할일을 다했다. 일을 다 해 놓고 그녀는 이제 몸을 뉘었다.

당장 내일 돌아가도 문제가 없을 만큼 엄마의 상태는 날로 심해졌다. 어쩌다 한번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웠다.

이승의 마지막 끈을 어렵게 붙잡고 있는 모습에서 정태는 이번 장날이 그녀를 위한 마지막 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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