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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화수분>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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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9.09  16: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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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울음은 어린아이 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다 큰 어른 남자가 꺼이꺼이 소리 내어 흐느낀다. 무슨 대단한 곡절이 있음에 틀림없다.

낮도 아닌 밤에 들려오는 통곡 소리. 괴기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자다 깨다 일어나서 듣던 행랑아범의 소식이 관찰자인 나는 궁금하다. 다음날 아내가 가져온 소식은 이렇다.

아범의 큰딸을 다른 사람이 데려갔다고.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 단지 먹여 주고 입혀주고 크면 시집보내 준다는 조건으로 물건처럼 가져갔다.

지금 세상에서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면 말은 달라진다. 작품의 어느 곳도 일제니 나라 뺏긴 설움이니 하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허나 작품이 발표된 연도가 1925년인 것을 보면 일제 치하 시대인 것은 틀림없다.

얼마나 형편이 어려우면 식구 하나 줄이자고 아홉 살 난 딸애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줄 수 있을까. 아무리 일제시대고 살기 힘들어도 그렇지 그 집 아버지나 엄마가 사람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떠들일이 아니다. 비난에 앞서 그 심정 헤아려 보는 것이 먼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남은 사람이라도 살려면 어쩔 수 없다. 행랑아범의 이름은 화수분이다. 소설의 제목이면서 아범인 화수분이 금년 구월에 우리 집에 왔다. 아내와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우리 집이 어느 정도 부자인지는 나와 있지 않으나 공부하는 아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화수분의 생김새가 보잘것 없다는 것을 밝혀 둔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마음씨만은 퍽 착했다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먹지 못하고 굶었으니 뼈대가 튼튼할수 없다.

그는 주인인 나만 보면 아무리 고달픈 몸이라도 얼른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한다. 그 아내 역시 내세울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키가 작고 이마는 좁고 셈도 잘못한다.

저 낳은 아이들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어리숙하다. 그러나 아범처럼 심성은 착해 누구를 속일 줄을 모른다. 부부는 이런 사람이다. 그러니 그 집안 꼬락서니와 아이들이 보기 싫게 생겼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가난의 정도는 생김새에 비해 더하다. 단벌 홑옷에 조그만 냄비 하나가 살림살이의 전부다. 덮을 이부자리도 없고 밥 담아 먹을 그릇은 물론 숟가락 한 개가 없다. 일할 때 쓰는 지게 하나가 고작이다. 이런 가난은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처음 본다. (여기서 나는 관찰자아닌 필자임)

아마도 문학작품에 나온 가난한 가족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할 것이다. 이보다 더 가난한 가족을 과문한 나는 알지 못한다. (작품에는 먹다 내다 버린 감꼭지를 주워 먹는 장면으로 가난의 정도를 표현했다.)

상황이 이러니 쌀가게 마누라가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욕할 일은 아니다. 어멈에게 큰 애를 누구 주자고, 날도 차차 추워지는데 모두 한꺼번에 굶어 죽지 말라는 걱정, 위로의 말로 꼬드길 때 어멈의 귀가 잠시 솔깃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곧 그래도 제 새끼를 어떻게 남을 줍니까 하고 쥐죽은 소리로 대꾸 한마디 날린다. 그게 모정이다. 덧붙여서 워낙 못생기고 철이 없어서 남이 가져 갈게 못 된다고 거절한다. ( 이 대목을 설명하기 위해 그 이전에 큰딸에 대한 품평이 약간 언급된다. 어미에게 조 깍정이라고 하거나 저 망할 계집년이라고 욕을 하는 아주 품행이 방정맞지 못한 못된 아이다.)

허나 어멈의 마음은 이미 큰 딸과 작별할 준비가 됐다. 이제 새끼가 또 하나 생긴다. 셋씩이나 먹여 살려야 한다. 둘도 어려운데 셋은 살아가기에 불가능한 숫자다.

중대사를 혼자서 결정하기 전에 어멈은 아범의 의견을 듣고 싶다. 그래서 화수분이 일하러 나간 염천교 다리로 남대문 통으로 몇 시간을 찾아 헤맸으나 만나지 못하고 쌀가게로 가보니 딸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여섯 시 차를 타고 광핸지 광한지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 날밤에 돌아온 아범은 그 소식을 듣고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여북하면 제 자식을 꿈에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주었겠느냐는 아내가 전해주는 어멈의 핑계를 듣는 내가 이해는 한다고 해도 찢어지는 화수분의 마음에 견줄 수 있을까.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화수분의 둘째 형 거부가( 형의 이름이 거부다. 맏형의 이름은 장자다. 대단한 이름들이다. 화수분이 원래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고향에서는 몇백 석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시아버지와 맏아들이 죽고 농사 밑천인 소를 도둑맞고 점차 못살게 되어 거지가 됐다는 것. 지금도 시골 큰댁에 가면 굶지는 않으나 부끄럽다는 이유로 가지 않고 저러고 있다.) 도끼로 발을 찍어 일을 못하고 누워 있다.

그 소식을 듣고 화수분이 거들어 주기 위해 고향 양평으로 떠났다. 추수가 끝나면 오겠다며. 그러나 곧 오겠다던 화수분은 일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고 보름이 지나도 오지 않고 있다.

어멈은 올 때 쌀 말이라도 지고 올까, 밤낮 기다리지만 눈만 빠질 지경이다. 김장 때도 지나고 입동이 가고 정말로 추운 겨울이 왔다. 바람도 몹시 불고 새벽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까지 했다.

이날 어멈은 기다리다 못해 화수분의 고향으로 오지 않으면 제가 가겠다고 편지를 써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나는 편지를 써주고 부쳐 주기까지 했으나 화수분의 소식은 깜깜하다.

그즈음 어멈은 다릿병도 있고 손가락까지 다쳐 일을 못해 퍽 미한하게 생각하던 차에 차라리 아범을 따라 시골로 가기로 했다. 다음날 어멈은 돌아볼 것도 없는 행랑을 한 번 돌아보고 어린것을 업고 떠났다. 그리고는 화수분 내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가해 사는 동생 S가 오랜만에 놀러 왔다. S의 시댁에서 천거해 그들을 보낸 것이므로 S로부터 화수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수분 내외는 얼어 죽었다. 살아남은 아이는 지나가던 나무장사가 소에 싣고 갔다는 것이다. 참 슬픈 결말이다.

: 화수분이 어멈이 있는 행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변심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다 몸져 누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팔려간 귀동이를 부르면서 흐득흐득 울어 댔다.

눈깔 사탕 하나, 연시 한 개 사주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그때 어멈의 편지가 왔고 편지를 받아든 화순분은 또한 반 닭의 똥 같은 굵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옥분(작은 딸 이름) 에미, 옥분 에미 하면서.

눈물을 그친 화수분은 날 듯이 사립문을 박차고 나갔다. 양평에서 오정이 거의 다 되어서 출발해 저물 즈음에는 무려 백리 밖에 있었다.

화수분이 어떤 높은 고개에 올라섰을 때 바람은 칼같이 불어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잠시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자 소나무 밑에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고 달려가 보자 옥분과 그 에미였다.(이런 기막힌 우연도 없다.)

화순분은 아내와 아이를 껴안고 밤을 샜다. 부부는 얼어 죽었다. 가운데 있어 살아 남은 아이는 등에 따사한 햇빛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치고 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여기서 형 집에 가면 먹고는 산다는데 왜 진작 형 집에 얹혀 살지 않았느냐고 타박해서는 안된다. 부끄럽다는 이유가 삶을 버릴 정도냐고 구박하지도 말라.

또 화수분 가족 하나 정도는 먹여 살릴 수도 있을 텐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던 작중 관찰자 나를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매도 하지도 말라. 형 집에 얹혀 살거나 내가 도와 줬다면 이런 슬프고도 장엄하면서 울림을 주는 작품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니.

한편 계용묵은 강단 있는 작가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 시절 나라 뺏긴 분을 못 이겨 붓을 꺾기도 했다. 주요한, 김동인 등과 함께 창조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그들과는 달리 친일을 하지 않았다.

인도주의적 작품을 많이 남겼고 가난과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이런 경향은 그의 직업이 목사라는 것과 연관을 짓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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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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