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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크리스티나 여왕(1933)- 사랑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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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크리스티나 여왕(1933)- 사랑찾아 삼만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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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아닌 여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드물기도 하지만 그가 어떤 통치술을 보여줄지에 대한 우려반 기대반 때문이다.

루벤 마물리안 감독은 그레타 가르보를 주인공으로 <크리스티나 여왕>을 만들어 여왕에 대한 이런 궁금증을 풀어냈다.

때는 1632년 스웨덴. 왕이 죽었다. (부관도 없이 홀로 쓰러진 자에게 갑옷 입은 병사가 다가와 누구냐고 묻고 스웨덴 왕이라고 답한다. 좀 어이없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처리가 너무 간단하기도 하다. 그러나 장례식은 거대하다.)

유럽의 절대강자로 스웨덴이 등극한 것은 죽은 왕의 혁혁한 공 때문이었었다. 그런데 후계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 그것도 남자가아닌 여자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했다. 늙은 신하가 옆에서 울자 남자는 우는 것이 아니라고 달랜다. 어려서도 그랬으니 커서는 오죽하겠는가. 대신과 의회를 장악하고 국정을 펼치는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다.

여왕은 전쟁 대신 평화를 원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백성들은 지쳤다. 그러나 장군과 대신들은 적이 쫓기고 있으니 더 몰아치자고 성화다. 적군의 피해 상황은 부풀리고 아군의 피해는 보고하지 않는다. 하느님(신교)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라는 명분도 빼놓지 않는다.

요즘엔 어딜 가도 하느님을 섬기는데 그럼 적군의 하느님은 누구냐고 되묻는 것으로 왕은 전쟁 반대를 분명히 한다. 사는데 전쟁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진절머리 나는 이 전쟁은 내가 요람에 있기 몇 년 전부터 있었다고 그러니 이제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벼랑 끝에 몰린 이교도들을 확실히 항복시키자, 전쟁에 드는 돈을 내겠다는 의견에 대한 반박이다.

죽음과 파괴뿐인 전쟁의 종식으로 평화를 바라는 여왕의 소신은 굽지 않는다. ( 이런 경우 여왕의 암살이나 궁정 모의 같은 것이 있을 법도 한데 대신이나 의회는 물론 일반 백성까지 여왕의 권위에 절대복종한다. 그래서 여왕이 이처럼 당당한가.)

전쟁과 평화 그리고 한 가지 더 스웨덴 국민의 관심이 끄는 것이 있다. 바로 여왕의 결혼이다. 빨리 스웨덴 왕가 혈통으로 후계자를 정해야 한다. 딱 맞는 적임자도 있다. 여왕의 사촌으로 전쟁에서 연신 승전보를 가져오는 사촌이다.

그러나 여왕의 마음은 딴 데 있다. 그가 영 마음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은밀히 만나는 백작도 시원치 않다. 그녀는 그래서 결혼할 생각이 아직은 없다.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육체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개신교의 이름 아래 오로지 전쟁만 원하는 전쟁영웅 사촌은 문학과 철학과 예술에 관심 있는 여왕의 사랑 대상이 아니다. 여왕은 철학자 데카르트, 희곡작가 몰리에르, 칼데론, 화가 벨라스케스 등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백성들은 파괴를 조장하는 장군을 따르고 은총과 아름다움과 자유를 얻으려는 여왕의 마음을 몰라 준다.

겨울 어느 날 여왕은 백마를 몰고 산하를 누빈다. 그때 눈 속에 빠진 스페인 대사 안토니오( 존 길버트)를 우연히 만나면서 여왕에게 일생일대의 순간이 찾아온다. 하룻밤 같이 묵으면서 그녀는 진실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당시 그레타 가르보는 존 길버트와 사귀고 있었다고 한다.)

▲ 왕관을 던진 여왕은 여러 남자보다는 오로지 한 남자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위대한 사랑 앞에서는 전쟁도 조국도 왕관도 필요없다. 그레타 가르보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 왕관을 던진 여왕은 여러 남자보다는 오로지 한 남자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위대한 사랑 앞에서는 전쟁도 조국도 왕관도 필요없다. 그레타 가르보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일정을 마친 스페인 대사는 본국으로 떠나지 않는다. 여왕이 그를 잡아 두고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왕이므로 많은 남자를 정부로 둘 수 있다. 술집에서 친구들이 여왕의 남자가 6명이냐 9명이냐를 놓고 내기를 벌일 때 그녀는 한 타스 12명이라고 답한다. 농담이라고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많은 남자를 가까이 두고 성적으로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정사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결정을 내리고 서류에 사인하고 백성을 살핀다. 그러나 백성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멀쩡한 사촌 왕자를 놔두고 남의 나라 대사와 짝자꿍 된 여왕을 이해할 수 없다.

집단으로 몰려가서 항의하기도 한다. 경비병을 물리친 여왕은 내가 만백성의 사랑에 관여하지 않듯이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내 사생활도 내버려 두고라고 호소한다. 내가 행복하면 국정이 소홀해지느냐고 따진다.

집으로 가라, 내일은 내게 맡겨라 하니 다들 여왕 폐하를 외치며 돌아간다.( 순진한 백성들, 이런 백성들만 있다면 왕 노릇 할 만하다.) 나를 사랑하는 백성들이 내 행복을 바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왕은 방으로 돌아와 안토니오의 품에 안긴다.

백성들이 잠시 물러났다고 해서 여왕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대신들은 결혼을 종용하고 후계자를 만들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여왕은 결심한다. 왕위를 내려놓겠다. 모두 말린다. 그러나 그녀는 한 나라의 여왕보다는 한 남자의 여자가 되기를 원한다. 많은 남자보다는 오로지 단 한 명의 남자만을. 그녀는 떠난다. 둘은 국경을 넘어 안토니오의 집이 있는 파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하얀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백작과의 결투에서 죽는다. 여왕은 발길을 돌려 다시 스웨덴으로 왔을까. 마침 해수도 차고 바람도 잘 불어 돛을 올리기에 안성마춤이다. 그녀는 떠나겠느냐는 선장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을까. 답은 나와 있다. 영화를 제법 본 사람이라면 감독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모를 리 없다. 그러니 스포일러는 여기서 그만.

국가: 미국

감독: 루벤 마물리안

출연: 그레타 가르보, 존 길버트

평점:

:이 영화는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영화는 그녀의 독무대다. 어둠 대신 빛이 있다면 모두 그녀 덕분이다. 여왕의 당당함과 품위와 기개 모두.

그녀가 대신들을 노려볼 때면 감히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위엄이 도사린다. 책을 읽고 사색하고 철학을 논하고 평화를 주장하면서 남자의 품을 그리워할 때면 영락없는 여자다.

남자와 여자의 양성 역할을 그녀 말고 누가 대신 할 수 있는가. 남장하고 술집에서 안토니오를 만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위대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녀의 눈은 달빛 아래 흰 눈처럼 눈부시다.

여왕이 옷을 벗고 나서 수줍게 서성일 때 그 표정은 연기의 신만이 낼 수 있는 난처함이다. 남자를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을 때 관객들은 경지에 오른 자의 연기에 넋을 잃는다.

누워서 포도를 먹는 장면( 겨울에 포도가 있는 것이 신기하지만.)은 매우 선정적이다. 이때 사방에서 보랏빛 향기가 들이친 것은 물론이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할 때 느끼는 느낌을 여왕은 느끼고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이다. 그 날 이후 여왕은 단정한 복장 대신 보석을 치렁치렁 매단 옷을 입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꾸미고 다듬고 매만지는데 한 손에는 거울이 들려 있다. 유화로 청혼을 해오는 경쟁자들은 그 순간 모두 낙동강 오리알이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므로. 여왕은 그 어려운 것을 쉽게 실천에 옮겼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것과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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