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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똘이 장군 제3 땅굴 편(1978)-성공한 만화선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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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똘이 장군 제3 땅굴 편(1978)-성공한 만화선전 영화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8.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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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선전 영화에 대한 독재자들의 관심은 지대하다. 그들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를 도구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고 같다.

그러니 영화를 이용하는 쪽이 언제나 독재자 쪽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다만 영화를 보라고 강제로 주민을 동원하거나 정부가 나서서 돈줄을 푸는 것은 다르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적은 알리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데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는데 동의한다. 온갖 SNS로 알리는 통로가 다양한 요즘도 그런데 하물며 그런 것이 없던 1978년의 상황은 말해 무엇하랴.

김청기 감독은 이 해 <똘이장군–제3 땅굴편>을 만들어 이쪽의 우월과 저쪽의 비열을 극렬하게 대비시켰다.

더구나 영화는 아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효과는 극대화됐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금 어느 정도 나이에 이른 어른들은 거의 모두 이 영화를 알고 있다. 단체 관람을 했고 수업 중에도 홍보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 충격과 감동은 필자는 물론 보지 않고 주워들은 주변 사람들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버리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있다.

영화 한 편이 저쪽은 괴물의 나라이고 이쪽은 천국의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각인된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어린 영혼을 지배했다.

그 영혼은 커서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빨갱이는 악의 원흉이면서 물리쳐야 할 원수였다. 굳이 핵폭탄을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체제 대결은 이 한 편의 영화로 막을 내렸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영화뿐만이 아니다.

정민섭 음악 감독이 만든 주제가는 또 어떤가. 따라 부르기 쉽고 누구나 이해가 되면서 같이 목청껏 부르기에 안성맞춤이 따로 없다.

영화와 음악까지 성공했으니 이 영화의 작품성을 논하지 말자. 그것이 비록 정권에 의한, 정권만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말이다.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숙제를 하다가도, 떠들다가도, 선생님의 꾸중을 듣다가도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라고 흥얼거려 더 얻어터지거나 아니면 그냥 웃고 말거나 한 경험도 있으리라.

이 평을 쓰는 지금 필자 역시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영화는 에두르지 않고 곧장 앞으로 달려나간다. 대한반공청년회의 협찬으로 제작된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반공 영화라는 사실도, 그래서 어린이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는 사실을 되레 자랑한다.

제작 과정의 어려움이라면 만화 영화에 대한 기술적인 것이지 검열 때문이 아니다. 나는 공산당을 고발한다는 자막은 노골적이기보다는 비장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제대로 된 주입식 교육은 이런 것이다.

한 소년이 숲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산다. 평화롭다. 그 소년이 주인공 똘이장군이 되겠다. 소년은 늑대와 사는 모글리처럼 생겼고 나오는 동물들도 디즈니랜드의 영화처럼 틀리지 않아 친숙하다.

그가 사는 숲에는 예쁜 꽃도 있고 파란 나무도 있고 흐르는 물도 있고 먹을 것도 넘쳐나 부족한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다람쥐, 사슴, 곰, 새 등이 어서 일어나라고 똘이장군의 코를 간질인다. 일어난 이들은 모여서 아침체조를 국민체조처럼 한다. (학교 운동장에 모여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를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행복한 순간이다.

천국의 등장은 지옥이 멀지 않아 나타날 것을 예고한다. 과연 지옥은 나중에 오지 않고 바로 온다.

소녀 하나가 나동그라진다. 평화로운 숲속에 ‘난리 부르스’다. 소녀의 이름은 숙이. 숙이는 바른말 하다가 이렇게 됐다.

붉은 여우와 이빨이 날카로운 늑대는 사람들을 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내각 결정 78호에 따라 경애하는 수령님의 후계자이신 아들 김정일 동지의 생일 기념으로 금강산에 있는 산삼 50뿌리를 캐서 바쳐라. 숙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질문을 한다.

그전에도 산삼을 캐다가 17명이나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거짓말 마라. 입을 닥치지 않고 함부로 지껄인 죄로 내일까지 산삼 3뿌리를 캐오지 않으면 학교는 퇴학이다.

독자들은 소녀가 산삼 3뿌리를 깰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려운 과정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그런 명령을 한 붉은 무리에 대한 증오심을 키운다. 이런 짐작은 딱 맞아떨어진다.

꽃사슴이 물을 먹는다. 시원할 것이다. 옥류동 계곡이니 두말해 무엇하랴. 선녀도 이곳에서 목욕했고 나무꾼이 나온 바로 그곳 아닌가. 이번에는 나무꾼 대신 똘이장군의 등장이다.

그 전에 소녀는 열심히 암벽을 오른다. 손에 '초크'도 바르지 않고 일류 암벽 등반가도 해내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을 쓰면서 바위산을 오르는 것은 산삼을 깨기 위해서다.

마침내 산삼은 소녀의 손에 쥐어지나 그만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소녀는 죽지 않고 깨어난다. 소녀가 깨어날 때 극장안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분명 그런 소리가 들렸다.)

깨어난 소녀는 묵비권 대신 저간의 사정을 알리고 이를 안 소년은 분노해 주먹을 높이 치켜든다.

놈들은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 타잔처럼 줄 타고 신나게 달려가면서 때려 줄 놈들에게 다가간다. 이때 배경음으로 깔리는 주제가는 압권이다.

빨갱이 니들, 이제 다 죽었어.

똘이장군이 주먹을 불끈 쥔다. 이때 숙이 엄마는 모진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아픈데도 일을 시키고 꾀병 부린다고 때린다. 지옥이 따로 없다. 밤새워 일해도 쉴 수 없다.

▲ 똘이장군이 붉은 악마에게 일격을 가하고 있다.  여러번 공격에도 버티던 붉은 악마는 마침내 가면을 벗고 자신이 돼지인 것을 드러낸채 죽는다.
▲ 똘이장군이 붉은 악마에게 일격을 가하고 있다. 여러번 공격에도 버티던 붉은 악마는 마침내 가면을 벗고 자신이 돼지인 것을 드러낸채 죽는다.

붉은 공화국에 휴일 같은건 없다. 그런건 퇴폐 국가에서나 실시되는 제도다. 이들은 전쟁 준비에 광분한다. 참호를 내고 전국을 요새화하는 것도 부족해 땅굴을 파서 남침 준비를 착착 진행한다.

명령을 내리는 여우의 이빨은 날카롭고 입속의 혀는 검은 대신 붉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식량 배급도 없다. 그나마 있던 쥐꼬리 배급에서 제외된다. 절망적인 순간, 숙이가 돌아온다. 손에 산삼을 쥐고 있다.

교활한 여우는 산삼을 뺏는다. 숙이는 애원한다. 산삼을 캐왔으니 우리 엄마 작업에서 빼달라고. 들어줄까.

아니다. 그런 반동적인 언사를 지껄이다 얻어터진다. 모녀의 눈물바다. 눈 뜨고는 보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훌쩍 훌쩍.)

한편 산삼을 든 여우는 그것을 김정일 동무에게 주는 대신 좋은 것을 자신이 먹으려고 한다. 이때 똘이장군 나타나서 산신령 흉내를 내고 혼쭐을 낸다. 숙이는 동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할당량을 무사히 마친다.

백성은 굶주리는데 붉은 수령은 스칸디나비아산 새우를 먹는다. 또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은어가 상에 오른다.

배 터지게 먹고 남은 것은 침 흘리는 여우나 늑대에게 주지 않고 그냥 버린다. 아랫사람에 대한 아량이나 배려가 없다.

그러니 산삼이 제대로 상납될 리 없다.( 이 부분에서 마약 밀수 등이 언급되며 노르웨이 대사관이 나온다. 아마도 당시 북한과 교류가 활발했던 듯싶다.)

배부른 붉은 수령은 땅굴 공사가 느린 것에 화를 낸다. 동독에서 굴착기까지 사다 줬는데도 못한다고 발 길질이다.( 동독은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다.)

박쥐를 동원해 남한에 침투를 명령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를 짓밟아라. (붉은 수령은 돼지 얼굴에 돼지 발톱의 손을 갖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도 돼지가 우두머리로 나온다.)

국가: 한국

감독: 김청기

평점:

: 여기서 북한이 악마의 소굴이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 붉은 늑대는 당시 독재자 김일성을 가르킨다.

영화는 적에 대한 적대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반공은 날로 뜨거웠고 정권은 체제 굳히기에 톡톡한 재미를 봤다.

이만한 심리전도 없었다. 어른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단체관람했다.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들이 받았을 충격과 공포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북한군은 따발총을 든 사람이 아닌 늑대나 여우였다니 아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지금도 빨갱이 하면 머리에 뿔난 도깨비가 연상된다.

강제노역, 세뇌 교육, 탁아소, 배급제, 땅굴 등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북한에서도 남한을 그렇게 그렸다. 특히 미군을 승냥이나 늑대로 표시했다. 당시 대남 삐라를 보면 잊지 말자, 승냥이 미제를! 이라는 구호가 보인다.)

그러나 북쪽을 악마화했던 남한의 정권도 오래가지 못했다. 붉은 수령 못지않게 독재를 일삼았던 그도 부하의 총탄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한편 똘이 장군과 붉은 수령의 마지막 결투 장면이 흥미진진하다. 당연히 똘이가 이기겠지만 붉은 수령도 만만찮은 실력을 뽐낸다. 서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붉은 수령의 가면이 벗겨진다.

네모난 얼굴의 가면이 벗겨지자 실체가 드러난다. 바로 돼지의 얼굴이다. 화가 난 돼지는 더 악을 쓰지만 용감한 똘이 장군을 이길 수 없다.

붉은 수령, 우두머리가 죽었으므로 영화는 끝난다. 장엄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화면을 압도한다. 동해바다에서 해가 떠오른다.

그때 헤어졌던 똘이와 아빠가 만난다. 이제 살았다. 자유 대한을 찾았다. ( 이때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친다. 이 부분은 추가했으면 좋았을 장면이다.)

주제가 말고도 전원 집합, 금강산, 이북 동포의 노래, 내 이름은 늑대 등 노래들이 곡은 물론 가사가 매우 흥미롭다. 모두 정민섭 음악 감독의 작품이다. 아버지의 곡을 딸이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듬해 김청기 감독은 <간첩 잡는 똘이장군> 을 만들었다. 참고로 1987년까지 대종상에 반공 영화상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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