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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6:02 (금)
137. 사랑이란 (1898)-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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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사랑이란 (1898)-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4.15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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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질문으로 시작했으니 해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알다시피 사랑은 정답이 없다.

정답을 모르는 물음표는 여러 가지 상상을 만든다. 오답 가득한 노트를 채울 수도 있고 비록 답은 틀렸어도 풀이 과정은 놀랄 만큼 정교할 수도 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사랑이란> 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무엇이 사랑인지 사랑에 대해 진지한 고민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사랑에 대하여, 사랑에 관하여 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우선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알료힌은 남자 주인공이다. 상대 여자는 안나 알렉세예브나로 그 지역 재판소장의 보좌관인 누가노비치의 아내다.

남녀가 나왔으니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사랑이란> 의 핵심 물줄기가 되겠다. 먼저 알료힌에 대해 살펴보자. 그는 대학을 졸업했다. 작가에 따르면 이런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개미가 아닌 베짱이이다.

졸업 후에는 연구실에 있는 게 어울린다. 그러나 아버지 빚 때문에 영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라는 것이 손발에 흙 묻히는 고된 노동이고 수입은 별 볼 일 없어 폼 잡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배우고 가졌으니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몸에 밴 문화생활 등 조화로운 일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잘 꾸며진 2층 방을 쓰고 아침과 저녁은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유럽통보’라는 잡지를 읽는다면 농부의 일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런 원칙은 대개 지켜 질수 없고 알료힌은 무료한 생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열쇠로 채우고 나사로 못을 박아도 사랑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남녀의 사랑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사랑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신뢰와 서로간의 믿음뿐이다.
▲ 열쇠로 채우고 나사로 못을 박아도 사랑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남녀의 사랑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사랑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신뢰와 서로간의 믿음뿐이다.

다행히 지방의 명예 치안 판사로 선출돼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가끔씩 판사 회의나 지방재판소 회의에 참석하면 기분 전환으로 최고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기분 전환에 그치지 않고 그녀 안나 알렉세예브나를 만나는 기회를 잡는다. ( 안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여주인공 안나와 같다. 체호프가 톨스토이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또 다른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에서도 주인공 이름을 안나로 정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어느 순간 톨스토이의 철학과 결별 한다.)

만남은 남편 루가노비치의 제의로 이뤄졌다. ( 거의 대부분 일은 제의로부터 시작된다. 제의가 없다면 어떠한 일도 이뤄지기 어렵다.)

“ 우리 집에 가서 식사라도 하면 어떨까요?”

그 제의를 알료힌이 거절했다면 <사랑이란> 같은 명작도 나오지 못했을 터.

기꺼이 그 제의를 받아들인 알료힌 앞에 나타난 그녀의 부인 안나는 이런 표현은 없지만 날개달린 천사와 다름아니다. ( 안나는 22살도 채 되지 않았고 6개월 전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 젊다는 이야기다.)

그에 반해 남편은 정확한 나이 대신 노인이나 마찬가지인 40을 훌쩍 넘겼으며 배불뚝이에( 그런 표현은 없으나, 보나 마나.) 당연히 법조문만 외는 고리타분한 인물이다. (이런 표현도 없으나 보나 마나. 그래야 해서는 안될 남녀 주인공의 어떤 행실에 조금이나마 비난의 화살을 줄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안나를 좀 더 묘사해 보자.

젊고 아름답고 착하고 지적이며 매력적이다. 거기에 눈동자는 온화하고 영리해 보이기까지 하다. 완벽한 여자가 있다면 안나가 해당 될 것이다. ( 눈썰미 있는 독자들은 짐작했을 것이다.)

알료힌은 어떨까. 여러 개 국어를 구사하는 매우 드문 앨리트다. 젊고 근육질이며 생김새는 핸섬 그 자체다. 말투는 온화하고 행동거지는 예의 바르다. 모든 여자들이 선망할 수 있는 꿈속의 백마탄 남자다. ( 물론 이런 표현은 없지만 보나마나.)

잠깐 이야기를 건너뛰고 급하게 앞으로 나가보자.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호기심은 잠시 미뤄두고.

예상대로 둘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제집처럼 드나들며 안나를 만나는데도 아무런 의심은커녕 되레 알료힌을 한집안 식구처럼 살갑게 대하는 남편의 태도다.

심지어 돈에 쪼들리고 있는 그에게 걱정 말고 우리 돈을 가져다 쓰기를 간청한다고 말하니 안나의 남편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알료힌은 스스럼 없이 그녀 집의 터키제 쇼파에 누워 신문을 읽는다.

어쨌든 주인공은 남편이 아닌 그의 부인이니 다시 안나에게로 돌아가 보자. 안나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 그녀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알료힌은 머뭇 거린다.( 여기서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한 번 상기해 보자.) 그녀는 짜증을 낸다. 전에 없던 행동이다. 인생을 생각 없이 헛되이 지냈다는 생각에 남편은 물론 아이에게 까지 멀리한다.

알료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이상한 반감을 드러냈고 토론이라도 벌어지면 어떤 구실을 대고서라도 알료힌에 반대되는 의견을 냈다.

누가 봐도 차가운 태도였다. 그녀는 알료힌의 뜨겁지 않고 은근한 사랑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시간은 흘러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별의 순간이 왔다. 안나의 남편이 서부 러시아의 한 재판소장으로 발령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제서야 알료힌은 떠나는 기차 안에서 안나를 붙잡고 뒤늦은 사랑 고백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우리의 사랑을 방해했던 모든 것들은 실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거짓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차에서 내렸고 그녀가 탄 기차는 떠났다.

: 남녀의 사랑은 정말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은 외모나 재산, 학식에서 정말 어울릴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성격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함께 사는 사람들을 본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이란>의 서두에서도 이런 의문이 나온다. 예쁘게 생긴 펠라게냐가 있다. 그녀는 그 집 요리사 니카르로에 마음이 푹 빠져 있다. ‘얼굴이 무기’인 니카르로는 주정뱅이에다가 욕설은 물론 손찌검까지 일삼는다.

그런 관계를 보고 사람들은 당연히 의문을 품는다. ‘알 수 없다. 어째서 펠라게냐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자신의 외모와 걸맞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사랑에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공통분모가 없다는 것 뿐.

그러니 사랑을 도마위의 생선 다루듯 내리 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좀 지루 하겠지만 들어두면 좋을 체호프식의 사랑에 관한 몇 마디를 추가해 보자.

‘사랑은 위대한 신비, 사랑은 장밋빛 미래, 사랑은 운명이다’.

사랑이 운명이라면 사랑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 역시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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