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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벤자민 버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누군가는 세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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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벤자민 버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누군가는 세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3.14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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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기적의 연속이다. 돌아보면 그런 경우가 흔하다. 그만큼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한 것이 삶이다. 어떤 사람은 노인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간이 아닌 신에 의해 행해지는 일들이 인간 세상에서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한 일을 진짜처럼 천연덕스럽게 만든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는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노인 아이(브래드 피트)의 탄생과 함께 시작한다.

아기가 아기가 아닌 노인으로 태어났으니 그 부모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산고 속에 죽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잘 키워달라는 유언도 무시하고 강보에 쌓인 아이를 버린다. 다행히도 그곳은 마음이 고운 어느 집 앞이다. 아이를 키우는 여자는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천사와 같다. 너무나 흉측한 아이를 못 본 척하지 않고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재운다.

교회앞에 버려진 천사를 데려온 가난한 소설 속의 농부 아내와 다를 게 없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는 점점 커서 이제는 달린다. 노인 아이는 자랄수록 젊어진다. 그의 인생 시계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돌기 때문이다.

1930년 추수감사절 무렵 예쁜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노인 앞에 나타난다. 소녀 역시 자란다. 늙는 것이 순식간이듯이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리숱이 많아진 늙은 남자는 점점 젊어지고 코흘리개 소녀는 커서 중년이 됐다. 중간지점인 40살 언저리에서 둘은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다. 그 나이에 맞는 외모와 생각과 행동을 한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

▲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과 어린 소녀 데이지는 삶의 중간지점인 40대에 만나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과 어린 소녀 데이지는 삶의 중간지점인 40대에 만나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 사랑 오래가기 힘들다. 벤자민은 예인선을 타는 선원이 됐다. 데이지는 잘 나가는 발레리나다. 전쟁이 터졌다. 벤자민은 참전했고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바뀌었고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고 새로운 일들이 계속 생겨났다. 누구도 통제 못하는 삶의 연속작용이 전쟁통에 더 심해졌다.

사람들이 다시 일터로 가듯이 벤자민과 데이지 역시 서로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둘은 다시 만난다. 그리고 또 사랑한다.

그러다 데이지는 떠나고 그런 데이지를 벤자민은 잡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흘러 소녀가 할머니가 됐을 때 노인은 다시 쭈글쭈글한 아이로 돌아간다.

날 때처럼 늙고 추레한 모습이 된 소년은 치매에 걸려 데이지조차 알아 보지 못한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 죽는 것은 신생아로 태어나든 노인으로 태어나든 마찬가지다.

가는 길은 각자 다르지만 종착역은 같기 때문이다. 영화는 끝이 났다. 그러나 늙은이가 젊은이가 되는 비결은 끝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다시 젊어진다면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을 거다.

실수를 바로 잡거나 뭔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허비한 시간을 제대로 쓰거나, 기타 등등. 그러니 그때 가서 시간을 되돌리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한다.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며 판에 박힌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해보자.

국가: 미국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평점:

: 원작은 스콧 피드 제널드다. 짐작하겠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와 동일인이다.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놀라운 원작을 영화로 각색했다.

5등급의 강력한 허리케인 불어오는 불순한 일기의 어느 날,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든 죽음을 앞둔 할머니는 마지막 회상의 끈을 간신히 잡고 있다.

딸이 일기를 읽는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추억을 따라 관객들도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할머니가 눈을 감기 전에 일기가 끝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간직한 채.

할머니는 앞서 언급한 소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기를 읽어주는 딸은 늙은 남자로 태어난 아이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일기를 통해 알아가는 딸은 때로는 울고 때로는 속상해하며 때로는 기쁘다.

기차역이 완공되고 거기 달린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전사한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 뒷걸음질 치며 달려와 엄마 품에 안긴다. 그럴수 만 있다면 시계를 뒤로 돌릴수 만 있다면 그래서 전쟁 전에 살아 있던 아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이제 그것을 돌려놓을 때다. 2002년 그 기차역에 새로운 시계가 걸린다. 그래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느냐고. 강보에 쌓인 아이가 할머니가 된 데이지를 알아봤느냐고. 각자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이 영화는 인생의 영화다. 거꾸로 태어난 기이한 아이에 대한 호러물이라기보다는 대체 인생이란 뭔가 늘 질문에 빠진 관객들에게 또 한 번 인생의 미스터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강인함을 갖자, 꿈을 이루는데 제한 시간은 없다, 네가 슬퍼할 땐 내가 안아주고 싶다,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것은 없다, 기회를 잃는 것이 때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같은 주옥같은 명대사가 쏟아진다.

그래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살아도 된다. 되는대로 살아도 된다. 다만 최선과 최악의 선택 중 최선의 선택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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