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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치숙>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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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치숙> (193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0.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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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삼촌을 ‘치숙’이라고 한다. 그가 얼마나 못났으면 채만식은 소설 제목으로 달았을까. 한 번 그 치숙이라는 사람을 살펴보자. 그 사람은 대학교까지 나왔다. 심지어 일본 유학까지 갔다 왔다.

때는 일제 강점기. 지금 세상이라도 이 정도 학벌이면 뭐, 한자리는 아니더라도 사람 구실은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치숙은 그렇지 않다.

굴속 같은 단칸 셋방에서 사시사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딱 감고 빈둥거리면서 놀고먹고 있다. 언문(한글을 얕잡아 보는 말) 잡지만 수북이 쌓아 놓고 뒤적이고 있다. 그런 치숙을 보는 조카( 오촌)인 나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나로 말하면 어엿한 일본인 상가의 점원으로 10만 원을 모은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보통학교 4년밖에 다니지 못한 나도 이 정도인데 치숙은 참으로 한심하다.

저런 양반은 사람 취급 대신 모른 척하고 마는 것이 상수이지만 일곱 살 때 부모가 죽고 나서 아주머니(치숙의 부인)가 돌봐주고 학교까지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아주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아저씨가 그래서는 안 된다. 방안에서 자빠져 있는 대신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 고생한 부인을 호강시켜 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삯바느질로, 남의 집 품으로, 화장품 장사로 억척스럽게 벌어온 돈을 축내기만 할 뿐이다. 근 20년간 소박 맞힌 부인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놈의 사회주의인지 막걸리인지 타령만 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5년간 징역살이를 하고 폐병까지 걸려서 나왔다. 딱 간데없는 신세인데 알량한 남편이라고 다 죽게 생긴 것을 집으로 데려다 병수발 들고 먹여 살리기까지 하는 아주머니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몸만 고생한 것이 아니다.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심했을까.

 

가막소앞 으로 마중 갔을 때는 해도 너무 했다. 아주머니를 반가워하기는커녕 데리고 살았던 학생 출신 여편네가 있는지만 두리번거리면서 찾고 있다.

친정으로 쫓겨 갔을 때 일본인 미네상이 같이 살자고 중매서 달라는 것까지 흉한 소리 말라며 거부한 것을 생각하면 복장이 터질 일이다. 아무리 심덕 좋고 솜씨 얌전한 아주머니라 해도 그런 알량한 인간을, 피 토하는 반송장을 남편이라고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것이 나는 불만이다.

한 번은 하도 같잖아서 그 치숙이라는 자에게 도대체 사회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가난한 자가 부자 돈을 빼앗는 것이 사회주의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게으름뱅이 몇 놈이 양지쪽에 모여 앉아서 놀고먹는 궁리만 하는 불한당 같은 놈들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맞는 말 아닌가.

그런데도 아저씨는 사람 버렸다느니 아무짝에도 못쓰게 됐다느니 하면서 앞길이 훤히 트인 나를 못난 놈 취급하고 있다. 되레 나를 걱정한다. ( 나는 생각한다. 그래 나도 그 양반처럼 그놈의 것, 사회주의인지 급살 맞을 것이나 하다 징역 살고 전과자 되고 폐병이나 앓고 하면 쓸고 있고 길든 놈이 되는지.)

내가 얼마나 잘 났느냐 하면 앞서도 말했지만 돈을 왕창 벌 꿈에 부풀어 있다. 버는 돈은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있다. 조선인 여자는 거져 줘도 싫다.

내지인( 일본 사람, 이에 비해 식민지 조선은 외지인으로 불렸음.) 규수와 결혼해 생활도 내지인처럼 하고 생각고 그렇게 하려고 한다. 자식들도 그렇게 가르칠 작정이다.( 그래서 조선말 버리고 국어만 쓰기로 했다.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

그래야 천석 꾼이로 텅텅거리며 사는데 편하다. 이런 나를 무시하다니. 치숙이라는 자는 정말 밉살스럽고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손톱만큼도 쓸모가 없고 남한테 사폐만 끼친다. 죽어서 마땅한데 죽지 않고 꼼지락꼼지락 도로 살아나서 성화를 부리는 꼴이란.

: 화자인 나를 통해 보는 아저씨의 어리석음이 단연 눈에 띈다. 반어적이면서 풍자라고는 하지만 그가 무책임한 것은 분명하다. 우선은 먹고 나서야 사회주의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장으로 책임감은 없고 앉아서 책만 뒤적이고 있다. 부인은 갖은 고생을 하는데 자신은 마치 왕이라도 된 양 거드름 피운다.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사회주의만 하면 밥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질 것처럼 이념의 노예가 됐다. 현실을 무시하고 허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버린 처가 죽어가는 자신을 살렸음에도 고맙기보다는 한심한 여편네 정도로 생각한다.

무능하고 게으르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사회주의만 실현되면 모든 것이 평등하고 부자도 빈자도 없는 그야말로 천국이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치숙을 보는 나의 관점은 당연히 비관적이다. 한심하다 못해 주먹이라도 한 방 날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죽기만 바라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여기서 치숙을 동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력해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식민지 치하의 백성이 갖는 서러움이 그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에 빠졌을 수도 있다. 지배자의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잘못된 구조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다짐을 할 수 있다.

그런 행동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모범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평균적인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동정이나 이해심보다는 사회 낙오자라는 비난받기 십상이다. (식민지 치하에서 배운 지식인이 친일에 나서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더군다나 어린놈이 친척 어른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괘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코너에 몰리고 있는 치숙과 사회주의가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한편 일제에 저항하지는 못해도 철저히 일본화되려는 나의 행태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소설이 단편이어서 그렇지 장편으로 넘어갔다면 어떤 결말이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치숙이 등장 할수도 있고 일본 여자와 결혼해 창씨 개명하고 일본식 생활을 하는 나의 분투가 좌절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은 너무 짧다. 채만식은 은연중에 나를 무지한 인간, 먹고 사는 데만 신경 쓰는 짐승같은 인물로 그려 내고 있다. 특히 철저히 일본화하려는 나를 매국노쯤으로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독자들은 생각한다.

채만식은 1939년 독서회 사건으로 저항하다 일제에 구속됐다. 풍자와 해학, 사회비판의식을 작품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해방 직전 아쉽게도 친일문학을 다수 발표했다. 그 후 절필을 선언하고 술과 마작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이런 자신을 비판하거나 자기 변호하는 글도 세상에 내놨다. < 태평천하>, <레디 메이드 인생>, <탁류> 등을 썼다. 전북 군산이 고향으로 48살의 나이로 죽을 때 ‘들꽃과 함께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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