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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2:11 (금)
뱀의 형상 그대로 삼각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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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형상 그대로 삼각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26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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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뱀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니 뱀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약장수 마음대로 그가 자루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장수가 그렇게 한 것은 꺼내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그 안에 뱀이 없어서 인지도 몰랐다.

약장수도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에서 지금 이순간이 뱀을 보여 줄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지금부터는 뱀의 시간이다.

자신의 앞에서 거의 한 시간 이상 꼼짝 않고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롭고 무언가 협박하는 듯한 위협을 더는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아무리 감언이설을 늘어놓아도 이 인파를 상대로 자루를 열지 않기에는 기다린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더는 늘릴 수 없고 늘려서도 안 된다. 그런 상황을 알았음에도 약장수가 끝내 자루를 들었다 놓기만 할 뿐 매듭을 풀고 움직이는 그것을 손에 들어 올리지 않은 이유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머리를 잡고 몸통과 긴 꼬리로 자신의 팔목을 감는 거대한 뱀의 움직임을 보려던 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한 사람씩 자리를 떴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마치 절대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막 들은 순간처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는 모여 있지 않으리라, 약장수의 호들갑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사라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각인처럼 박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자루 속에서 쿰틀거렸던 것은 그렇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그것이 좌우로 크게 움직이는 것을 분명히 보지 않았던가. 자루를 뚫고 기어이 밖으로 나오려는 의지가 눈에 선명하게 보인 것은 확실했다.

민구는 언제가 딱 한 번 꺼낸 뱀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루에 있는 것이 뱀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지 않았다. 뱀은 뱀이되 뱀을 꺼내지 않은 것은 약장수의 꼼수가 아니라 그러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약장수 편을 들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민구가 그의 입장에서 설 이유가 하등 없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뱀은 자루에서 나오지 않았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이 도대체 뱀은 언제 보는 거요 하고 언성을 높였다. 어제도 없고 오늘도 없다면 뱀이 있기는 있는 거요. 거칠게 따질 듯이 항의했다.

그러나 마이크 주변에 있던 다른 험상궂은 사나이가 그 말을 하는 남자에게 시선을 강하게 꽂자 그는 서리 맞은 뱀처럼 꼬리를 숙였다. 당신 같은 사람은 오지 않아도 좋다는 경고의 시선이 뒤따랐다.

그 사람은 사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인파를 형성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약을 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에 그렇게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너 말고도 들러리 설 사람은 얼마든지 있느니 분위기 깨지 말고 좋은 말로 타이를 때 어서 꺼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민구는 한동안은 마이크 소리가 들려도 그냥 모른 척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야겠다고 비록 그것이 내일은 생각이 달라질지라도 지금은 그렇게 다짐했다. 괜히 기다려 봤자 애들은 가라는 핀잔 소리만 들을 거면 다른 사람 틈에 끼어 방패처럼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몇 사람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약장수는 마이크를 끄고 잠시 쉬었다. 얼마나 약을 팔았는지 셈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뱀을 꺼내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떠들어 댔던 대단한 자신의 입술에 물을 축이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전에 그는 양쪽 입 끝에 묻어 나온 하얀 거품을 혀를 꺼내 좌우로 닦아 냈다. 빠르게 움직이는 혀를 보면서 저게 뱀의 혀였다면 감탄사가 나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비단 민구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사람의 혀 대신 뱀의 혀를 보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행인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둘러섰는데 약장수는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신 자신의 혀를 보여줬다. 혀를 열심히 놀린 덕분인지 입가의 거품은 사라졌다.

거품은 그가 열심히 밭을 간 소처럼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는 증거물이었다. 민구는 직진해서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뒤로 돌아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뱀을 보지 못하자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것처럼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좀 더 걷고 싶었다.

그러다가 보면 무슨 좋은 구경거리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시골에서 만났던 뱀 장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남자는 뱀의 남자였다. 뱀처럼 가는 눈에 삼각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첫눈에도 강한 인상을 풍겼다.

무언가가 그 얼굴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그것은 빛이 아닌 어떤 살기와 같은 어두운 회색이었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 다녔다. 그 여자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길게 땋아 묶었고 그 모습을 뒤에서 보면 뱀의 꼬리와 영락없었다. 엎어져서 팔만 앞으로 뻗으면 커다란 구렁이가 저기 있다고 소리치면서 도망가도 무방했다.

함께 다니는 여자는 남자의 부인이라고 했는데 여자는 남자의 조수 역할을 했다. 방학 때였다. 시골에 내려가니 사촌 형이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좋은 구경거리가 있는데 보지 않겠다느냐고 말했다.

당연히 호기심을 보일 거라는 것을 예측한 제의였고 다른 것은 못 해줘도 이 정도는 사촌으로 해야 하는 것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것을 오랜만에 만난 민구에게 선심을 쓰겠다는 태도에 민구는 서슴없이 사촌의 뒤를 따라갔다.

사촌의 집은 우리 집에서 30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아직 개량하기 전의 촌집이라 짚으로 지붕을 만들어 이어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시골집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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