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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황혼(1936)- 내일의 해는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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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황혼(1936)- 내일의 해는 떠오른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1.07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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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이 나라 백성은 먹고살기가 힘들다. ( 언제는 좋은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하고 싶은 독자 많겠다.)

나라 뺏긴 설움에 더해 많은 물자들이 수탈당하고 있다. (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있었다면 사전 검열로 출판이 어려웠을 것이다.)

어디다 대고 하소연할 곳도 없다. 주권 없는 국민의 서러움이다.( 위정자나 지배자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호의호식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때고 있으며 늘 벌어지고 있으나 그 당시는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타고난 팔자소관이라고 여겼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찾기보다 자신의 능력 없음을 한탄하거나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한설야의 <황혼>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은 그러지 않았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은 힘을 모으고 방직회사 사장에 대항하는 면모를 보인다.

일단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구도는 형성됐다. 작품 전반부는 느슨하게 이어진다. 남녀 사랑 문제이거나 소소한 가족사가 작품을 어렵지 않게 시작한다.

금강산이며 원산의 명승지에 대한 여행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그 장면에서 오래전에 가보았던 금강산의 산세와 경치가 기가막혔던 온정리 노천탕을 생각했다. 어서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호랑이가 나오니 배달부를 위해 편지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도 있다. ( 편지는 간혹 나온다. 바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운치 있었다.)

중심인물은 경재가 되겠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주인공 치고는 치고 나가는 힘이 없다. 하지만 그가 빠지면 작품도 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먼저 그를 언급해야 한다.

경재는 유학파다. 아버지가 방직 공장 사장을 했으니 본국( 여기서 본국은 조선이 아닌 일본이다.)에서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녔다.

거기서 같은 유학파 현옥을 만나는데 둘은 사회주의나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다. 지식인의 행동하는 양심이 이들로부터 진행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옛 성처럼 허물어진다. 불경기로 회사를 현옥 아버지에게 넘기 경재네는 이제 몰락한 지주라고 봐야 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경제네는 돈 걱정은 없다. (그래서 경재는 작품이 끝나는 동안에도 어디 취직했다거나 취직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현옥 아버지 안중서는 경재와 현옥이 결혼하면 회사를 경재에게 맡길 요량이다. 그렇지 않아도 둘은 사랑하는 사이니 함께 사는 것은 시기의 문제일 뿐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경재는 현옥보다는 여순에게 마음이 끌린다.

여순은 경제네 가정교사로 참하고 예쁘고 마음씨 좋기가 현옥에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모 없는 여순은 여러모로 현옥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경재는 여순을 단순 연애 상대로 여기지 않고 결혼까지 염두에 둔다. 현옥은 대놓고 여순을 무시한다. 시골뜨기, 여급사, 심부름꾼 등으로 부르며 종은 아니더라도 종처럼 하대한다.

말을 함부로 하고 행동도 그렇고 씀씀이도 경재가 보기에 매우 천박하다. ( 여기서 현옥을 의도적으로 천박하게 그리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한편 현옥은 일상에서는 허접하나 경재에게 쓰는 편지글은 매우 세련됐고 지적이며 낭만적이어서 과연 현옥이 그 현옥인지 아연실색할 때가 있다.)

일본 유학에서 본 현옥이 아니다. 현옥이 그럴수록 경재는 여순에 더 끌린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여러 번 와도 경재는 마음만 있지 실행에 옮기지 않고 머뭇거린다.

햄릿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런 경재를 보고 ‘네가 한 수 위다, 내가 졌다’고 두 손 들만하다.

▲ 우유부단한 주인공 경재를 중심으로 여순과 현옥이 벌이는 삼각관계가 전반부라면 후반부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우유부단한 주인공 경재를 중심으로 여순과 현옥이 벌이는 삼각관계가 전반부라면 후반부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유부단하기가 이를 데 없다.( 현옥도 아니고 여순도 아니다. 회사의 입장도 아니고 노동자의 입장도 아니고 취하는 태도가 애매하다. 그렇다고 경재를 이중인격자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 자신을 위해 어떤 이득을 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고먹으면서도 예비 장인인 안 사장이 회사로 들어오라는 청을 미루기만 한다. 여순은 경재의 추천으로 안 사장의 비서로 들어간다.

당장 벌어먹지 않으면 생존은 물론 시골에 있는 동생 학비로 마련하기 어렵다. 그는 일약 사장 비서로 발탁됐다.

안 사장은 여순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본다. 본처 말고 첩이 둘이나 있으나 여순을 어찌해 보려는 사장의 흑심은 날로 더해가고 어느 날 취한 사장은 마수의 손길을 뻗친다. 겉은 점잖으나 속은 속된 말로 개차반이었던 것이다.

겨우 도망친 여순은 이런 사실을 지레짐작하고 추궁하는 경재에게 실토한다.

그러나 경재도 그 사실을 알 뿐 별 대응을 하지 않는다. (그럴 거면 싫다는 것을 억지로 취조 하듯이 물어봤는지 이해불가다. 알았으면 대책을 세우거나 복수의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이 공식인데 경재는 그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 사태를 겪고 나서도 여순은 호구지책 때문에 다시 안 사장의 회사에 취직한다. 그것도 시골로 간다고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고는 다시 경재에게 부탁해서다.

경재는 그 청을 또 들어준다. 이때도 안 사장은 여순에 대한 흑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안 사장은 전처럼 사무원을 권하나 여순은 스스로 직공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이른바 위장 취업이 되겠다.)

공장에서 여순은 시골 친구 준식 등과 어울리면서 사측의 부당한 대우나 처우에 대해 눈을 뜬다. 소그룹으로 모여 공부하거나 사상운동을 연습하는 장면은 없으나 수시로 직공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서로의 자취 집을 스스럼없이 방문하고 대화한다.)

사장도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새로운 기계를 들여놓고 모든 것을 일신하려고 하는데 여기서 필연적으로 인력 조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누굴 자르고 누굴 남겨야 하는지도 주임을 통해 보고 받으면서 직공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사장은 프락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 지금도 회사 내에는 수많은 프락치가 활동하고 있을 터. 역사는 돌고 돈다.)

사장의 이런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회사 건강 검진을 계기로 직공들은 떼로 몰려와 사장을 압박한다.

일하다 다친 동료들의 치료비를 대고 약값을 요구한다. ( 중대재해예방법에 대한 설왕설래가 요즘 한창이다. 공장 벨트에 끼여 다치는 장면이나 부연 공기가 가득한 실내 환기 문제 등이 나올 때면 지금의 공장과 그때의 공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게 된다.)

한설야는 단편 <과도기> 작가로 이 연재물에서 카프 소속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가 취하는 문학 형태로 볼 때 굳이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대충 눈치챌 것으로 보인다.

: <황혼>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나 카타르시스를 불러올 만한 장면들이 부족하다.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평온하게 진행된다. 살인이나 방화 같은 끔찍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남녀 간의 치정극도 없다.

다만 연애 사건이 이리저리 얽혀 산만하고 지루해 통속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 의지가 약하고 우연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겹쳐져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주인공은 아니어도 뚜렷한 개성을 보이는 인물이 정림이다.

그는 몸을 무기로 사장에게 접근하고 다른 직공들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데 소설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재미가 반감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활력을 준다.

회사와 직공들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주임역의 털보도 관심 가는 인물이다.

여순과 현옥 사이의 삼각지대에서 인간이란 결국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주관을 가지고 있는 경재와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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