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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인생은 아름다워(1999)-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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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인생은 아름다워(1999)-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7.0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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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개척한 것일 수도 있고 그 둘이 혼합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슬픈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쁜 것이다.

기쁜 것에도 완전한 것이 있고 반만 슬픈 것일 수도 있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영원히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있다.

인생은 그처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사람의 인생은 지문처럼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는 내 인생을 본다. 거울을 보면서 위안을 삼기도 하고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인생이 출발하고 성장하고 소멸한다.

우리는 오늘 귀도 (로베르토 베니니)의 삶을 따라가면서 차분하게,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마침 날도 흐리고 곳에 따라 소나기도 내리니 그렇게 하기에 좋은 분위기다.

귀도의 어린 시절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인이 된 그가 보여주는 행동으로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의 아들 조슈아를 닮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귀도가 시골에서 도시로 낡은 자동차를 타고 올라온다. 옆에는 친구가 있다. 시인 친구를 둔 그는 행복하다. 친구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주소지를 옮길 때는 누구나 그런 꿈을 꾸지 않는가.)

거기다 로마 시내에 서점을 낸다면 그의 꿈은 대부분 이뤄진 것이다. 거창하기보다 소박하지만 그의 그릇이 그 정도이니 우리는 그를 나무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통령 꿈이 아니면 어떤가.

삼촌이 일하는 식당에서 웨이터로 직업을 구한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상대를 놀리고 거기서 자신의 즐거움을 얻는 천진난만한 동화 속의 어린아이로 등장한다.

몸은 어른이나 하는 행동이 그렇다. 따라서 이 동화는 단순하지만 쉽게 말하기 어렵고 슬프고 때로는 행복한 아주 복잡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미 약혼한 다른 남자의 여자를 낚아챈 귀도는( 그나 그녀를 탓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다.) 아내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 둘은 실제 부부다.)와 사이에 아들 조슈아를 두고 있다.

조슈아는 5살 정도로 추정된다. 그때가 1939년이다. 2차 대전의 검은 구름이 그의 조국 이탈리아를 집어삼키고 있다.

히틀러처럼 멋진 인사를 하면서 등장했던 귀도는 진짜 나찌에 의해 집단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유대인이 아닌 부인은 자발적으로 남편과 아들을 따라 수용소에 감금되는데 영화는 여기서부터 수용소의 암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귀도와 조슈아의 또다른 암과 명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가슴을 쥐락펴락 한다.

강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귀도가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그의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 조슈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는 지고 이기는 게임으로 수용소 생활을 빗대면서 1,000점을 따서 진짜 탱크를 부상으로 받자고 조슈아와 약속한다.

▲ 실제 부부이기도 한 두 사람은 영화속에서 극적으로 만나 사랑을 키운다. 그러나 그 사랑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끝난다. 기쁘다가 슬펐다면 그런 이유도 한 몫했을 것이다.
▲ 실제 부부이기도 한 두 사람은 영화속에서 극적으로 만나 사랑을 키운다. 그러나 그 사랑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끝난다. 기쁘다가 슬펐다면 그런 이유도 한 몫했을 것이다.

어린 조슈아는 승부욕을 발휘하면서 다른 누구의 말은 듣지 않고 오로지 귀도의 말만 믿으면서 배고픔과 아픔과 두려움을 이겨낸다. 시간은 흘러 전쟁은 이제 독일의 패배로 기울고 있다.

그들은 그러기 전에 노동력이 상실한 남자와 어린 애들과 여자들을 가스실의 다른 이름인 샤워실로 보낸다. (조슈아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용광로 속에 녹여 단추와 비누로 만든다는 사실을 귀도에게 말한다. 이때 관객들은 귀도 만큼이나 놀랄 수밖에 없다. 소문은 조슈아의 귀에도 들어갔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은 매번 찾아온다. 그때마다 귀도는 귀신처럼 위기를 극복한다. 우연과 갑자기와 느닷없이로 행운을 얻었던 것처럼.

남들은 못 빠져나가는데 귀도는 왜 예외냐고 토를 달지 말자. 영화의 주인공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 넓은 관객이 되는 것은 그 과정이 어색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이것은 귀도가 벌이는 일인 코미디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힘들 때마다 반전이 있고 그 반전은 영화의 묘미를 더해준다.

귀도는 퀴즈에 미친 의학박사가 나찌의 고위 군인으로 자신과 맞딱트렸을때 다시금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이제 귀도 뿐만아니라 많은 관객들도 함께 꾸고 있다. ( 이쯤 해서 관객들은 영화와 자신이 몰아일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냉정한 퀴즈박사는 귀도의 안전보다는 오로지 퀴즈를 내고 푸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다.

한가지 목적밖에 모르는 그들의 잔인함이 그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해질 때 반전에 속은 관객들은 속았다는 느낌보다는 귀도가 더 위험에 처해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빠져든 관객이라도 어린 조슈아가 죽지 않고 살아서 전쟁 밖으로 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귀도와 귀도 부인의 생사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관객도 적지 않을 터.

주인공이면서 감독인 로베르토 베니니가 어떤 결말을 끌어왔을지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을 위해 이쯤에서 스포일러는 생략하자.

그것은 영화의 결말보다는 그 과정이 더 유쾌하기 때문이다. 설사 끝을 모른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 때로는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지나가는 일이 세상사에는 비일비재하다.

국가: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스키

평점:

: 이 영화에서<대부>가 연상된다. 전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런 음습하고 추악한 뒷거래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흐르는 음악도 그렇다.

배경이 이탈리아라는 선입견 때문인가. 바늘을 들어 엘피판에 얹을 때면 <쇼생크 탈출>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오래전 흑백영화 <자전거 도둑>은 죠수아의 등장 때마다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와 겹치지는 장면도 있는 듯싶다.

영화를 보면서 다른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흔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데 어쨌든 <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이 네 영화가 자꾸 오버랩 됐다.

이제 앞서 이야기했던 인생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 대한 답을 할 차례가 됐다. 우스꽝스럽게 등장해서 그와 비슷하게 퇴장하는 귀도의 인생은 어떤 인생인가.

그의 어릿광대 같은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은 어떤지 비교해 보자.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얻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의 인생에 대한 오늘의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족으로 질문: 이름을 부르면 난 사라져, 내 이름은? 답: 침묵( 퀴즈를 내고 답을 적은 것은 친절한 영화평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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