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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유예> (1955)- 둑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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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유예> (1955)- 둑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16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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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행의 시간을 늦춘 것은 그들이 목적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라고,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한 번 더 숙고해 보라고 그들은 그에게 한 시간을 유예했다.

여기서 그들은 그를 포로로 잡은 적군이며 포로로 잡힌 그는 국군 소위다.

한 소대를 책임지고 있는 소대장이 적군에게 생포됐다. 소대원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은 소속 사단과 학벌과 고향과 군인에 나온 동기와 공산주의와 미국에 대한 감정을 물었다.

적의 회유는 끈질겼다. 온갖 감언이설이 동원됐다. 동무와 같은 인재를 아끼고 싶다는 말도 했다. 어느 때라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있다고도 했다. 훌륭한 청년이라며 담배도 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거요, 동무처럼 불쌍한 청년은 이 세상에 또 없을게요, 나는 동무의 그 태도가 참으로 유감이오.

유감이라는 말로 포로들에게 당연히 해야 할 심문은 끝났다. 그리고 최후통첩. 그가 물음에 대해 어떤 대답을 했는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은 안다. 하라는 대로 했다면 한 시간의 유예 같은 것은 필요 없을 터.

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전에 상상을 해보자. 소대장이 아니고 포로로 잡히지 않았고 그 시대는 까마득해 알지 못하고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첫 번째는 투항이다. 우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몸은 만신창이고 정신은 혼미하다. 먹고 싶다, 자고 싶다, 살고 싶다는 욕망을 뿌리치지 못한다.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다. 누구도 이런 결정을 한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혹 비난을 퍼부어도 나는 살아 있다. 앞으로 계속 살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렇다. 고향도 가고 싶고 부모 형제도 만나야 한다. 그런 그를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두 번째는 끝까지 거부한다. 아무 대답도 없이 입을 다문 채 상대방을 차갑게 쳐다본다.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쳐 깨끗이 죽는 길을 택한다. 내가 가는 첫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터.

이런 굳은 결심을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의 이런 행보는 나중에 영웅 칭호를 받고 훈장을 받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그러나 나는 죽었다. 부모님도, 사랑하는 가족과도 영영 이별이다.

▲ 소대장은 남쪽으로 걸어간다. 그는 죽음의 회유를 뿌리쳤다. 그가 둑길을 걸어 갈 때 사수는 총알을 재고 이어서 집행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것은 끝났다. 전투도 배고픔도 추위도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 소대장은 남쪽으로 걸어간다. 그는 죽음의 회유를 뿌리쳤다. 그가 둑길을 걸어 갈 때 사수는 총알을 재고 이어서 집행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것은 끝났다. 전투도 배고픔도 추위도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여러분의 선택은? 이런 결정을 하라는 가정은 잔인하다. 그렇다. 전쟁은 잔인하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런 질문은 없다.

삶과 죽음은 백지장 차이고 그 중간이 없는 것이 전쟁터이니 둘 중의 하나를 여러분은 선택했다. 전자를 했든 후자를 했든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자유의지에 따라 한 결정으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

그러면 주인공인 국군 소대장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가 내린 결정을 말하기에 앞서 그가 포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그는 숱한 전투를 치렀다. 적을 죽이기도 했으며 아군에게 유리하도록 고지도 탈환했다. 그러나 전투에서 매번 승리할 수는 없었다.

대원들은 하나둘 죽어 나갔다. 그들은 총에 맞아 죽으면서 소대장님을 찾았고 그는 그들은 안아 주는 것으로 죽음의 길을 배웅했다.

때는 겨울이다. 몸은 덜덜 떨리고 먹을 것은 강냉이 죽도 없다.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 못할 골짜기를 헤매고 또 헤맨다.

전쟁은 밀고 밀린다. 적진에 빠져 있는지 아군의 영역인지조차 알 수 없다. 북으로 북으로 쏜살같이 달렸던 진격은 이제 끝났다.

본대와 자주 연락이 끊기더니 모든 길은 적에게 차단됐다. 수시로 소전투가 벌어졌다. 대원들은 한 명 두 명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과의 접전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능선을 타고 올랐다. 기아와 피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 악전고투 끝에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마을은 텅 비고 얼어 빠진 감자 한 자루만 남았다. 총 맞지 않은 부하들은 소대장님, 마지막 한마디를 외치고 눈 속으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북한 출신입니다. 홀몸이고 남한에는 누구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북 제 주소입니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부하의 손을 잡아 주는 것으로 소대장은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이제 남은 대원은 모두 여섯 명뿐.

그들은 다시 걷는다. 대로를 무난히 횡단했는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탄환이 날아왔고 누군가 쓰러졌다. 그 와중에 신속히 엎드려 응전자세를 취했다. (군인정신은 대단하다.) 그들은 우리의 위치를 알고 우리는 모른다. 절대 불리한 상황. 빗발치는 총알과 소대장님 하는 비명.

이 추위에 땀이 쏟아진다. 눈을 꽉 감고 낮은 포복으로 기고 또 기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총성이 잦아들었다.

그러나 용장 중의 용장 선임하사가 쓰러졌다. 이차 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남양 전투에 참전, 일본 패전 후 이 개월 포로 생활 그 후 팔로군, 국부군, 한국전쟁, 시대 따라 군복을 바꿔 입으면서 언제나 전선에 머물렀던 그가 아니던가.

군 생활과 전투가 제일 재미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제 차례가 된 모양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죽음 직전 선임하사가 소대장에게 한 말을 옮겨 보자.

“사람은 서로 죽이게끔 마련이오. 역사란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온 기록이니까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오? 난 전투가 제일 재미있소. 전투가 일어나면 호흡이 벅차고 내가 겨눈 총구에 적의 심장이 아른거릴 때마다 나는 희열을 느낍니다. 그 순간 역사가 조각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거든요. 사람이란 별 게 아니라 곧 싸우다 쓰러지는 것을 의미할 겝니다.”

말을 마친 그는 햇볕이 조용히 깃드는 양지쪽으로 기어가서 늙은 떡갈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죽을 위치를 찾은 것이다.

이제 홀로 남은 소대장.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야 한다. 그는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길을 헤치며 남으로 남으로 걸었다. 의식을 잃고 깨어나면 다시 걷고 또 쓰러졌다.

지금 가는 곳이 남쪽인지 북쪽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서 공산군의 포로가 됐다.

: 작가 오상원은 전후 세대 작가답게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해 전쟁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삶과 죽음을 잔인하게 때로는 건조하게 그려냈다.

한 시간 후면 죽는 자신의 삶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연상하고 기억하고 떠올리면서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둑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가는 나. 그토록 원하던 남쪽으로 가는 길. 그러니 등 뒤에서 두 명의 사수가 조준 사격을 하기 위해 총알을 재고 있다. 사수 준비 완료, 집행명령.

흰 눈 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오오 이 둑길, 몇 사람이나 이 둑길을 걸었을까. 눈앞에는 흰 눈뿐, 아무것도 없다. 몇 놈이 따라오는지 뒤돌아볼 필요는 없다. 연발의 총성. 모든 것이 끝났다.

집행을 끝낸 놈들이 총을 거꾸로 둘러메고 본부로 돌아간다.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화롯불에 손을 녹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배를 말아 피고 기지개를 껸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일 뿐이다. 붉은 피는 내리는 흰 눈에 덮이고 그의 시체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 위로 겨울 햇살이 따스히 부서져 내린다. 그들에게 유감은 없다. 역시 그들도 나처럼 죽을 것이기에.

평북 신천 출신으로 1950년대의 대표작가인 오상원은 이데올로기와 그에 따른 인간갈등의 문제에 집중했다. <백지의 기록>, <모반>, <유예>, <황선지대>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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